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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3과)6

Joyfule 2009. 5. 19. 09:49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3과)6

역대기(4): 유다의 멸망, 역대기신학

 
 2-4 하나님 나라의 이중 구조

 

  역대기 기자는 포로 후 공동체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실제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성전을 속죄의 장소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며(대상 28:11), 하늘에서 불을 내려 용서의 기도를 응답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대상 21:26). 성전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이기에 하나님은 결코 백성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는다. 역대기 기자는 미래에 올 하나님 왕국보다는 이스라엘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왕국의 임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역대기는 열왕기 기자가 여호와의 신의 감동을 받은 것으로 보지 않은 사건들을 영의 감화를 받은 것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래의 예를 참고하라.

 

 1) "때에 성신이 30인의 두목 아마새를 감동하시니....(대상 12;18)."
 2)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성전건축)(대상 28:12)."
 3) "하나님의 신이 오겟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대하 15:1)."
 4) "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대하 20:14)."
 5)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대하 24:20)...."

 

  여호와의 신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전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폭넓게 역사하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호와의 신은 군대 장관(대상 12;18) 아마새를 감동시키셨으며,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여 아사 왕이 우상을 제거하는 일을 촉진시켰고(대하 15:1), 레위 사람 야하시엘을 감동시켜 전쟁터에서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 주셨고(대하 20:14), 스가랴 선지자를 감동시켜서 목숨을 걸고 요아스 왕에게 심판을 선언하게 하셨다(대하 24:20). 그리고 하나님의 신은 성전의 모든 식양을 가르쳐 주셨다(대상 28:12).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여호와의 신을 강조함으로  이미 포로 전기부터 하나님의 신이 그들 안에 역사를 시작하셨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역대 기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신이 포로 후 공동체 안에서도 임재하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는 포로후 공동체가 이미 경험하였듯이(스 8:21-32, 느 4:7-23), 여호와의 신이 역사하고 있으므로(학 2:5, 슥 4:6) 신앙이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역대기 기자가 다윗 가문이 포로 후기까지 지속된다는 점(대상 3:17-24), 예루살렘 재정착 기사(대상 9:2-34), 고레스 칙령(대하 36:22-23)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그의 집을 짓고 계시며, 백성들을 이 과업에 참여하도록 부르시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데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실현된 종말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포로 후기에 남은 자들은 비록 페르시아의 종노릇을 하고 있지만 새 시대의 입구에 서서 회복을 미리 맛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역대기 기자가 현재를 넘어서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포로 후 시기가 회복의 시기요, 새 언약 시대의 시작인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한 성취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포로후 공동체는 일부 약속들의 실현을 체험했지만 완전한 성취는 아직 미래의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다윗 왕정을 잃고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재건된 성전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일하다는 가시적인 상징이었다.

 

  역대기 기자는 에스라-느헤미야를 통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미약하게 보이는 성취 앞에 서 좀더 궁극적인 미래의 "귀한"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미 유대 땅에 돌아온 일부 유대인들을 통해서 미래에 있을 수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귀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귀환과 포로된 유대 백성의 완전한 복귀는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시고 행하시는 종말론적 속죄의 행위에 달려 있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 하나님에 대해 레위적 의무를 잘 감당하고, 백성들을 잘 감독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로서 모든 의무를 잘 감당한 후에 조용히 회복을 기다랴야만 했다. 따라서 성전에서 예배하는 공동체는 언젠가 진정한 다윗 왕의 후손이 와서,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을 종노릇에서 해방시킬 날을 고대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미래 세대에게 전할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러나 미래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을 마침내 이루실 것임을 믿는 모든 일들에게 열려 있었다. 포로 후기 공동체는 하나님의 신의 임재가 주는 축복을 어느 정도 경험하면서, 이 신의 임재의 최종적인 완성을 앞당길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 이스라엘 역사의 흑암의 기간 동안 유다 왕국이 존속할 수 있었던 근거는 이전에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신실하심이었다(대하 21:7).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에의 신실하심은 십자가로 나타났다. 현실 속에서는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박해로 인해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백성을 그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롬 8:39, 히 12:24, 13:20). 여기에 역대기의 정경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역대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