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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 어거스틴

Joyfule 2015. 5. 27. 09:35

 

참회록 - 어거스틴

 

 

 

1권

 

1장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는 그는 마침내 하나님을 발견한다.

 

1.주님, 한줌 흙에 지나지 않는 피조물이오나 감히 입술을 열어 당신에게 찬양을 드립니다.

당신에게 찬양을 드릴 때에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오며, 그리하여 주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 까지 우리의 마음은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오 주여! 내게 지혜를 허락하사 어느 일을 먼저 해야 할지를 깨우쳐 주소서. 당신을 부르는 일과 당신에게 찬양을 드리는 일 중에서 어느 일을 먼저 해야 합니까? 또한 당신을 아는 일과 당신을 부르는 일 중에서 어느 일을 먼저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당신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만일 당신을 알지 못하는 자가 당신을 부른다면, 그는 진정 당신이 다른 존재를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10:24)

주님을 찾는 자마다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시22:26). 왜냐하면 찾는 자마다 주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마7:7), 또한 주님을 발견한 자마다 주님께 찬양을 드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나는 주님을 간절히 구함으로써 주님을 찾을 것이며, 당신을 믿음으로써 당신을 부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당신이 이미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아들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전도자의 사역을 통하여, 나의 영혼 속에 성령으로 믿음을 허락하셨사오니, 이 믿음으로 당신을 부르나이다.


2장_우리가 간구하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는 그 안에 거한다.

오 나의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내 안에 거하시지 않는 한 나는 한시라도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자입니다.“만물은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으며 주에게로 돌아갑니다”(롬11:36). 그러므로 내가 그러한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당신께서 내 안에 계시니 내가 어디로 가서 당신을 부르겠습니까?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4) 그런즉 천지에 충만하신 당신을 어디에 가서 내 속에 모셔올 수 있단 말입니까?


3장_하나님은 천지만물에 충만하시다. 그러나 하늘도 땅도 그를 모셔들일 수 없다.


4장_하나님의 주권은 자고하시고 그의 섭리는 헤아릴 수 없다.

당신은 언제나 우리 앞에 계시지만 우리는 당신을 다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은 홀로 변하지 않는 분이시나 모든 만물을 변하게 할 수 있는 분이시며, 당신은 결코 새로운 분은 아니시나 시대에 뒤진 옛날 분도 아닙니다. 항상 만물을 새롭게 하시며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되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당신의 소유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빚진 자처럼 더욱 풍성히 주시는 분입니다. 당신은 결코 빚진 적이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빚을 갚아주시며, 그렇게 빚을 갚으면서도 결코 잃은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나의 생명되시고 나의 거룩한 기쁨 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렇게 입술을 열어 주를 찬양합니다. 당신을 향하여 입술을 여는 자마다 이렇게 찬양하게 하소서. 유창한 입술을 닫고 침묵하며, 교만한 마음으로 주를 향해 입술을 열지 않는 자마다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5장_그는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과 죄에 대한 용서를 간구한다.

오! 내가 어떻게 하여야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습니까? 나의 유일한 선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여, 내 심령 속에 들어오시어 역사하셔서 나로 하여금 고통을 잊게 하시며 당신을 의지하여 살게 하소서.

당신은 내게 무엇이 되십니까?

당신의 연민으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나를 가르치사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소서!

오 주님! 또한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 됩니까?

내가 무엇이길래 주님은 내게 사랑을 요구하시며,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드리지 못할 때, 노를 발하시며 고통스러운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경고하십니까?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것인지요?

오 주 나의 하나님, 당신의 자비하심으로, 당신이 내게 무엇이 되는지를 내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내 영혼에게 이르소서. 나는 네 구원이 됨이니라(시35:3).

오 주여! 말씀하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오 주님! 보시옵소서. 내 심령이 당신 앞에 열렸나이다.

당신에게 나의 귀를 기울이오니 “ 내 영혼에게 말씀하옵소서. 나는 네 구원이 됨이니라” 이러한 음성을 듣고 당신에게 의지함으로 행동하게 하소서.

당신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옵시고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나로 먼저 죽더라도 당신의 얼굴을 뵈옵고 죽게 하소서.


내 영혼의 집은 당신께서 들어오시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그러하오니 당신께서 편히 들어오실 수 있도록 넓혀 주옵소서. 지금은 내 영혼의 집이 너무나 황폐하였사오니 주께서 고쳐 주옵소서. 내 영혼의 추한 모습들이 당신 눈에 거슬리더라도 내 모습 그대로 주께 고백하나이다.

그러하오니 오 주여! 당신 아니면 누가 정결케 할 수 있겠사오며, 당신이 아니면 누구에게 내가 간구하겠나이까?

오 주님!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주의 종을 살리사 대적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하옵소서.내가 믿는고로 말하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32:5)

오 주님! 당신은 진리이시오니 더 이상 당신과 쟁변하지 않겠나이다.(욥9:3). 내가 범한 죄악이 스스로 외치오니 내가 스스로를 속일 수 없사오며(시26:12),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쟁변할 수 없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누가 주 앞에 서리이까?”(시130:3)

 

7.비록 먼지요 티끌과 같은 나 자신이오나 주의 사랑과 인자하심을 고백하게 하소서. 나를 비웃고 조롱하는 인간에게 고백하지 말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하심 앞에 고백하게 하소서.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글쎄요. 죽어가는 생명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살아가는 주검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나의 존재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출발하여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9.천지만물의 근원이 당신 안에서만 영원히 존재하며, 흐르는 샘물과 변화하는 삼라만상이 영원히 변치않는 당신 안에 존재합니다. 잠시 존재했다 없어지며 비합리적인 만물의 영원한 이성이 당신 안에 존재합니다.

오 주여! 내게 말씀하소서. 당신에게 간구하는 이 종에게 말씀하소서. 만물을 불쌍히 여기시는 이여, 이 불쌍한 종에게 말씀하소서.

 

10.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주 하나님, 당신을 인정합니다. 비록 내가 기억할 수는 없으나 어머니의 태 이전부터 내 형상을 지으시고 나의 유년시절을 주관하신 당신에게 찬양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다른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짐작할 수 있게 하셨고 연약한 여성들의 강한 힘을 많이 믿을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일과 그후에 일어날 모든 일들과 어제와 그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언제나 주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들입니다. 비록 모든 이들이 그같은 사실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무슨 상관입니까? 당신을 찾지 않으려는 어리석음에 저들을 두지 마시고, 비록 당신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하여 주옵소서.


