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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환타지아 - 조화유 단편소설

Joyfule 2015. 7. 20. 09:48

 

 

통일, 2015년에 이렇게 온다!

<조화유 단편소설>

 

코리아 환타지아

 

2014년 7월3일 서울
구름이 낀 날씨가 예보되었으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용기가 서울 도심에서 멀지 않은 서울공항에 착륙했을 때는 햇볕이 내려쬐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아지자 기분이 한결 더 좋아진 시 주석은 리무진을 타고 청와대로 직행, 청와대 본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과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서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석 님!” 박대통령이 중국어로 인사하며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으며 시 주석은 좀 서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대통령 님”이라고 답한다. 그의 이번 방문은 박 대통령의 2013년 중국 국빈방문에 대한 답방이었다. 시 주석은 바로 2층 영빈관으로 안내되어 박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통역만 대동한 이 단독회담에서 두 정상은 먼저 덕담을 나눈 뒤 오후로 예정된 확대정상회담에서 다룰 의제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짧은 단독회담이 끝날 무렵 박 대통령은 통역들을 먼저 내보내고 시 주석에게 얇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주석 님, 이것은 우리 두 나라에 모두 매우 주요한 것입니다. 나중에 호텔에 가셔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박 대통령은 여전히 미소진 얼굴로 중국어로 말했다. 박대통령은 영어와 프랑스어는 상당한 수준급이고 중국어도 기초회화는 할 수 있는 실력이다.

“그러겠습니다.” 시 주석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덩치가 크고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시 주석은 회색 정장 양복차림이었는데, 그의 숱 많은 검은 머리는 61세라는 나이보다 그를 훨씬 젊어보이게 했다. 그리고 그의 수집어하는 듯한 미소는 그가 13억 인구와 국민생산 세계 2위의 사회주의국가 지도자라기보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인상을 풍기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붉은색 계통의 상의에 흰색 바지를 입었는데 그의 우아한 용모와 날씬한 몸매는 그의 62세 나이를 믿기 어렵게 한다.


 

오후에 두 나라 외교, 경제각료들이 동석한 확대정상회담을 끝내고 청와대 영빈관에서의 만찬 등에 참석한 후 숙소인 신라호텔로 돌아간 시 주석은 호화로운 욕탕의 따뜻한 물속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푹신한 리클라이너(등받이가 움직이는 안락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리모트 컨트롤(리모콘)로 벽에 걸린 삼성 65인치 초고화질 TV를 틀었다. 마침 KBS 9시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어를 몰라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화면에 비친 한국인들의 진지한 환영 무드는 짐작할 수 있었다.


 

1992년 한‐중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전에는 두 나라는 적국이었다. 중국이 한국전쟁(1950~53)에 참전함으로써 한반도가 1950년에 통일되지 못했다고 한국민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과 중국은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되어있다. 오늘날 중국은 한국 최대의 무역상대국이고, 매년 400만이 넘는 중국인들이 한국을 찾아와 관광하고 쇼핑을 한다. 그리고 한국 TV 드라마들은 수 억명의 중국인들을 매일 밤 TV 앞으로 끌어 모우고 있다.

시 주석은 만족한 표정으로 침대에 올라가려다가 낮에 박 대통령한테 받은 편지 생각이 나서 옷장에 걸린 자기 양복 안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내 침대로 가져갔다. 실내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옆방에 따로 들어간 펑리위안 부인은 벌써 잠이 들어있었다. 부인은 청와대 정무수석의 안내로 별도로 바쁜 일정을 보낸 뒤라 상당히 피로한 상태였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점정 심각해졌다. 내용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박대통령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북한의 김씨 세습독재정권은 우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에게 골치 아픈 존재이며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위협이 되고 있음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입니다.

한(韓)민족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 북한 주민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폐쇄사회에서 빵도 자유도 없이 고초를 겪고 사는 것을 우리 대한민국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무능하고 잔인한 김씨 세습정권은 권력 유지에만 급급하고 인민생활 향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비교적 현실 감각이 있었던 장성택과 리영호 전 인민군 총참모장 등이 무참하게 처형된 것이 여실히 보여주듯이 김정은 정권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조폭들이 지배하는 땅과 다를 바 없습니다.

