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은 변명이 없다.
엊그제는 필자와 오랫동안 화장품거래를 했던 대리점 여직원이, 갑자기 자동차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이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서 어린 남매를 억척같이 키우던 엄마였다. 작년에 딸이 대학에 입학했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뜨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그러나 공동묘지에 가보면 죽을 때가 되어서 그곳에 온 사람은 없다.
사망의 원인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이 찾아온 시기가 너무 일찍 인지는 모르겠지만, 찾아올 게 찾아온 것일 뿐이다. 이처럼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나이 순서대로이지만, 이 땅을 떠나는 차례는 순서가 따로 없다. 그래서 영혼의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에 와서 주일성수를 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행위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보장은 성경에 없다. 주일성수라는 단어도 성경에 없는 말을 사람들이 지어내가지고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양 잘못 가르치고 있고, 교회봉사나 십일조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면 세상에서 복을 받아 하는 일이 형통할 거란 말도 성경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뭐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정확한 말은 전혀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희생행위나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형식적인 종교행위만을 가지고 천국의 자격이나 축복의 잣대로 삼으시지 않는다. 희생적인 신앙행위의 속내나 동기,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한다.
그 중에 가장 필요한 잣대가 하나님을 찾아오는 기도의 습관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심으로 부르고 간절히 성령의 내주를 요청하는 이들을 기뻐하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도의 습관을 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리고는 다른 신앙행위로 대치하고 자기만족에 빠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틈만 나면 하나님을 부르고 찾아오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 말씀을 모르지 않지만, 여전히 그런 기도의 습관을 들일 생각이 없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눅14:16~20)
위의 내용은 천국을 초청하는 예수님의 비유이다. 그러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급히 해야 할 일들을 변명하며 초청을 거절하고 있다. 밭을 산 사람은 빨리 밭에서 일을 해서 소득을 내고 싶었고, 소를 산 사람도 자신의 수입원이 될 소를 빨리 훈련시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을 감추지 않는다. 다만 결혼을 한 새 신랑은 신부와의 달콤한 신혼생활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 돈 때문인 앞선 두 사람들과 다른 이유일 뿐이다. 어쨌든 위의 세 사람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돈을 벌고 쾌락을 즐기는 일에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진 상태이다.
당신이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위의 세 사람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라고?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기 위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러나 예배의식이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당신이 선택한 신앙방식이지 하나님이 성경에서 제시한 방식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신앙행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체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자녀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일주일에 1시간짜리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천국을 자신하고 있으니, 당신의 뻔뻔하고 무지함에 기가 찰 노릇이다.
아니라고? 기도를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고? 그렇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잣대 역시, 당신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잣대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을 선포하는 것도 열심히 기도하는 결심임에는 틀림없지만, 하나님은 그런 기도방식을 기뻐하신다고 성경에 밝힌 적이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방식은 형식적인 기도회에 참석하거나 희생의 강도를 더하는 기도방식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매일처럼 하나님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버느라고 바빠서 기도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직장에 출근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기도시간을 내느냐고 뾰쪽하게 쳐다보면 서 필자를 힐난하고 있다. 그리고 퇴근해서 집안일을 하랴, 자녀 챙기랴, 친구를 만나고 직장동료들과 회식하느라, 기도할 시간을 도저히 낼 수가 없단다. 필자가 당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변명을 단지 하나님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는 변명으로밖에 여기시지 않는다.
위의 비유에서, 밭을 사고 소를 사고 결혼한 사람들도 저 나름대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 변명이 이유가 아니라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런 일들을 천국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하나님을 화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라는 걸 잊지 마시라. 그 분은 당신이 사랑하는 그 무엇일지라도, 우상숭배라고 여기시며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봄이 되면서 얼음장이 꺼지는 강을 건너본 경험이 있으신가? 겨우내 단단히 얼었던 강이라도 봄이 되면 실금이 가고 쩍 갈라지기 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이제 막 얼음이 녹는 강을 생각 없이 건너가다가 얼음장이 갈라지는 뜨악한 상황에 직면했다면, 당신이 취해야 할 선택은 거의 없다. 얼음이 꺼지지 전에 걸음아 나살려라 하면서, 냅다 뛰어서 강 건너편으로 달려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라고 하면, 이런 저런 핑계로 나중에 하겠다고 한다. 그러한 태도는 이제 막 얼음장이 갈라지는 강에서 미적미적 거리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신이 강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죽을 때까지 기도하지 못하는 변명과 이유를 대면서 시간을 허비할 게 뻔 하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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