11.주 하나님 ! 들어 주소서! 아 ! 인간의 죄악이여!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당신은 그러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으나, 인간 속에 있는 죄는 당신이 만드시지 않으셨사오니 나의 유년시절의 죄를 깨닫게 하여 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주께서 감찰하실진대 죄 없이 정결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지 하루밖에 되지 않는 갓난 아이라 할지라도 죄없이 정결하다 할 수 없습니다. 나로 하여금 이같은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신 이는 누구십니까? 그 시절 나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요?

유아시절의 나의 행동 역시 꾸짖음을 받을만한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꾸짖음도 노여움도 모르는 때인지라 어른들이 그들의 전통과 이성적인 판단으로 유아들을 꾸짖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 주님! 나의 유아 시절은 제게 별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혹은 다른 아기들을 보고 적당히 짐작해 볼 뿐입니다. 그러나 나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나는 유아 시절에도 미움의 감정이 있었음“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13.어린 아이가 말하는 법을 배울 때, 그는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언어와 행동을 따라 배웁니다. 우리 조상들은 매를 때리는 일을 옳은 일로 여겼습니다. 매를 맞고 자라온 사람들은 계속 매를 때림으로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길을 강요했고 우리는 마지 못해서 그 길로 끌려 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내린 가증한 노동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 주여! 우리는 당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그들로 인하여 당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각기 능력에 따라 위대하신 당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의 눈으로 당신을 볼 수 없으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오 주님! 당신은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주셨으며 이는 우리의 연령에 비교할 때에 충분한 것으로, 주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놀며 쏘다니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논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벌을 받았지만 실상 그들도 역시 놀기를 좋아하고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놀이와 게으름을 “사업”이라고 변명하며 학생들의 놀이와 게으름에는 벌을 내립니다. 또한 아이들이 매를 맞아도 동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정으로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어른이라면 공놀이를 하느라고, 배워야 할 학업에 별로 진전이 없다고 해서 매질을 하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어른들은 더욱 많이 놀고 있지 않습니까?


21.아에네아스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 디도의 죽음에는 눈물을 흘릴 줄 알면서도, 하나님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는 동정의 눈물조차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가엾고 불쌍한 사람입니까? 나는 내 마음의 빛이 되시며 내 영혼의 양식 되시고, 내 정신에 활력을 주시며 내 사상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죄인입니다. 나는 주님을 거스리며 세상을 벗삼은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이 같이 세상과 간음한 죄를 지었을 때, 나를 향해 세상 사람들은 “잘하였도다 잘하였도다”라고 부르짖었고 이는 세상과 벗하여 간음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약4:4)

“잘하였도다 잘하였도다”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마침내 나는 주님께 대항하여 간음죄를 범한 자신을 별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서 가장 타락한 길을 걸으며 당신을 저버린 죄인으로서 결국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갈 존재였습니다.


22.나의 하나님, 주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내 영혼의 고백을 들어 주소서. 내 영혼이 주님께 고백할 때 나의 허물을 정죄하여 주시며, 나를 당신의 선한 길로 이끄시어 당신 안에서 참 인식을 얻게 하소서.


24.오 주여!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허락하신 징계와 연단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며 내가 걷는 모든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하시는 당신의 자비로운 은총에 대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전에 내가 추구했던 세상의 방탕한 유혹과 쾌락보다도 당신께서 더욱 달콤한 기쁨이 되어 주사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내 온 마음을 바쳐 당신을 사랑하게 하시고, 내 모든 힘을 다하여 당신의 손을 붙들게 하시며, 이 세상 끝날까지 나로부터 모든 유혹을 거두어 주소서.

오 ! 나의 하나님! 당신은 나의 왕이시며 나의 주이십니다. 말하기, 읽기, 쓰기, 산수 등 내가 어려서 배운 학문 전부를 당신을 섬기는 데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소서. 내가 세상의 무용한 일들을 배울 때면 당신은 곧 사랑의 징계를 내려 주셨고, 그러한 일에 탐닉했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물론 세상의 학문 속에서도 여러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마는 그러한 것들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학문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길이야말로 소년들이 걸어가야만 하는 안전한 길입니다.


27. 오 나의 하나님! 재능에 관하여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천부의 재능을 주셨건만 나는 그것을 얼마나 어리석은 일에 낭비해 버렸는지 모릅니다.

오 하나님! 세상을 자랑하는 재능들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며, 나의 진실된 인생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입니까? 웅변을 통하여 많은 박수를 얻으며 같은 또래의 동년배들이나 학급에서 가장 우수했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이 모든 것이 아침 안개요 바람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그저 나의 언어와 지성을 우수하게 활용했다는 사실이외에 무슨 더 큰 의의가 있겠습니까?

진실로 그러하오니 주님! 나의 그 뛰어난 재능과 지혜로 주님을 찬양했어야 했습니다. 내 영이 눈을 떠서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찬양했어야 했습니다. 그랬었다면 그때의 찬양과 영광이 지금처럼 땅에 떨어져 뒹구는 한가한 잡담이나 날아다니는 새들의 보잘것없는 먹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타락한 천사들의 제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18장

주님 언제까지 침묵하시며 언제까지 참으려 하십니까?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27:8)


사람들은 자신이 남을 미워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보다도 남이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자기가 당하는 해가 더 큰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9장

어린 시절의 나는 불쌍하고 가엾은 존재로서 이러한 철없는 생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어린 시절으리 이러한 일들을 이제 당신께 고백하고자 하나이다. 이처럼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자라났으며 그 당시 이러한 일을 가장 큰 기쁨이요 미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눈으로 비추어 본다면 주님을 멀리 떠나 지옥의 구렁텅이를 방황하는 불쌍한 죄인(시31:22)에 불과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불꽃과 같은 눈동자 앞에서 저보다 더 천하고 역겨운 죄인이 누구이겠습니까? 나는 가정교사나 학교의 선생님들 그리고 심지어는 부모님에까지 거짓말을 하였으며, 이는 결국 놀기를 좋아하고 세속적 구경거리에 정신을 빼앗겨 열심히 배우들을 흉내내려는 쓸데없는 허영심에 따른 소치였습니다. 나는 또한 탐심의 노예가 되어 부모님의 장롱이나 책상에서 물건을 훔쳤고 나보다도 더 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면서 훔친 것들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즐겁게 어울려 놀았지만 결국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훔친 돈과 물건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 때에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비열한 속임수도 거리낌없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가 내게 공평하지 못한 방법이나 속임수를 사용했을 때는 마구 상스러운 욕을 퍼부어대면서 그를 공격했습니다. 반면에 나의 속임수가 상대방에 들켜 비난을 받을 때면 나는 결코 굴복하거나 승인하지 않고 격렬한 화를 내며 대들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보고 어떻게 “어린 시절의 철부지 같은 순진함”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 하나님 ! 이 불쌍한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가정교사, 학교 선생님, 축구공, 땅콩, 장난감, 참새 등을 맴돌았던 어린 시절의 작은 죄인들은 점점 성장해 감에 따라 권력, 황, 황금, 돈 , 영토, 노예등의 커다란 죄악으로 확산되어 갑니다.

