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92과)12 |
시편(8): 제 5 권 (107-150편) |
제목 : 137편: 바벨론 강가에서 부른 유대 포로들의 노래
서론 : 포로가 된 시인은 낯선 땅에서 애통하며 바벨론 포로들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곤경을 감상적이며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그는 먼저 시온을 향한 그의 강렬한 사랑의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시온을 멸망시킨 원수들을 증오하면서 하나님의 성읍을 멸망시킨 에돔과 바벨론을 저주하고 있다.
포로 기간의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는 이 시편은 바벨론 유수 말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만든 바벨론을 고발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벨론이 행한 대로 갚아주는 나라가 복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시의 운륭은 부드럽고 잔잔하게 진행하다가, 갈수록 흥분이 고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는 후음과 치찰음을 많이 사용하여 어떠한 시보다도 강한 인상을 풍겨주고 있다. 이 시는 운률에 있어서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묵상내용 :
1. 바벨론의 강변에서 시온을 생각함(1-6)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그 곳에 앉아서,
우리가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이 시가 완료 시제로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는 바벨론 포로 때 쓴 것이라기 보다는 나중에 그때를 회상하면서 쓴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 587년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 그들은 나라를 잃고 성전을 잃었으며, 언어와 자유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시온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바벨론 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너무나 슬픈 사람은 종종 바닷가나 강가를 찾는 법이다. 강가는 슬픈 유대인들이 생각에 잠기게 했고, 침울하고 우울한 그들의 생각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들은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가슴에 일어나는 뜨거운 분노의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본문에 언급된 "바벨론의 여러 강변"은 바벨론을 가로 지르는 수많은 수로들을 의미한다. 이 강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외에 다른 강들도 포함되었다. 이 외로운 강둑에서 에스겔(겔 1:3)과 다니엘(단 8:2)이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다. 에스겔은 유대인들이 그발 강 근처인 텔 아비브에 살았다고 증거하는데, 이 강도 수로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세상의 권력에 눌려 이방의 땅에 포로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 강변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을 때에 고통과 향수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주변의 자연경관을 바라보면서, 시온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 잡혔다. 그들이 가졌던 큰 고민은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의 침략을 받고 성전이 불타 사라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1).
2. 우리가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의 수금을 걸었도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살고있을 때에 바벨론 강가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그들은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버드나무에 그들의 수금을 걸어놓았다. 버드나무 '가막살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이 나무는 덥고 낮은 지대의 물이 많은 곳에서 주로 자라났다. 당시에 바벨론에서는 이 나무들이 물이 많은 저지대에서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이 나무는 당시에 슬픔과 비애를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은 바벨론 강가에 심겨진 버드나무, 즉 슬픔을 상징하는 나무에 자기의 수금을 걸어 놓았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수금을 타면서 흥을 돋울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울한 마음으로 수금을 나무에 걸어 놓고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포로가 되어 사는 유대인들은 마치 강가에 심겨진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와 같았다. 그들은 환난의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 우울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흥을 돋구어야 할 수금(하프)을 버드나무에 걸어 놓고 향수병에 빠져 있었다(2). 그들은 고국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컸기 때문에,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했다. 이것은 마치 아들을 잃은 과부가 기쁨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거나, 연인을 잃은 사람이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들의 슬픈 감정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 민족에게 멸망을 당하고 포로가 되어 지내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큰 슬픔과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스스로 기쁨을 거부하는 이러한 포로된 유대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이는 그 곳에서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우리에게 노래 말을 요청하고,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요청하며,
'우리를 위해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고 함이라!
시인은 1-2절에서 포로된 유대인들이 바벨론 강가에서 슬퍼했던 일을 회상했다. 그러면 왜 유대인들은 바벨론 강가에서 그토록 슬퍼하고 있었는가? 왜 그들은 흥을 돋우어야 할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놓았는가? 왜 기쁨의 상징인 수금이 슬픔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어야만 했는가? 그것은 바로 유대를 멸망시킨 바벨론 관리들이 유대 음악인들에게 연주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시인은 바벨론 사람을 두 가지 칭호로 불렀다. 첫째로 그는 바벨론 사람을 "우리를 사로 잡은 자"라고 불렀다. 바벨론 인들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들은 유대 왕의 두 눈을 뽑은 채로 사로 잡아갔으며, 유대인들을 허리와 목에 줄을 묶어서 잡아갔다. 바벨론인들은 유대 포로들을 짐승과 노예처럼 취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벨론인들은 유대 음악가들에게 연주하도록 요청했다. 어떻게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 음악가들이 자기 나라를 짓밟은 바벨론인들을 위해서 연주할 수 있었겠는가?
둘째로 시인은 바벨론 사람을 "우리를 황폐케 한 자"라고 부르고 있다. 바벨론인들은 피에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굶주린 이리처럼 유대와 유대백성들을 짓밟고 탈취했다. 그리고 그들은 유대인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 '시온의 노래'를 부르도록 요청했다. 여기에서 언급된 '시온의 노래' 는 신성한 노래, 또는 예배에 사용된 종교음악이다. 바벨론 인들은 유대인들을 위로, 또는 조롱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거룩한 노래를 연주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3).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대 음악가들은 도저히 거룩한 음악을 연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여호와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전을 짓밟은 바벨론 관리들 앞에서 거룩한 노래를 부르기를 꺼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죄로 인해 거룩한 음악은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될 위기에 놓였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끝내 돌이키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성도들이 이방인의 노리개감이 되게 만드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지은 죄가 있으면 속히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묵상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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