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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8과)7

Joyfule 2009. 6. 25. 00:03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8과)7

에스더(2)


 

8. 정경적 메시지

 

  에스더서에 언급된 구원은 유다인의 구원이며, 이로 인해 생긴 절기도 유다 절기인 부림절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주림절을 지키지 않는다. 또한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악인은 유다인의 적인 하만이었다. 에스더서는 유다인의 존재를 위협하는 불안한 세계 가운데서 유다인의 생존을 축하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다인들의 구원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 루터가 매우 유다주의적인 색채가 짙다고 해서 정경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책이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겠는가?

 8-1. 직접적인 우리의 스토리는 아님

 

  에스더서가 우리에게 정경의 일부로 전해지고 있는 사실은 이미 교회에 의해 이 책이 정경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정경 문맥에서 에스더서가 어떤 기능을 갖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차일즈(B. Childs)는 에스더서는 우리 스토리가 아니라 그들의 스토리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스더서는 인종적 의미에서 유다 백성의 종교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강한 정경적 보증이다. 기독교 정경에 에스더서를 포함시킨 것은 이스라엘의 개념을 지나치게 영적으로 해석하려는 어떤 노력이라도 억제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차일즈는 비록 에스더서가 기독교 정경의 일부이지만, 에스더서를 단순한 의미에서 "우리" 이야기로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에스더서는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스토리, 즉 민족으로서의 유다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 민족으로서 유다인을 존속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주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간략히 말해서 에스더서는 기독교 성경의 일부로서 교회가 셈족이나 유다민족을 반대하는 일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앤더슨은 에스더서가 유다 백성의 문제 즉 반셈족주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앤더슨은 다음과 같은 하만의 고소는 인류 역사에 반복되어 온 디아스포라 유다인에 대한 고소의 전형이었다고 주장한다.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 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에 3:8)."

  나치스가 유다인 600만 명의 학살 근거를 반유다주의라는 신학적 이유에서 찾았음은 이러한 경고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웹(Webb)은 만일 기독교 독자들이 스토리에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면, 에스더서나 모르드개 안에서가 아니라 하만과 아하수에로를 통해서라고 극단적으로 말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주장은 처음에는 언짢을 지 모르나, 이런 느낌이 차일즈의 논증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스더서의 기독교적 수용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기독교 시대로 들어오면서, 부림절은 신약 어디에서도 유월절이나 제사 제도나 성전처럼 기독교적 방식으로 대치되거나 변형되어 행해진 적이 없다.

 

 부림절은 기독교적 유비나 성취가 없는 독특한 유다의 절기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차일즈의 접근에는 기본적인 오류가 있다. 에스더서는 유다인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에스더서의 주제를 살펴보면 금방 발견할 수 있다.

 8-2. 그러나 결국은 우리의 스토리

 

  에스더서는 단순히 특정한 한 민족인 유다 백성의 보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보존하신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에스더서에 선택이라는 개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에스더, 모르드개, 그리고 유다인들을 구원하고 보존한 이유는 명백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역사(2:5-6)와 율법(3:8)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의 보존과 구원이라는 주제는 구약 전체를 관통하여 신약에서 그 절정에 이르고 있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 나오는 언약들과 하나님 백성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신약 시대와 그 이후의 하나님 백성은 구약의 하나님 백성의 스토리를 자신의 스토리로 수용할 수 있다.

 

  더욱이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우리가 처음 생각하는 것처럼 구원 역사의 주류에서 많이 벗어난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이 사건들은 이방 땅에서 일어났지만, 인도에서 에디오피아에 이르는 거대한 페르시아 127도의 대제국의 중심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의 페르시아 제국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초강대국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하만의 계획의 성공은, 페르시아에 살던 유다인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유다인들도 포함한 모든 유다인의 종말을 의미했다. 따라서 숨겨진 하나님께서 열방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에스더서는, 구원사에서 불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중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