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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7과)3

Joyfule 2009. 6. 14. 03:23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7과)3

에스더(1); 서론과 구조

 

2. 시대적 상황과 장르

 2-1. 시대적 상황

 

  에스더서를 보면 부림절이 한동안 지켜진 후(9;19)에 기록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에스더서의 기자는 페르시아인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유다나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생각해 보면, 에스더서는 주전 약 400년경에 미상의 저자에 의해서 페르시아에 있는 유대인 센터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에 1:1)을 보면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 왕(Ahasuerus; Xerxes)의 통치 시대(주전 484-464년)에 이스라엘이 경험한 위대한 구원-유다인들이 부림절이라는 절기로 이 구원을 노래하고 있는데-의 스토리를 적고 있다. 그렇다면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은 누구인가?

 

  유아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한 고레스 왕이 죽고 캄비세스(주전 530-522년)와 다리오 1세(주전 522-486년)가 왕위에 올랐다. 아하수에로는 다리오 1세의 아들로서 장남이 아니었지만, 다리오 1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리이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주전 484-424년)는 아하수에로 왕이 고대 근동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린 야망 있고 뛰어난 전사이며, 또한 무자비한 통치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은 헤로도투스가 그의 페르시아 전쟁사의 1/3(7-9장)을 아하수에로의 그리이스 침략 사건에 할애할 정도로 대단한 왕이었다. 아하수에로는 유럽정복에는 실패했지만, 한때는 마게도니아로 진격하여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군을 제업하고, 아테네를 점령하기도했다.

 

페르시아 연대기와 유대 역사

연대(B.C)

비고

고레스

550-530

고레스 칙령, 538년, 바벨론 포로 귀환

캄비세스

530-522

성전 건축 재개, 520년

다리오 1세

522-486

성전완공, 515년,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 490년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486-465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활약

아닥사스다 1세(롱기마누스)

465-424

에스라 귀환, 458년, 느헤미야, 445년

다리오 2세

424-404

 

아닥사스다 2세(므네몬)

404-358

 

아닥사스다 3세(오쿠스)

358-338

 

아르세스

338-336

 

다리오 3세(코노만누스)

336-331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더에게 멸망,331년

 

 

  결국 에스더서에 기록된 사건은 스룹바벨하에서 성전 건축을 완공한 사건과 에스라 중심의 포로 귀환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다. 이 시대의 유다인들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유다에 귀환한 제 2 성전 공동체는 장래가 불투명했고, 다윗 왕조의 부활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게 되자, 유다인들은 고국으로 귀환하기보다는 원해 그들이 살던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의 동쪽 지역에 그대로 눌러 사는데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니부르에서 나온 무라슈(Murashu)본문에 따르면 일부 유다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크게 번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름대로 번성하던 유다인들이 잔혹한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일련의 궁중 음모에 의해 전 민족이 멸절될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왕의 궁정에서 왕후와 고위 직책을 얻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에 의해 극복되었다. 그뿐 아니라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모의했던 대적들을 75,000명이나 살해하고, 전 제국이 떠들썩하도록 거대한 잔치를 베풀 수 있게 된다. 에스더서는 이런 위대한 유대인 구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2-2. 장르

 

  최근에 학자들은 에스더서의 장르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나, 아직은 어떤 일치된 견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별히 최근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에스더서를 외경인 유딧서와 토빗서처럼, 역사적 로망스(historical romance), 또는 소설(novella)로 보거나, 역사화된 지혜 민담(a historicized wisdom tale), 잔치 전설 등으로 보고 있다. 에스더서를 이런 장르로 보는 학자들은 대부분 에스더서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증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학자들은 에스더서의 일부 내용이 성경의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불일치가 설명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 에스더서의 문제성을 근거로 에스더서의 역사성을 부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학자들은 에스더서의 문예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역사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러티브로서의 에스더서가 조심스럽게 짜여져 있는 사실이 세부적인 내용이 거짓이라든지, 또는 전체를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에스더서 안에 지혜의 요소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해서 역사적 토대가 약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성경 기자는 실제 사건들의 연대기인 궁중 일기(2:23)와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10;2-3)를 언급함으로써 에스더서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에스더서를 역사 소설, 또는 역사화된 지혜 이야기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