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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6과)3

Joyfule 2009. 6. 6. 23:56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6과)3

에스라-느헤미야(3): 느헤미야 (1-13장)


 9-4. 회복된 공동체의 명단(느 11-12장)

 

  이미 개혁된 공동체, 즉 언약의 갱신을 통해서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의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한 공동체는 이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와 살 수 있게 되었다(느 11:1). 따라서 이제 에스라-느헤미야서 기자는 이 거룩한 성에 거하게 된 공동체 멤버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느 11장)에는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된 이들을 다루고 있다. 예루살렘이 진정한 의미에서 "거룩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도시 성벽을 재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었다. 이는 이 도시가 실제로 살아 있는 진짜 성벽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예루살렘 성에서 살 자격이 있는가? 우선은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 안에 살아야 했으며, 제비를 뽑아 10명 중에 한 명이 예루살렘 성에 거할 수 있었다. 특별히 여기에서 강조된 것은 자원함이다.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그들을 위해 복을 빌었느니라(느 11:2)." 사실상 예루살렘 성 안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성벽보다 더 중요한 가능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에 설기를 "자원하는 자"라는 말은 제물을 드릴 때에 사용하는 말이다. 이는 그들 자체가 하나님 앞에 제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방인과는 달리 완전히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헌신하며 살아가야 했었다(느 13:4-31). 1/10을 자원해서 예루살렘에 거하게 한 것은 거룩한 성이요, 하나님의 집인 예루살렘을 위해 백성의 십일조를 드린 것과 같았다. 이제 평신도들의 거룩성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거룩성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가 되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일부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예배드리는 처소로서의 교회 건물 건축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이미 구약 안에서도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의 삶이 하나님의 집을 형성하는데 더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개, 말라기 선지자를 들먹거리면서 성전 건축에만 열을 올리는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은 신약적이지 않으며, 또한 구약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처소인 건물이 하나님의 집을 형성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편 (느 12장)에서는 회복된 공동체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12;1-26)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명단이 에스라 2;1로 거슬러 올라가서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1차 귀환부터,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2-3차 귀환까지 바벨론에서 올라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함께 묶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이 명단은ㄴ 책 전체에 짜여 들어간 천 조직의 느슨한 끝 부분을 묶는 종결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날로 시작해서(느 12;1 참조, 스 2:1), "방백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서기관 에스라 때'로 끝이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느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