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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9과)7.

Joyfule 2009. 4. 18. 23:58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9과)7.

열왕기(6): 분열왕국 이야기(3)(18-25장)

 

 

 5) 시드기야(주전 597-586년, 대하 36:11-21,왕하 24:17-25:21,렘 39:1-10): 왕국멸망   

 

느부갓세살이 여호야긴 대신에 왕으로 세운 시드기야는 느부갓세살의 허수아비였다(주전 597-586년; 왕하 24:17). 그가 비록 유다의 왕의 자리에 있기는 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그는 왕리라기 보다는 섭정자의 위치에 놓여있었다. 바벨론 왕은 포로로 잡아간 여호야긴을 여전히 유다 왕으로 대접했고, 유다 백성 역시 시드기야를 왕으로 간주하지 않았다(왕하 25:27, 렘 52:31). 그러므로 그의 위치는 매우 약했으며, 또한 그의 통치 능력 역시 매우 부족했다.

 

그는 그 후에 계속해서 반 바벨론 파와 친 애굽 파로부터 바벨론을 배반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당시에 에돔과 모압과 암몬, 그리고 베니게의 여러 나라에서는 새로운 반 바벨론 동맹이 이루어졌다(렘 27:1-3, 겔21:18-23, 21:8 참고). 그리고 외국의 사신들이 시드가야를 찾아와서 유다도 이 동맹에 가담해 달라고 요청했다(렘 27:3). 궁중의 반 바벨론 파의 수뇌들은 시드기야에게 그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게 만든 또 한 세력이 있었으니,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지켜 주실 것이며, 바벨론으로 잡혀간 포로들도 2년 안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바벨론의 멍에를 꺽으시고 유다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28:1-12).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도 받지않고 자기 마음대로 백성들에게 "평안"을 외쳐댔다(렘 7:4). 이로 인해 시드기야는 마침내 바벨론을 배반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 제 9년(주전 588년)에 세 번째로 유다를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그리고 그로부처 2년 후(주전 586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은 도망하는 시드기야 왕을 사로 잡고,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은 채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갔다. 이로 인해 시드기야는 바벨론에서 죽는 날까지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렘 52:9-11, 왕하 25:6,7).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주전 586년에 마침내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이 때에 성전도 함께 파괴되었다. 그리고 이때에 남은 백성들도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비천한 자들만이 남아서 그 땅을 지키게 되었다(렘 25:8). 거짓 선지자들이 유다가 곧 회복될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끌려간 포로들이 곧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들에게 그 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 성이 평안하기를 구하라고 권고했다. 예레미야는 그들이 다시 돌아오려면 무려 70년이 지나야 한다고 예고했다(렘 29:10).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 역시 포로들과 함께 살면서 그와 비슷한 예언을 했으며, 그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겔 21:27).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에게 포위되었을 때에 애굽 군대가 와서 자기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애굽 군이 퇴각되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렘 37:7). 당시에 유다의 모든 성읍들이 망했으며, 예루살렘과 아세가와 라기스만이 남아 있었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라기스의 편지"가 남아 있어서 당시의 유다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바벨론 왕은 유다 백성들을 사로잡아 간 후에, 남은 자들을 위해서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삼았다. 그는 한때 예레미야를 숨겨주었던 아히감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조부인 사반은 요시야 왕의 개혁 당시에 서기관으로 있었다(왕하 22:3).

 

 흩어진 유대인들은 느부겟네살이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삼았다는 소식을 듣고 미스바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그달리야는 남은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을 섬기면서 살도록 권면했다(렘 40:9-10). 그러나 이때에 돌아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에돔, 모압, 그리고 암몬으로 망명했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대부분 강경한 반 바벨론파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달리야가 친 바벨론 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그들의 두목이었던 이스마엘은 그달리야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는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쳤고, 이때에 예레미야도 강제로 애굽으로 가게 되었다. 그 후의 유다 역사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더 황폐해졌으며, 그 지역은 사마리아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약 1500년 후에 그의 후손들은 이제 자유인이 아닌 포로로서 다시 옛 고토인 갈대아 땅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만이 그 곳에 남아서 많은 고난 속에서 살게되었다

 

 * 유다의 멸망과 은혜의 언약


  열왕기 기사는 여호야긴 왕의 석방에 대한 업급이 없이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 이월 이십 칠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선히 말하고, 그 위를 바벨론에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5:27-30)."

 

이러한 열왕기의 마지막 문단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토론이 있어왔다. 어떤 학자는 이러한 언급이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허수아비 왕으로 전락하면서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의미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여호야긴이 바벨론에서 좋은 대접을 받게 되는 일을 통해 다시 다윗의 후손을 통해 유다가 회복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결말은 아무런 희망이 남지 않은 유다에 대한 선언인 것으로 보인다. 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표현 밑에는 무엇인가 다른 암시가 주어져 있다.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한 유다의 마지막을 언급하는 열왕기 기자의 말 뒤에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조용히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 에루살렘에서 영원히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왕상 11:36, 15:4, 왕하 8:19). 여호야긴은 바벨론에서 죄수로 죽지 않았으며, 오히려 존경 받는 손님으로 죽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다윗 왕조의 회복의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바벨론에게 빼앗긴 성전의 기물들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후에 다시 성전이 회복되었을 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회복이 인간의 순종이나 회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여호여긴은 그의 부침처럼 악을 행했다. 그러므로 유다는 멸망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유다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삼하 7:14-16). 다윗 가문은 벌받아 바땅한 짓을 했지만,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은 결코 그들을 아주 버리지는 않으실 것이다(삼하 7:16, 왕하 8:19, 왕상 11:36, 15:4).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다윗의 왕조를 가리켜 "영원한 왕조"라고 불렀던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의 손을 통해 징계하시고 그들을 다시 연단되고 순수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후에 그들을 다시 회복시켜서 자기의 백성을 삼으실 것이다. 이러한 희망과 미래는 오직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셨던 무조건적인 은총의 약속 안에서만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