마치 어린 시절에 잘못을 저지르면 선생님의 회초리로 끝나지만, 점점 커감에 따라 더욱 무서운 형벌로 바뀌어 가듯이 말입니다. 오! 우리의 왕이 되신 주님은 “천국은 바로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19:14)고 말씀하시며 순진한 어린 아이들의 겸손함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하오니 저로 하여금 순결한 어린 아이가 지닌 겸손한 모습을 배우게 하옵소서.


20장_은혜와 감사

그러하오나 주님! 설사 주님께서 저를 어린 아이로만 버려 두신다고 하더라도, 우주의 창조주요, 지배자이시며 지극히 선하고 높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나이다. 이는 내가 이제껏 주님의 사랑으로 존재하고,느끼고, 살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스런 우주의 한 작은 피조물에 불과한 저에게 영원한 구원의 섭리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적인 지각을 통하여 나의 모든 감각을 통제할 수 있었고 세밀한 것들을 생각하고 추구함에 있어서도 진리 안에 기뻐하기를 배웠습니다. 나는 또한 속임수를 싫어했고 놀라운 기억력과 능변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며 우정으로 마음을 위안하고 고통과 비굴함과 무지를 멀리했습니다.

이 지극히 부족한 미말의 피조물 안에서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주님께 영광 돌릴 일이니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이는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한 것으로써 이 모든 것들이 합하여 내게 유익함을 주었습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어린 시절에는 나에게 허락해 주신 이 모든 선한 것들로 인하여 주님 안에서 참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참 만족과 기쁨과 진리를 하나님 안에서 찾지 못하고 세상 가운데서 찾으려 했기 때문에 나의 발길은 슬픔과 혼란과 실수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내게 꿀송이보다 더 달콤한 기쁨과 영광과 확신을 주시는 나의 하나님이시여! 주신 선물들로 인하여 당신께 감사드리오며 간구하오니 제게 주신 선물들을 잘 보전할 수 있게 하소서.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주님께서는 저를 보전하게 되고, 제게 주신 선물들이 자라 완전하게 될 것이며, 애초에 당신이 주신 나 자신의 모습으로 당신과 늘 함께 거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2권

1.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탐닉하며 방황할 때, 산산히 조각나 흩어졌던 나를 주님은 하나로 모아 주셨고 아픈 상처를 꿰매어 주셨습니다. 오 주님! 나는 나의 젊음에 불을 질러 천박한 것에서 만족을 구하였고 비열하고 음침한 정욕에 휩쓸리며 점점 거칠어져 갔습니다. “나의 영화는 좀이 먹어 소멸하였고”(시39:11) 당신의 눈 앞에 추한 몰골을 드러내면서도 오직 나 자신의 만족과 세상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살아왔던 것입니다.

 

2.나는 점점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길을 잃고 헤매었으나 주님은 나를 홀로 내버려 두사 나의 몸은 이곳 저곳에서 부딪히고 피흘리고 찢겨졌습니다. 내가 온갖 쾌락과 정욕의 도가니 속에서 들끓어 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침묵하셨으며, 피곤에 지친 교만한 내 영혼은 끊임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방황하며 열매없는 죄악과 슬픔의 온상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주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오 주님! 언제나 내게 기쁨을 허락하시렵니까?

 

3. 오 주님! 방황과 무질서에서 돌이켜 주사 세상의 쾌락을 절제할 수 있도록 도우시며 불안과 혼돈 속에서 지켜 주옵소서. 풀처럼 시들어버릴 인생에서 육체의 아름다움을 자랑치 말게 하시며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젊음의 파도와 격랑을 뚫고 폭풍을 재우사 도덕적 결혼의 언덕에 닻을 내리게 하시며, 화평한 가정의 품에서 선한 목적으로 자녀를 키우게 하사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오 주님! 선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에덴에서 쫓겨날 때 내리신 가시덤불의 저주를 거두어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피해 땅 끝에 숨는다 하더라도 주님은 역시 거기에 계십니다. 구름 사이로 햇살을 비추듯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좀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4.그러나 이 불쌍한 죄인은 욕정에 눈이 멀어 물거품같은 육신의 길을 선택하고 세상의 격랑에 몸을 맡긴 채 주님을 떠났습니다. 나는 주님이 주신 모든 율법의 규례를 어겼으나 결코 주님의 채찍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그 어떤 피조물이 하나님이 채찍을 피할 수 있사오리까! 오! 자비로우신 주님은 언제나 불꽃같은 눈동자로 내 곁에 계셨고 내가 지은 죄악에 분노하셨습니다.

오! 주님 안에서만이 영원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읍니다. 세상의 눈물은 주님 안에서 희열로 바뀌며, 세상의 상처는 주님의 능력으로 치유함을 얻었고, 세상에서 죽음으로써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 육신의 나이 열 여섯 살 때에 나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주의 전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미친 세상의 정욕에 이끌리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금하신 규례를 어기며 부끄러운 죄악 속에서 헤매었고 정욕의 광란 속에서 완전히 미쳐버린 시절이었습니다.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올바른 결혼 생활을 통한 권면으로 나를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지려고 한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그저 내가 뛰어난 웅변력으로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훌륭한 연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9.나는 도둑질 하려는 욕망이 있었을뿐만 아니라 실제로 도둑질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가난해서나 먹을 것이 없어서 한 것은 아닙니다. 진리에 눈을 뜨지 못했고, 절제하지 못한 불의의 욕망과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도둑질은 물건이 필요해서나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단지 도둑질을 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고, 도둑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죄악을 행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포도밭 근처에 배나무를 우리는 나무를 흔들고 모든 과일을 다 따냈읍니다. 우리가 먹고 싶어서 한 짓은 아니었읍니다. 실제로 맛을 본 것은 두 세 개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버리거나 돼지에게 주었습니다. 하지 말라는 일들을 반항하며 우리는 쾌감을 느꼈습니다.

