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주영회장의 어록중에서 ◆
정주영은 책임자를 ‘채금자’라고 했다.
책임자에게 “당신 해보고서나 그런 소리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생전의 정주영은 경영자, 기술자들이 난관에 부딪혀
“어렵다” “못하겠다”고 하면 어김없이 “해봤어?” 라고 반문했다.
우리는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
못한다면서 너무 긴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면서 중국과 일본에 짓눌려 상처투성이가 된 역사를 질긴 목숨처럼 이어왔다.
정주영의 “해봤어?”는 그런 역사에 대한 반란이었다.
6·25가 없었으면 세계 사람들이 이런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을 나라,
지지리도 못살고, 못 배우고, 물려받은 것 없는 이 나라에서도
시골 논두렁 잡초만도 못하게 태어난 사람이
“우리 한번 해보고나 나서 안 된다고 하자”고 했다.
그것은 울부짖음이었다.
현대중공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정주영이 1972년 울산 미포만에
세계에서 제일 큰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모두 “미쳤다”고 했다.
돈도 기술도 경험도 명성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한국인들에게 큰 배, 좋은 배는 일본 같은 나라들이나 만드는 것이었다.
정주영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봐, 해봤어?”라고 물었다.
혼자서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 한 장,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한 장을 들고 유럽을 돌았다.
외국 사람들이 “조선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배를 사주면 그 돈으로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다.
1974년 6월 조선소 완공 때는 이미 20만톤이 넘는 대형 유조선 12척을 수주한 상태였다.
조선소 준공식은 “해봤어?”라고 물었던 정주영에게 하늘이 해 준 대답이었다.
그해 첫 선박 명명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와서
현대중공업 본관 앞에 ‘조선입국(造船立國)’이라고 썼다.
‘우리도 배를 만들어 먹고 살고 나라를 지켜보자’ 는 비원(悲願)이었다.
그로부터 33년 뒤인 지난 5월 25일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도크에서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이 진수됐다.
정주영이 처음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해군은 미군이 버리다시피 한 구축함에 페인트칠을 해서 쓰고 있었다.
천지개벽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지스함 진수식을 며칠 앞두고 현대중공업을 찾아 볼 기회가 있었다.
1987년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노사분규 취재 때문이었다.
그때 정주영은 노조원들에게 우산대로 몸을 찔리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20년 전 그때 그 자리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신천지를 바라 보았다.
세계의 선주(船主)들이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황량할 정도로 넓었던 미포만이 이제 배 조립품을 놓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비좁아졌다.
거기서 2.5일마다 1억 달러짜리 거대한 배 한 척씩이 쏟아진다.
현대중공업 사람들은 “배를 찍어낸다”고 했다.
세계 조선 역사에 없던 일이다.
지금 전 세계 바다에 새로 나오는 배 5척 중
1척이 현대중공업 제품이고, 10척 중 4척이 한국산이다.
한국 조선소들은 중국이 만드는 싼 배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주문이 너무 밀려 배를 지을 도크가 없다.
길이 200m에 15층 높이의 배를 땅 위에서 조립해 바다로 끌고 가 띄운다.
이런 신 공법은 거의 모두 한국 조선소에서 나오고 있다.
선박 엔진을 만드는 공장의 상무는 이 기술자들을 “나라의 보물”이라고 했다.
이들이 세계 엔진 시장의 35%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지스함에선 아직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오래 전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