리영호는 ‘인민생활이 어려운데 인공위성이나 자꾸 발사해서 뭐하는가, 시급한 것은 인민생활 문제를 푸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합니다. 최근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 당국은 약 3개월에 한번 정도로 대단하지도 않은 범죄자들을 공개 총살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인민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 무조건 복종하게 만들기 위해 공개처형을 억지로 보도록 강요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스탈린 독재하의 옛 쏘련에서도 보기 드믈었던 만행입니다.

탈북자들 말에 의하면 북한정권은 인민들을 먹이지도 못하고 살집도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북한주민의 상위 10% 특권층만 쌀밥이나 돼지고기를 먹을수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인민은 강냉이와 시레기국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신발 한 켤레 사기 힘들고 1㎏에 3만원이나 하는 돼지고기는 그림의 떡이라고 합니다. 한 UN보고서도 북한 주민 930만명(전체인구의 37.5%)은 현재 굶주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이대론 못살겠다. 차라리 미군이나 처들어 왔으면 좋겠다’고 한답니다. 굶주리는 것은 주민들만이 아니 모양입니다. 군인들도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민가에 들어가 식량을 강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한번은 굶주린 군인들이 김정은 호위사령부용 식량을 싣고 가는 화물열차를 습격하여 식량을 강탈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 고성능화, 대한민국 기습공격을 위한 무기 개발과 도입에만 돈을 펑펑 쓰고 인민들 굶주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유일한 해결책은 대한민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 힘을 합쳐 현 북한정권을 붕괴시키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여 독일을 통일한 것처럼 대한민국이 북한을 흡수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당장은 미국보다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는 북한정권의 자체 붕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정부가 북한 군부의 지휘관 몇 명과 접촉하여 김정은 정권을 제거하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어 보입니다.

일단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면 우리 대한민국은 즉시 북한의 굶주린 주민들을 먹여 살릴 것입니다. 우리는 잉여식량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므로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먹일 충분한 쌀과 기타 식료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대규모로 중국 만주지역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 주도의 조속한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과 방법을 설명한 박대통령은 이어 통일 후의 한반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아래와 같이 밝힌다.


 

*통일된 한반도는 영세중립국임을 선언할 것이다. 한국과 북한이 각각 외국과 맺은 군사조약은 모두 무효임을 선언할 것이며, 통일한국정부가 탄생되어 유엔의 승인을 받으면 모든 외국 군대는 한반도에서 철수한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이 외국 정부나 외국 기업과 체결한 경제조약은 통일한국 정부가 체결한 것으로 간주되어 계속 효력을 유지한다.

*통일한국은 자체방위를 위한 적당한 규모의 병력은 보존하되 핵무기는 모두 폐기할 것이다.

*통일한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에 기초한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계속 나아갈 것이며 동북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경제발전과 평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7월26일 서울

한국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을 하루 앞둔 7월26일 밤9시40분경 북한이 황해도 장산곳에서 동해쪽으로 사거리 500㎞ 내외로 보이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7월9일에 이어 두 번째다. 이로써 북한은 2014년 들어 100여발의 미사일과 로켓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해방전쟁은 공화국에 대한 지배를 노린 침략자들의 날강도적인 무력침공으로부터 민족의 자주권과 영토완정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전쟁이었다.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이 7월27일을 '승전일'이라며 떠드는 것은 가련하기 짝이 없는 하나의 정치만화”라고 주장했다.
 

7월27일 평양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는 그들의 소위 “전승절”인 7월27일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육해공·전략군 결의대회를 열고 "만약 미제가 핵항공모함과 핵타격 수단들을 동원하여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려 든다면, 우리 인민군대는 악의 총본산인 백악관과 펜타곤을 향하여, 태평양 상에 널려 있는 미제의 군사기지들과 미국의 대도시들을 향하여 핵탄두 로켓들을 발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동신문이 보도했다.