오 하나님! 나의 마음을 살펴 주옵소서. 지옥의 밑바닥에서 행하는 죄악으로 가득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합니다. 죄악을 행하려는 분명한 목적으로 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잘못을 잘못인 줄 모르고 이유없이 저질렀읍니다. 죄악은 더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했습니다.

이제보니 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목적으로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죄악 그 자체를 좋아한 것입니다. 타락한 내 영혼은 영원한 멸망으로 굴러 떨어졌읍니다. 목적없이 방황하며 수치스러운 죄악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10.금이나 은같이 아름다운 보석들을 볼 때 우리의 눈은 즐겁습니다.또한 명예욕,정복욕,정권욕도 상당한 매력을 지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소유하기 위하여 이웃을 마구 지배하려고 합니다.

오 주님! 우리가 이 모든 욕망을 추구할 수는 있으나, 그로 인하여 주님을 떠나거나 주의 규례를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추구할 것은 추구하되 결코 세상의 유혹에 따라 주님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옵소서.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고 연합함으로써 사랑의 띠로 맺어진 우정을 이루도록 도와 주소서. 헛되이 세상의 정욕에 지배받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세상의 작은 선을 추구하며 집착하다가 최고의 선이며, 규례와 진리 되시는 주님을 잊지 않도록 도우시며 주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을 얻도록 지켜 주소서.

세상은 우리에게 작은 기쁨과 만족을 선사하나, 천지를 창조하신 나의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시64:10)

 

13.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만유 위에 홀로 높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교만은 언제나 하나님보다 더욱 높아지려 합니다. 당신만이 홀로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은 고개를 들어 당신의 존귀와 영광을 가로채려 합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흥분하여 화를 내면 사람들은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두려워 할 자가 하나님 외에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벗어날 자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천지만물은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18. 오 나의 하나님! 젊은 시절 나는 주님을 떠나 제멋대로 방황하였습니다. 주님의 품을 떠나 길을 잃고 헤매었으며 나의 영혼은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제3권

 

1.나는 카르타고로 왔습니다. 순결하지 못한 욕정의 격랑이 내 주위에서 뒤끓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 사랑에 빠지지 않았으나 막연히 사랑을 동경했고, 보이지 않는 욕구로 인하여 사랑에 휘말리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사랑해야 옳은지, 사랑하기를 갈망하면서 모험을 찾아 정처없이 방황했습니다.

분명히 내 영혼은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기로에 처해 있고, 당신을 향해 목말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만족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가 내게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발걸음은 세상으로 빨랐고, 나의 영혼이 공허하면 할수록 세상은 더욱 내게 가까워졌습니다.

나의 영혼은 점점 병이 들어 곪아 갔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쾌락은 더욱 즐거워져 갔습니다. 순결하게 지켜야 할 우정의 물줄기를 나는 육체의 욕망이란 흙탕물로 더럽혔습니다. 또한 우정의 순수한 빛은 더러운 쾌락의 먼지로 어둡게 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위선에 찬 부랑자가 되었고, 영혼은 육체의 정욕과 죄악으로 더럽혀져 있었으면서도, 외모로는 항상 인자한 인격을 지닌 신사로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이처럼 육욕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사랑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오 자비의 하나님! 당신은 나로 하여금 쾌락에서 눈을 뜨게 하셨고 고통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오 주님! 당신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당신이 내리신 회의와 공포와 분노로 달구어진 채찍의 고통은 오히려 저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4.나는 사랑스러운 목자의 품과 양의 무리를 떠나 호롤 방황했던 불쌍하고 길잃은 양이었습니다.

내 생활이 갈수록 비참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 세상병에 심하게 중독되어 비극을 보면서도, 슬퍼하고 있으면서도, 배우가 당하고 있는 고통에 동정을 느끼면서도, 어느 새 나는 사악하고 불륜한 생각을 추구하고 있었고 아마도 더욱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상처가 난 곳을 때가 낀 손톱으로 더욱 굵어서 고름과 악창이 날 정도로 나의 영혼의 중병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벌겋게 성난 종기와 흘러내리는 고름과 진물처럼 내 생활은 마구 흐트러져 갔읍니다. 오 하나님! 이 불쌍한 죄인은 바로 이렇게 생활에 온 것입니다.

 

5.나는 길잃은 양과 같이 멀리멀리 방황하고 있었지만 주님의 자비롭고 신실한 보호하심은 내 머리 위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나는 중한 되를 저지른 죄인이며 세상의 무익한 호기심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주님을 떠나 죄악의 길을 걸었고, 사탄과 마귀를 위해 위선과 죄악 속에 방황했습니다.

이러한 죄악으로 인하여 주님은 내게 매를 들어 치셨습니다. 당신을 예배하는 의식 중에서도 당신이 거하는 예배당 안에서도 당신의 거룩하심에 감히 도전하였고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같은 죄악으로 인하여 당신은 째찍을 드셨고 저를 엄히 문책하였으나, 내가 지은 범죄에 비하면 지극히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오 자비가 한량 없으신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 살을 뜯으려고 내게 달려드는 파괴자들로부터 나를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주님을 떠나 죄악에서 쾌락을 찾는 목이 곧은 자들이며, 나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주님을 떠나 세상 가운데서 방황했습니다. 주님의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걸었으며 세상의 탐욕을 즐기는 자유를 추종하고자 했습니다.

 

8.오 나의 하나님! 그 당시 나의 마음은 불타고 있었으며 세상의 물질을 포기하고 주님에게로 날아 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대해 주실지에 관하여는 확신이 없었고 지혜의 근본이 주님에게 있었음을 아직 알지 못하였읍니다.


10.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욱 중요시 합니다. 해와 달을 창조하신 하나님보다는 현상적인 해와 달을 감상하고 그곳에서 진리를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환상이요, 허상일 뿐입니다. 이같은 허상적 환상은 인간의 정신을 미혹하게 됩니다.

나는 이러한 환상과 허상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으나 내가 맛본 것은 하나님이 아니요 공허한 허구였습니다. 결국 그들로부터 참 만족을 얻지 못한 나는 영양실조에 걸린 것입니다. 꿈에서 보는 음식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음식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생시의 음식은 먹을 수 있으나 꿈속의 음식은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나의 방법은 이렇듯 허망했습니다. 마치 꿈속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헛되듯이 자신의 좁은 지혜와 상상력 안에서 하나님을 찾으려 했습니다. 결국 나는 환상을 먹고 살아왔지만 실상 그것이 나의 피와 살이 된 것은 아닙니다.


