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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 낙스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Joyfule 2021. 8. 27. 07:14



 신앙위인 - 죤 낙스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4. 죤 낙스의 신학 사상

(4) 선택과 확신

예정론을 논의하면서 낙스는 호기심을 경게하고 있다오히려 우리는 전지하게 우리의 구속의 측량할 수 없는 신비를 묵상하고 주목해야 한다낙스가 여기에서 말하는 신비(Mystery)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헤의 신비이다예정을 다룬 글에서 낙스는 명백히 그리고 사려깊게 우리의 선택과 확신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두고 있다낙스는 말하기를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선택도 구원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며이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하고 있다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부르심을 받으며신실해지고순종하게 되며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낙스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택자(God's Elect one)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우리는 주님과의 연합 안에서 하나님의 이러한 선택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낙스의 신학에 있어서 선택과 확신 사이의 관계는 중요한 문제이다처음부터 그는 구원의 확신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그리고 확신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은 선택의 교리이다.

비록 우리의 구원은 복음의 약속들 안에서 견고하게 서지만선택의 교리는 우리에게 이러한 약속들로부터 얻는 위로를 능가하는 기쁨을 주는 것이다. 선택의 교리는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의 어떤 것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연약함이나 부족함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낙스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능력은 모든 자를 저주 아래 가두는 아담의 능력보다 훨씬 뛰어나시다그러므로 선택의 교리는 확신의 선포인 것이다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우리로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도록 정하셨으므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의 위로가 흔들릴 수 없는 그 기초 위에 있지 않다면그 위로는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가 택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낙스는 하나님의 사랑이 택자에게만 제한되어 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뜻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분명히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을 구속하기에 충분한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하나님의 은헤의 제한성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보편성에 대한 언급(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주이시다)과 긴장을 일으킨다. 낙스는 사실상 선택과 유기라는 이중 예정을 반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택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낙스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관해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방편으로 우리의 성화(sanctification)를 언급한다낙스는 베드로의 말씀대로 택자가 그들 자신의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참고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것은 그들의 삶에서 의의 열매들을 찾아보라는 것이다왜냐하면 살아있는 믿음으로부터 선한 일들이 나오기 때문이다또한 반대의 표식을 통해서 유기된 자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낙스는 선행을 신앙에 대한 외적 증거로 본다.

그에 의하면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삶 가운데 열매를 맺지 않고우리를 통하여 선행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선택을 확신할 수 없고 또한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낙스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성화를 언급함으로써 구원의 확신을 약화시켰다특히일시적 믿음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살펴볼 때 그러한 점이 뚜렷이 나타난다왜냐하면 때때로 낙스는 주장하기를택자와 유기된 자가 동일한 상태(the same state)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일시적으로는 유기된 자가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택자가 성령으로부터 받는 믿음과 성화와 다른 일시적 믿음이요 불완전한 성화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이 유기된 자의 일시적 믿음인지 아니면 택자의 구원하는 믿음(saving faith of the elect)인지 알 수 있는가만일 선행이 우리의 확신의 근거이고 유기된 자도 일시적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도 한다면궁극적으로 구원의 확신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5) 요약

낙스의 가르침과 칼빈의 가르침의 가장 큰 유사성은 아마 그들의 <그리스도 중심성>이다두 사람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신앙의 대상이요언약과 성례전의 본질이다또한 그리스도는 그들의 선택 이해에 있어서 열쇠와 같다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실현된다.

더우기칼빈과 낙스는 구원의 확신이 신앙의 본질에 속한다고 주장한다이와같이 주장하면서 두 사람은 모두 믿음의 시선을 그리스도에게 돌리게 한다.

또한 두 사람은 일시적 믿음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을 배경으로하여 확신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다일시적 믿음에 관해 논하면서낙스는 칼빈보다 더 나아가고 있다즉 낙스는 우리의 확신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과 열매에 여지를 제공해 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스는 우리가 구원과 확신 그리고 성화를 위해서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의 가르침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낙스는 두가지 면에서 칼빈을 넘어서고 있다(이것은 그에게 일종의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로그는 권징을 참된 교회의 표식의 수준으로 올려놓고 있다그는 권징을 말씀과 성례에 관련시킴으로써 은혜의 본질에 대한 혼란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따라서 이에 뒤따르는 자기성찰과 목사와 장로들에 의한 살펴보는 일’(examination)은 스코틀랜드 신학 안에 율법적 경향’(legal strain)을 초래하였다결국 여기에서 율법적 회개가 나타나게 되었다하나님의 구원 서정(God's order of salvation)에 있어서 회개가 은혜에 앞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이 나타난 것이다.

둘째로낙스는 하나님의 언약을 민족적 맹약(national league)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즉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결속(동맹)으로 보고 있으며그 결속의 유지를 위해 인간이 우상숭배로부터 등을 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따라서 낙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for us in Christ) 하나님께서 맺으신 새언약을 덜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그는 거룩한 민족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에 강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은 우리의 영적인 시선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로부터 돌려서대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성찬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적 설교와 가르침이 율법적 경향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즉 복음보다 율법이 더 강조되거나믿음보다 회개가 우선수위에 있어서 먼저 강조되는 것이다.

율법적 경향의 설교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조건적인 것으로 만든다논리적으로 믿음이 홰개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칼빈의 가르침이다.

교회는 언제나 인간중심적 관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우리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the finished work of Christ)을 지속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 제자도>에 관한 복음주의자들의 생각에도 함정이 있을 수 있다거의 예외없이 제자도에 관한 가르침은 우리가 하는 것’(what we do)에 제한되어 있다(성경공부성경암송기도전도 등).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계속 행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 이해하여야 한다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나 개인을 바라볼 때거기에는 언제나 펠라기우스적 요소들(Pelagian elements)이 침투할 수 있다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속저인 제사장직(Christ's continuing priesthood)에 관한 성경적 교리를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