인민군 2군단장 김상룡은 "군단 장병들은 남녘 해방의 공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고, 해군사령관 김명식은 "남해를 적들의 검붉은 피가 흐르는 죽음의 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했으며,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 리병철은 "우리 비행사들은 돌아올 연료 대신 폭탄을 가득 적재하고 침략의 본거지들을 무자비한 징벌 타격으로 말끔히 소탕해 버릴 것"이라고 떠들어 댔다. 그러나 이른바 혈맹인 중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철저히 무시했다. 북한은 해마다 정전협정기념일 행사에서 중공군 참전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혈맹관계를 과시해 왔었다.  

8월7일 서울

한국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위원장 박근혜 대통령)를 조직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통준위’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방안 등을 포함한 ‘통일헌장’을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8월14일 서울

교황 후란치스코 서울 도착과 동시에 북한은 방사포를 오전에 3발, 오후에 2발 도합 5발을 발사했다. 인터넷에서 한국 네티즌들은 북한이 교황의 한반도 방문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축포를 쏜 것으로 이해하지는 농담을 공유했다.

8월19일 서울
북한이 북·중 국경 지역인 양강도에 창설한 12군단에 최근 탱크와 장갑차가 추가 배치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12군단은 유사시 중국군의 적대행위에 대응하도록 훈련된 부대다. 탱크 한 대 없던 양강도 지역에 80여대의 탱크가 배치되고 장갑보병 부대, 방사포 부대, 특수전부대 등이 추가로 파견되어 공격형 군단으로 강화되었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이른바 혈맹이었던 중국이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8월26일 베이징
忍无可忍!
더 이상은 그냥 두고 못 보겠다!”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최근 동향에 관한 보고를 받고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강대국들이 약소국과 맺은 상호방위조약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것처럼 북한과 남한이 각각 중국 또는 미국과 맺은 상호방위조약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다시 전쟁에 휘말려들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김정은 정권을 “처치”하기로 결심하고 중난하이(中南海) 회의실에서 중앙군사위원회 간부회의를 비밀리에 소집했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등 세 가지 감투를 쓴 최고지도자다.

중앙군사위 간부들에게 시 주석은 평소의 온화한 표정 대신 상당히 긴장된 얼굴로 회의소집 이유를 밝혔다. 그는 과도해지는 북한의 무력시위가 남한과의 무력 충돌로 발전할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한국 방문 중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극비 친서를 내보이고 그 내용을 설명했다.

약 한 시간동안의 토론 끝에 중앙군사위원회는 북한의 김씨 세습정권을 붕괴시키기로 결정했다. 외부세력에 의한 붕괴는 전쟁 위험 때문에 불가하고 북한 내부 세력에 의한 자체 붕괴가 최선책이며 김정은이 나이 들어 확고하게 정권을 장악하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쿠데타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김정은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북한정권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9월9일 평양

북한 건국 66주년 기념일 축사를 보내면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이른바 중‐북관계 16자 원칙을 처음으로 뺐다. '16자 원칙'이란 중국과 북한 간에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조강화” 정신을 지켜나가자는 것으로 2001년 당시 장쩌민 주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양국관계의 기본 원칙이다. 이후 중국은 후진타오 시대에도 북한에 축전을 보낼 때면 16자 원칙을 빠짐없이 언급했고 2013년 시 주석이 보낸 북한 정권수립일 축전에도 이 문구는 포함됐었으나 2014년에는 처음으로 빠진 것이다.

시진핑 주석 하의 중국은 북한이 중국 안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협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이 동부 국경지역에서 미군과 바로 부딪치지 않게 북한이 완충지역 역할을 해주므로 북한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핵무장한 북한은 중국과 미국관계를 불필요하게 악화시켜 제2의 한국전쟁을 유발시킬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같은 예측 불가능한 우방보다는 중립적인 통일한국이 인접국가가 되는 것이 중국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과 국빈방문을 서로 교환하면서도 북한 김정은의 방북요청은 계속 거절하고 있다.