11.오 주님! 당신은 나의 사랑이십니다. 당신께 모든 것을 의지하오니 당신의 노력으로 나를 강하게 붙드소서. 당신은 우리가 흔히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어떤 물체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당신이 아니라 다만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일 뿐이며 그 어느 것도 지존자이신 당신의 위치와 대치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인간의 머리로 꾸며낸 환상이나 허구가 아니며, 실제로 있지도 않은 허상의 물체나 존재도 아니십니다.

환상에 의존하는 인식보다는 오히려 실존하는 물체의 형상을 통하여 인식하는 것이 분명하며, 그것보다는 물체의 존재를 직접 인식하는 것이 더욱 분명할 것입니다.

생명없는 육체는 썩어 없어집니다. 따라서 육체의 생명은 육체보다도 더욱 확실한 존재입니다. 또한 육체의 생명을 주장하는 영혼은 육체의 생명보다도 더욱 확실한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육체의 생명을 주장하는 영혼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혼에 생명을 넣어주시는 분이시요,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이시기도 합니다. 당신은 영원히 존재하는 분이시기에 우리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오 내 영혼의 생명되신 주님이시여! 그때 당신은 어디 계셨으며 내게서 얼마나 멀리 계셨습니까? 나는 탕자처럼 당신을 멀리 떠나 낯선 타향에서 방황하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제대로 얻어 먹지 못하였습니다. 나에게 닥친 세상의 유혹은 시인들과 문법 선생님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환영과 허구에 불과한 물질 신앙은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유해한 독소 같은 것입니다. 나는 시와 운문을 사랑하였고 그것으로 나의 양식을 삼으려고 했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참 진리되신 당신을 찾기 위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내가 주님을 찾아 나서기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해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짐승 위에 뛰어나게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뜻에 따라 인간에게 허락하신 지성과 이성으로 하나님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나는 보잘 것 없는 육체적 감각으로 하나님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진정 나를 사랑하셨고 내 안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지극히 지존하신 하나님께 내가 도달할 수 없음을 아시고 내 영혼 깊은 곳으로 주님께서 내려와 찾아 주셨습니다.


12. 나는 악의 근본 개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 육신의 눈으로는 물질적 현상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내 정신의 눈으로는 물질적 현상 뒤에 작용하는 원리나 환상을 볼 수 있었으나, 나는 하나님이 영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그“넓이”와 “무게”와 “부피”를 제한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 인간이 그 넓이와 무게와 부피를 한정된 언어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공간 속에 제한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무한성을 결코 인간의 유한성 속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다.

또 한가지 내가 무지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이라는 사실 이외에 우리가“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창1:27)창조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 놀라운 사실을 이전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16.오! 지존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하시지 않는 분이신데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모독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이 하나님께 대항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대적자를 벌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는 곧 인간에게도 악을 행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정욕대로 행하기를 원할 때 하나님은 인간을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십니다. 오 주님! 인간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저희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욱 경배하고 섬겼습니다.


당신은 모든 불의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자복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안타깝게 부르짖는 죄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자신을 묶고 있는 모든 죄의 사슬을 끊어 주시며 우리의 교만한 자유의 뿔을 꺽어주시어, 전체로 선이신 당신께 돌아가게 하여 주십니다.


당신의 명령을 깨닫는 자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19.오 지극히 높으신 곳에 계신 하나님이시여! 나를 위해 펼쳐 주신 당신의 손은 이 깊은 흑암으로부터 나를 건져 주셨습니다. 이는 나의 어머니가 무릎 꿇고 눈물로 당신께 기도드린 까닭입니다.


오 선하신 주님이시여!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우리 인간을 한사람 한사람 돌보아 주십니다. 마치 주님께서는 한 사람만을 위하여 돌보시듯 하시며 모든 사람들을 마치 그들이 단 한 사람인 것처럼 사랑으로 돌보아 주십니다.


“자 ! 이제는 나를 떠나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4권

 

1.만일 주님께서 살아 계시지 않으셨다면 나의 인생은 얼마나 비참하였겠습니까?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오 주님! 당신의 보호하심을 벗어난 나의 생활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결코 주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사오니, 비록 우리가 권세있는 자들로부터 조롱과 핍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비록 우리가 연약하고 가엾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찬양과 고백을 주님께 돌리게 하옵소서.

 

3.상상력이 풍부했던 이 불쌍한 영혼은 신랑되신 주님 없이 방황하며 영적인 간음을 저질렀으며 허구를 맹신했고 그저 바람처럼 흔들렸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결코 점술가나 사탄에게 어떠한 희생제물도 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8.“뉘라서 능히 여호와의 능하신 사적을 전파하며 그 영광을 다 찬양할 수 있단 말입니까?”(시106:2)

비록 개인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받는 이 엄청난 체험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놀라운  모든 역사를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당신의 심판의 깊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10.주님은 어디든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불행 속에서도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지 못할 때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며 불안해 합니다.

우리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고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소원이 주님께 상달되기 때문입니다.

 

11.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모두 불행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언젠가는 잃게 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고, 또한 잃기 전이라도 마찬가지로 불행할 따름입니다.

내 친구를 잃은 것보다도 이러한 세상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불쌍히 여겼던 것입니다.

오 주여! 나의 마음을 살펴 주옵소서. 소망의 주님이시여, 나의 속마음을 감찰하여 주옵소서. 세상 정욕에 사로잡힌 불쌍한 죄인을 정결하게 씻어 주소서.

 

12.나는 상처입고 찢어진 내 영혼을 이끌고 피를 쏟으며 인생을 방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영혼이 쉬어야 할 안식처는 찾지 못했습니다. 아늑한 숲을 거닐어도, 즐거운 놀이와 노래를 부를 때도, 꽃내음이 그윽한 정원을 거닐어도, 푸짐한 음식이 차려진 잔치 속에서도, 향락의 침상에서도, 책을 읽어도 시를 읊어도 내 영혼이 쉬어야 할 안식처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싫어졌고 빛까지도 싫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내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귀찮고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에게 갈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정욕을 완전히 끊지 못한 우유부단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하였고 세상의 헛된 쾌락과 탐욕이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자리 잡았습니다.

 

13.시간은 쉬지 않고 흐릅니다. 시간은 게으리지 않고 정직하게 흐립니다.