 

10월1일 평양

북한주재 중국대사관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65주년 기념파티가 열렸다. 중국 대사관은 평양 모란봉구에 위치한 작은 공원 크기의 넓은 대지에 4층으로 지은 흰색 건물이다. 북한 정권은 그 동안 중국의 친한정책에 불만을 품고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역효과를 낸다는 점을 깨달았는지 다시 태도를 바꾼다. 그래서 중국대사관 파티에 초청된 북한 군부 실세 3명(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길,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중 황병서를 제외하고 리영길과 현영철은 모습을 나타냈다. 평양 주재 중국대사는 공식 축하행사가 끝난 후 두 북한군 장성을 자신의 관저로 인도해 갔다.

세 사람은 안락의자에 앉는다. 중국대사가 그의 특유한 바리톤 음성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바쁘신데 이렇게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두 장군을 이렇게 따로 모신 이유는 제가 베이징으로부터 받은 극비훈령 내용을 두 분께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리영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사를 바라본다.

“우리 중국정부는 두 장군께서 김씨 세습독재를 붕괴시키고 진정한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도록 강력히 촉구합니다.”

상상 외의 발언에 두 북한 장군은 처음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현영철이 먼저 "대사, 이거 농담이 지나친 거 아니오?"라고 한다.

"농담 아닙니다." 중국대사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보인다.

"이것이 시진핑 주석 친서입니다. 어제 베이징에서 이곳에 특파된 전령이 나한테 직접 전달한 것입니다. 자 보세요."

두 인민군 장성은 그 편지를 번갈아 손에 들고 살펴본다. 중국어 실력이 거의 없는 두 사람은 내용은 몰라도 중국 최고지도자의 위엄이 묻어있는 찬필 서한임은 분명해 보였다.

"이거이 습근평 주석의 친서가 틀림없소?" 이번엔 리영길이 이맛살을 약간 찡그리며 묻는다 북한에서는 시진핑(習近平)을 조선식 발음대로 습근평이라 한다.

“틀림없습니다.” 대사가 대답하자 두 인민군 실세는 잠시 다시 침묵한 후 현영철이 다시

"그러니까 우리한테 우리의 최고 존엄에게 반역을 하라, 이 말이오?"라고 묻는다. “최고 존엄”이란 북한 사람들이 김정은에게 최고의 충성심을 표현할 필요가 있을 때 쓰는 호칭이다.

"반역이 아닙니다” 중국대사가 말했다. "조선은 인민공이국이지 왕조가 아니잖습니까? 그러므로 김씨가 왕조식으로 대를 이어 독재를 하는 건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우리 중국 정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능하고 잔인한 김씨 세습정권을 제거하고 우리 중국과 같이 진정한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은 반역이 아니라 애국적인 행위가 될 것입니다."

. 중국대사는 유창한 조선말로 말했다. 그는 조선인들과 대화할 때는 꼭 조선말을 썼다.

"알았습니다. 우리가 일단 이 문제를 검토하겠소." 대사는 리영길이 이렇게 말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의 입에선 뜻밖의 소리가 나왔다.

“대사, 우리는 오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으로 하갔소.”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은 한국군의 합동참모본부 의장격이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한국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위치다. 이 두 사람보다 더 서열이 높은 자는 황병서 인민군 총청치국장이지만 그는 군인 출신이 아니라 당료 출신이다. 그래서 진짜 군인들이 속으로는 그를 경멸한다. 황병서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있을 때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사망)한테 잘 보여 출세가 빨랐다. 그는 2014년 초 인민군 대장 군복을 입고 나타나더니 열흘만에 다시 차수로 번개같이 승진함과 동시에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된다. 이 자리는 최룡해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는 인민체육담당 노동당 비서라는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황병서는 김정은 최측근 실력자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가 제2인자 자리다. 옛날 남한 출신 박헌영 부수상이 미국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었고, 김정일 총애를 받던 리영호 장군도 숙청되었다. 그는 미사일 개발보다 인민경제 회생이 더 중요하다고 바른 소리를 했다가 숙청당하고 최룡해한테 2인자 자리를 빼앗겼다. 그 최룡해도 황병서한테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리영길과 현영철의 태도는 중국 측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그들이 중국측 제안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하기 위한 김정은 측 함정일 경우에 대비하여 일단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은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혹시 중국대사의 방에 비밀 녹음장치가 되어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시간은 충분히 드리지요. 그러나 시간을 너무 끌면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으므로 가능한한 속히 거사하시기 바랍니다. 거사의 성공은 우리 중국정부가 100% 보장할 것이므로 안심하고 결행하십시요."