시간은 매일매일 왔다가는 흘러가지만 우리의 정신 속에 신기한 환상과 기억을 남겨 놓습니다.

이 땅위에서 한줌의 흙으로 변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인간으로 사랑했기에 결국 나는 해변의 모래 위에 물을 붓는 것처럼 내 영혼에 허무를 부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시련의 탈출구로 나는 친구들을 사랑하려 하였고 그러한 시도는 마치 내게 도움과 행복과 기쁨을 안겨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이같은 행위는 결국 거대한 허구로서 비참한 종말뿐이었고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으로 입증되는 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연약한 인간은 또 다른 친구들에게서 만족을 얻기 위해 방황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14. 이땅에서 주고 받는 사랑의 행위는 순간이기에 인간의 덧없는 것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친구를 잃지 않는다.

인간은 종종 양심이란 아름다운 명목으로 인간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는 잘못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사랑해야 할 자를 미워한다든지 미워해야 할 자를 사랑하면서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오 사랑의 주님이시여! 당신을 사랑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또한 당신 안에서 친구를 사랑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세상의 친구를 잃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거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세상의 부모가 자녀를 잊을 수 있으나 결코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잃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떠나지 않는 자를 결코 하나님께서도 떠나지 않습니다.


15.인간의 영혼이 하나님 없이 어디로 향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영을 떠나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결국 그 영혼은 허무와 괴로움만 더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잠시동안 생성되었다가 곧 소멸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모든 것은 결국 멸망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 속에서 안식을 구하나 세상은 그들에게 참 평안과 안식을 줄 수 없습니다. 육체의 관능적 감각을 따라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니 “역사의 한 정점에서 태어나 제한된 시공을 살다가 종점으로 사라져야 할 운명‘임을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16.오 나의 영혼이여! 그대는 어리석은 길을 걸어가지 말라. 세상의 유혹에 파묻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지 말라. 너는 잘 들으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그는 친히 너를 부르시며 그에게로 돌아오라고 권고하신다. 네가 그분을 배반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너를 버리시지 않는다.


너는 결코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을 수가 없다.


오 나의 영혼아! 너는 영원한 진리 안에 거하라. 확고한 진리 속에 거처를 삼을 때 너는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너는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그때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지극히 작은 일부인 육체의 감각적 관능만을 의지한다면 결국 영혼은 허무한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부분으로 존재하는 개체는 별 의미가 없으나 전체로 조화되서 생명과 영혼과 우주를 이루는 것이다.


18.네가 만약 아름다운 육체를 가져 즐겁거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사랑을 묶어 육체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드리라. 육체의 소욕을 따라 쾌락을 즐길 때 영혼은 시들어 버리게 된다. 네 영혼에 즐거운 일이 생기거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즐거워 하라.

너희가 무엇을 추구하든지 너희가 추구하는 그곳에는 참 만족과 평안이 없을 것이다.

 

19.생명의 근원되시는 그분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친히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죽음을 이기시어 죽음을 그치게 하셨고 생명의 넘침으로 풍성한 삶을 허락하셨다. 그분은 우뢰와 같은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시어 죄악과 죽음의 방황을 떠나 영원한 피난처 되신 그분 품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오 나의 사랑 주님이시여! 당신에게 내 영혼이 고백하옵니다.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의 영혼을 고치소서”(시41:4)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24:25)


오 주님! 이 백성으로 하여금 눈물 흘려 기도하게 하시고 주를 모르는 백성을 주께로 이끌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불타는 사랑의 불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친히 말씀하여 주옵소서.


22.오 나의 주 하나님! 그 당시 나는 절대무오하신 당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람들의 세속적 판단에 의거하여 사람들을 판단했고 사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판단을 심판하시는 주님을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연약한 인간들의 얄팍한 판단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 주님! 사람의 머리카락의 수도 세시는 주님이시여! 세상만사 중 주님의 허락없이 되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23.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26.인간도 스스로 노력하고 수양하면 본질상 하나님처럼 성결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더욱 교만한 생각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 나는 세상을 포기하지 못하였고 주님께로 돌아서지 못하였습니다. 지나가 버릴 헛된 영예는 여전히 나의 눈을 가리워 당신을 쳐다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진리 속에 안식하지 못하였고 나의 상상의 또다른 세계속에서 신기루와 같은 허상을 쫓아 다녔습니다.

나는 나의 가변적 본성이 자유의지로 인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벌을 받아 마땅한 범죄를 시인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불변의 속성으로 더욱 많은 강제적 범죄가 유발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9.세속의 양태로 당신의 속성을 파악한 것은 허구이며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무지에서 연유한 허구일 뿐 당신의 실체는 아니었습니다.

 

30.내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을, 소위 인문학에 속해 있는 모든 책을 혼자 읽고 다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사악한 죄악으로 가득 찬 쓸모없는 종인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빛을 등지고 돌아선 나는 사물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비춰 준 그 빛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 나의 주 하나님이시여! 내가 소유한 신속한 이해력과 정확한 분별력은 당신께서 내게 허락하신 은사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불쌍한 이 죄인은 그 좋은 은사를 주님을 위해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의 사욕을 위해 사용했기에 나를 멸망으로 인도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내게 돌아올 분깃을 요구한 탕자와 같았습니다.(눅15:12) 결국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창기들에게 그 재산을 허비한”(눅15:13)탕자와 같은 자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능이 내게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31.주님은 진실로 크고 광명한 존재이시나 나는 당신을 하여금 말미암아 창조된 사물의 작은 지체가 아니었습니까? 크게 사악한 자, 이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나를 돌보셨고 사랑해 주셨는데 나는 죄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 대항하고 반역하고 당신의 영광을 더럽혔사오니, 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내가 남다르게 자랑스럽게 가졌다는 재능도 다만 나의 수치를 더할 뿐입니다.

나는 이러한 학문의 재능이 오히려 거침돌이 되어 당신께로 향할 나의 길을 막고 있었고, 또한 당신께서 내게 오실 길도 막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서려 한다면 연약하여 곧 넘어집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때에는,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를 알 수 없다는 염려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 계신 그 곳에 우리의 거처를 삼고 영원히 주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권

 

(29세때에 그는 마니교의 오류를 발견한 후 로마와 밀라노에서 수사학교수로 직업을 갖다. 암브로시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가까이 하기 시작하다)


1.이제는 가르치려는 교만에서 떠나 주께 배우고자 하는 겸손을 허락하시고, 불꽃과 같은 주의 눈동자 앞에 초라한 적신을 그대로 드러내게 하소서. 주의 사랑이든 징계이든 달게 받게 하소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시19:6)


우리의 영혼을 세속의 속박에서 풀어주시어 주님께로 향하게 하시고, 천지만물을 놀라운 능력으로 창조하신 당신에게 향하여 올라가게 하옵소서. 그곳에서 내 영혼이 소생하며 주의 참된 능력에 안식을 얻습니다.


2.“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다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주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73:27)

오 ! 주여,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며 그들로 하여금 더욱 울게 하사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참 기쁨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이는 혈육이나 감정으로 흘히는 눈물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인생을 변화시키려 주심에 감사하며 참된 위로 속에서 흘리는 눈물이 되게 하옵소서.


3. 마니교 교리는 다양한 통찰력에서 출발함으로 ‘이성으로 온 우주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결국 스스로의 올무에 걸려 주님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시34:18,145:18). 사람이 아무리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를 세며 공간을 측량하고 성좌의 궤도를 추적한다 할지라도 교만한 자라면 결코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4.그들은 그들이 발견한 법칙의 주관자요 운행자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 주여! 저들로 하여금 교만이란 “들짐승(시8:7,8)”을 잡아 번제로 드리게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소멸하시는 불”(신4;24)로 사르사 주 안에서 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여 주옵소서.


5.“그들은 스스로 지혜있다고 하나 결국은 우둔한 자들 입니다”(롬1:22)

그들은 주님의 위치에 서려고  합니다. 그들은 눈이 멀어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주장합니다.


7.오 진리의 주 하나님이시여! 이같은 일들을 아는 자라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이 모든 일을 알면서도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헛된 우상을 섬기지 않는 자”(롬1:21)가 진정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주님을 아는 자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실상은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고후6:10)


9.그러나 거짓되고 가증된 자들이 스스로 스승이요, 안내자요, 인도자로서 자처하면서 자신을 성령과 동일시 할 때 우리는 올바른 분별력으로 잘 판단해야 합니다.


10. 유창한 웅변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리일 수는 없으며 언변이 서투르다고 해서 거짓은 아닙니다.


13.만물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주님의 손길을 떠나서 어찌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15.인간의 기도를 당장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은 먼 훗날 더욱 좋은 일을 예비하여 주십니다.

 

17.주님은 경건히 깨어 기도하는 한 외로운 과부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시51:17)을 멸시하지 않으셨습니다.

 

18.“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시51:4)는 생각과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시41:4)라는 고백은 내게 상관없다는 생각은 내 교만한 마음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나는 죄에 대해 자유롭고 내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내 속에서 죄를 범한다고 자위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바로 나였으며,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만큼 나의 죄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겨루어 이겨 보려는 어리석은 도전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내 입 앞에 파수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옵소서”(시141:3,4)

 

19.우리는 주님의 지체이며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물체 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존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20. 악의 기원은 인간에게 있으며 선의 출발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22. 오 주여! 그러나 이제는 지식보다도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가장 순결한 평화이며, 가장 확실한 선과 진리 되신 하나님이시여! 주님을 향하지 못한 죄인을 용서하소서. 나는 그들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선한 길로 인도해야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악의 길로 그릇되게 인도하였나이다.


6권

1.당신은 본래 나를 지혜롭게 창조하셨으나 스스로 타락하여 어두움 속을 방황하였고, 나 자신의 밖에서 주님을 찾았으나 내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흑암의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 들었고 진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며 실망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식이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영생의 선물을 얻는 것을 보는 것”이 그녀 소원의 전부이며 확신이었습니다.

 

4.“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골3:10,창1:26-27)는 창세기 말씀을 바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 동안에 내가 외쳤던 모든 허구적인 교리는 개 짖는 소리에 불과하였던 수치스러운 나의 오류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더라도 무엇인가를 좀 알고 비판했어야 하는데 그저 정죄하기 위하여 비판했던 경솔한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가장 숭고하면서도 가장 가까이 계시고 크거나 작은 지체로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전체의 형상으로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5.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나는, 이제는 모독적으로 반대하는 대신에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6.“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3:6)

한번 돌팔이 의사에게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유능한 의사에게라도 자신의 치료를 맡기기를 꺼려하는 것처럼 나는 갑자기 전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뛰어들기를 머뭇거렸습니다.

 

7.기독교 교리는 정직했습니다. 또 그것은 반드시 증명된 결과로서 믿을 것이 아니며 이성적 판단이 신앙으로 인한 유일한 길이 아니라 이성 그 자체까지도 신앙으로 붙들려야 참으로 이성이 이성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아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믿는 것이 먼저라는 여러 가지 실례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 생활 속에서도 믿음의 질서가 깨진다면 우리는 아무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낳으신 사실도 내가 분석하여 알아서 아는 사실이 아니라 그저 믿기만 하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성경 말씀도 그것을 알고 난 후에 믿을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먼저 믿고 난 후에 알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누가 나에게 “ 이 성경이 가장 참되신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것임을 어떻게 너는 알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그는 알아서 믿은 길만 알고 믿어서 아는 길은 모르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8. 나는 이러한 사실에 관하여 어떤 때는 확신하였지만 어떤 때는 흔들리기도 하였습니다. 아직 나는 당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떤 길로 가는 것이 당신을 향해 가는 올바른 길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살아 계시며 또 우리를 지켜 주시고 돌보시는 분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다만 이성적인 활동에만 의존하여 당신과 당신의 진리를 찾고, 또한 당신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불완전한 길임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에서 의심스럽고 인정할 수 없었던 모든 점들이 이제 이상하게도 알려지고 풀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신비 속으로 깊숙이 이끌려 들어갔고 그 권위를 더욱 높이게 되었고, 그 종교적 가치를 더욱 인정하게 되어 그것을 또 읽게 되고 읽는 가운데서 더욱 큰 신비한 뜻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문장의 단순성과 그 언어의 평범성은 더 한층 그 스스로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아직도 그 속에서 비치는 진리의 광채를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 그 밝은 빛살은 그의 심장을 꿰뚫고 그 가슴에 짙은 어둠을 쫓고, 당신께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던 모든 장애물을 깨끗이 제거하였습니다. 또한 그 높은 권위가 그 거룩한 겸손에 안기어 그런 겸손을 가진 자만이 그 권위에 접하도록 되어진 책임을 나는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오 사랑의 주님이시여! 당신은 친히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 방황하는 손길을 당신 손으로 붙잡아 주셔서 사람들의 왕래가 번화한 넓고 큰 길, 멸망의 길에서, 좁고 험하나 영생이 약속되어 있는 생명의 길(마7:13)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9. 나는 명예와 돈과 결혼을 추구했고 그런 나를 주님은 비웃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인도하사 발걸음을 돌이키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이시여, 내 마음을 살피시사 이 모든 사실을 기억하여 주님께 고백하도록 도우소서. 죽음의 올무로부터 나를 건지사 내 영혼이 튼튼히 주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방황하는 내 영혼은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주님께서 내 영혼에 더욱 깊은 상처를 주신 것은 내 영혼의 발길을 당신에게 향하게 하시고, 잘못된 죄악을 회개하며 주님에게서 영원한 평안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주님이 안계신 삼라만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느날 나는 밀라노의 한 거리에서 내 앞을 지나가는 한 불쌍한 거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술에 만취되어 있었고 호탕하게 웃어대며 천하가 자신의 것인양 자신의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더욱 침체되어 나와 함께 길을 걷던 친구들에게 “ 저 거지는 저렇게 기뻐하고 만족해 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근심 중에 살아야 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 욕심과 세속적 정욕에 이끌려 나를 이렇게 비참함과 괴로움의 사슬에 스스로 얽매고 있으며, 갈수록 더욱 큰 비애와 고난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한번도 저 거지가 느끼는 바와 같은 행복감으로 노래하고 춤추어 본일은 없지 않은가? 저 거지는 그러한 만족을 얻기 위하여 비싼 댓가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구걸에 때묻은 동전 몇 푼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입니다.