대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영길과 현영철은 의례적 작별인사도 없이 서둘러 대사 방을 나갔다. 평양주재 중국대사 관저 응접실 벽시계는 2014년 10월1일 오후 2시 4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0월4일 인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가 그의 전임자 최룡해와 대남선동선전 책임자 김양건을 대동하고 이 날 아침 갑자기 김정은이 전용기로 쓰던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 나타났다. 그는 아시아 경기 폐막식에 북한 선수들과 함께 참가하기 위해 인천에 가겠다고 겨우 하루 전 남측에 통보했었다. 황병서는 동양인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게 큰 러시아식 군모에 약식훈장이 잔뜩 달린 정장 군복을 입고 인천국제공항에서 걸어나왔는데 검은 썬글래스를 끼고 이어폰을 귀에 건 사복 경호원 2명이 좌우에서 그를 호위했으나 최룡해와 김양건은 경호원 없이 뒤따라 나왔다. 북한에서 황병서의 2인자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황병서의 깜짝 등장은 쇼크였다. 최근까지도 특히 중국의 인터넷 싸이트에서는 황병서가 쿠데타를 일으켜 김정은을 몰아냈다는 소문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남한 국무총리와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서 남북고위급 회담을 10월말이나 11월 초에 열자고 제안하고는 바로 그날 밤 북으로 돌아갔다. 물론 아시아경기 폐막식에는 참가했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가능한가?

김정일 관저에서 한 때 일했다는 한 탈북자에 의하면, 김정일은 노동당 간부들의 침실 대화까지 다 도청했다고 한다. 그가 쓴 글에 이런 게 있다.

“김정일은 문건비준(서류결재)을 집무실에서 하지만, 관저에 가져와서도 한다.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서 사무를 보는 날에는 부하에게 집무실에 가서 문건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부하가 지하도로 달려가서 큰 서류가방을 낑낑거리며 들고와 관저 서재에 갖다 놓는데, 분량이 너무 많아 저것을 언제 다 보나 걱정될 정도다. 보고서는 읽고 분쇄기에 넣어서 썰어버리는데, 어느 날은 내게 분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담당자가 어디 가고 없어서 내가 서류를 분쇄기에 넣으면서 읽을 수 있었는데, 당 간부들이나 측근들이 이불 속에서 마누라와 이야기하는 대화가 나와 있었다. 통신과에서 부부장(차관급)들 대화까지 엿듣는다는 걸 알았다. 부부간의 대화를 도청할 정도니, 전화 감청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북한 같이 가족 간에서조차 마음 놓고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두려운 사회에서 여러 군인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하는 군사 쿠데타가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지 않다. 실제로 김일성 광장 군사 퍼레이드를 이용한 쿠데타 시도가 1992년에 있었다. 쿠데타 세력은 당시 인민군 주요 요직에 배치되어 있던 프룬제(Frunze)군사대학(러시아 육군사관학교) 유학파 출신 50대 초반 장성들이었다. 주모자는 인민무력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남한의 중장에 해당). 당시 52세였던 안 장군은 당시 50세였던 김정일의 고등학교 2년 선배였다. 안장군을 위시한 쿠데타 장교들은 신체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별 볼일 없는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대를 이어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역시 프룬제 유학파인 김봉률 장군을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삼았다. 김 장군은 당시 60대 중반으로서 북한 군부 내 쏘련 유학파의 대부(代父)격이었으며 쏘련의 핵기술을 북한에 들여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 쿠데타를 모의한 장성들 중 30여명은 인민무력부 참모진에 포진하고 있었고, 10여명은 사단장 등 야전 지휘관으로 나가 있었다. 쿠데타 주모자 안종호 장군은 인민무력부 참모진에 포진한 쿠데타 세력의 최고 선임자였다.