그러나 나는 수년동안 구하고 애를 써도 한번도 소유하지 못한 기쁨이 아닙니까? 물론 일시적인 행복이지만 말입니다. 물론 저 거지가 소유한 기쁨을 참된 기쁨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욕망과 기쁨이란 것이 저 걸인의 것보다 무엇이 더 고상하며 참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근심하고 고민하는 동안 그는 행복하였습니다. 내가 두려움으로 사로잡혔을 때 그는 세상을 초월해 살고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행복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행복”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한 행복한 거지가 될 것이냐 아니면 현재의 근심 걱정 상태의 나자신이 될 것이냐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비록 근심과 걱정은 있으나 현재의 나를 선택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모순된 일이 아닙니까?

이같은 선택에 합당한 논리와 근거가 있습니까? 나는 저 거지보다도 높은 학문을 성취했으나, 그러나 학문이 기쁨을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내가 지닌 학문으로 남에게 아첨하는 문구는 작성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을 기쁘게 하지 못하니 그 거지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오! 주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시고 내 뼈를 깍은 고통을 내게 주십니다.(잠22:15)


10.“인간의 행복은 그 근원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거지는 술 취함 속에 기쁨을 찾았고 당신은 명예와 영광을 얻는데서 그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 영혼은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 주님! 영광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당신 안에서 찾지 못하는 영광이 도대체 무슨 영광이란 말입니까? 거지의 기쁨이 참 기쁨이 아니듯이 내가 추구했던 영광도 참된 영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걸인은 그날 밤으로 술 취함으로부터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고 일어나고 또 자도 괴로움은 여전히 계속 됩니다.

걸인이 술에서 얻는 기쁨과 내가 학문에서 얻는 기쁨은 다릅니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항상 기쁨이 넘쳐 흘렀고 나는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남에게 축복을 기원하고 그 술을 얻어 먹었지만 나는 아첨하는 말과 언어로 허황된 영예을 소유하려 한 것입니다.

나는 행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친한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우었으나 결과는 불행한 자신만을 느낄 분이었습니다. 결국 고통은 내 영혼에 가중되었고 미소짓는 행운을 잡으려고 달려갈 때마다 행복은 저만치 달아나 버리곤 하였습니다. 나는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16.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눅16:11.12)


18.나는 19세 때부터 지혜를 얻기 위하여 노력해 왔으나, 내가 얻은 것 모두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버릴 것밖에 없습니다. 벌서 나이가 30세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옛날의 오물에 틀어 박혀 일시적 쾌락을 소유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방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이면 발견할 것이다. 보라 곧 진리는 밝혀질 것이고 그때는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파우스투스가 오면 그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것이다. 아카데미 철학파여! 그대는 얼마나 위대한가. 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확실한 방향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용기를 내어 찾아보고 절망하지 말자.’


19.“나는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헛되고 공허한 진리를 포기하고 전적으로 진리를 위한 학문 탐구에 헌신해야 한다. 인생은 슬픔으로 가득찬 것이며 죽음은 언제 우리에게 닥쳐 올지 모른다. 죽음이 도적같이 임할 때 어떤 상태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혼의 죽음도 없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소망을 버리고 하나님과 영생복락을 얻으려고 우리의 모든 존재를 바치기에 왜 주저하는가? 그러나 침착하라. 이 세상의 것도 기쁨을 주며 그것 또한 달콤한 것이다. 그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세상과 인연을 끊으려 할 때에는 매우 신중하라. 다시는 세상에서 방황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20.나는 아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나의 약점을 도와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당신의 구원의 능력에는 등한히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러한 경험이 없었고 금욕이란 나 자신의 능력속에 속한 일로 보였지만 내게서는 그러한 능력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2. 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여! 이렇게 방황하는 우리를 당신께서 흙으로 손수 빚으신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한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놀랍고도 비밀한 방법으로 우리들을 도와주셨습니다.


26. 나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육체의 쾌락이 있을 때에 행복한 것이며, 죽음 후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이같이 어리석은 주장에 불행과 비참함이 있는 줄을 모르고, 육체의 눈으로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참 영적인 아름다움과 우월성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 불행히 어떻게 우리에게 오며, 내가 즐기고 있는 육체적 소욕과 거짓된 것들이 그 불행의 근본인 것도 몰랐고, 단순히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친구가 없으면 불행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친구들만을 위하여 사랑하고 또한 그들은 나만을 위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쉽게 현실적인 쾌락에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괴롭고 허황된 길입니까? 당신을 버리고 세상에서 쾌락만을 추구했던 불쌍하고 어리석은 영혼이었습니다.

오 주여! 보시옵소서. 언제나 주는 내 곁에 계셨고, 방황하는 우리를 바로 인도하시어 당신의 바른 길에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며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내 길로 달려오라. 내가 너를 붙들어 주리라. 너의 평생에 이 길을 다 마칠 때까지 내가 너를 붙들리라. 참으로 너를 붙들어 지켜 주리라”

 

ㅡ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