쿠데타 거사일은 1992년 4월25일이었다. 이날 북한 정권은 조선인민군 창군 60주년을 맞아 김일성 광장에 3만여명의 병력과 탱크, 장갑차 등 중장비를 동원해 거대한 열병식(군사 퍼레이드)을 벌일 예정이었다. 사열대 주석단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 등 정권 핵심 실세 10여명이 자리 잡고 그 아래로 40여명의 당과 군의 간부들이 도열할 예정이었다. 김일성 광장 열병식에 참가하기로 되어있던 수도방위사령부 탱크사단도 쿠데타에 가담했다. 이 탱크 사단이 사열대 앞을 통과할 때 탱크 포신을 주석단으로 돌려 김일성, 김정일 부자 등 핵심 실세들을 향해 탱크포를 발사, 정권 핵심부를 일거에 제거하고 김봉률 장군을 혁명정권 지도자로 내세운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은 뜻밖의 사태 발전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것은 열병식에 동원할 탱크부대를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대신 인민무력부 직속 탱크사단으로 갑자기 교체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왕조 초기,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는 연회장에서 세조를 시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성삼문 등이 연회장 운검(雲劍/왕을 경호하는 무인)으로 자기 파 무인을 골라 세웠으나 세조의 충신 한명회가 육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운검의 연회장 입장를 금지시킴으로써 성삼문 등의 쿠데타 계획이 실패한 것과 흡사했다. 다만 북한의 경우는 인민무력부가 탱크부대를 교체한 것이 수도방위사령부를 의심해서 취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이 쿠데타 계획은 이렇게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 비밀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가담 장교들은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 쿠데타 모의 사실이 탄로나고 말았다. 거사가 실패한지 1년이 채 안된 1993년 3월, 쏘련이 붕괴되고 옐친의 러시아 정권이 등장함과 함께 악명 높았던 비밀경찰 KGB가 해체되는 바람에 실직자가 된 한 전직 KGB 요원이 일자리도 알아볼 겸해서 평양에 나타났다. 이 사람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북한 국가보위부 러시아 담당관을 찾았고, 그의 술대접을 받는 자리에서“안종호 장군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무심히 물었다. 북한 보위부 요원은 직감적으로 뭔가 있다싶어 “당신도 그 사건을 알고 있었구만”하고 넘겨짚었다. 여기에 속아넘어간 러시아인이 안종호 장군 쿠데타 음모 사실을 자기도 모르게 누설해버린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쏘련 유학파 출신 장교들의 쿠데타 모의를 당시 러시아정권은 알고 있었고 그것을 묵시적으로 지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쿠데타 음모는 들통이 났고 안종호 장군을 비롯한 모의 가담 장교들은 전원 재판도 없이 비밀리에 총살되었다. 재판을 할 경우 반란 음모가 인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북한 정권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神)같은 존재인 김일성과 그 후계자 김정일에게 반기를 든다는 것은 북한 인민들에겐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쿠데타 가담자 가족들은 전원 지옥같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짐승같이 목숨을 이어가다 죽었을 것이

다. 쿠데타 세력의 정신적 지도자며 프룬제 유학파의 대부 김봉률 장군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살려주었다는 설이 있다.


1995년 또 한 차례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1999년 미국의 워싱턴 타임즈 신문은 비밀이 해제된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 하나를 공개했다. 기사를 쓴 빌 거츠 기자에 의하면 1995년 북한 인민군 제6군단이 쿠데타를 모의하던 중 기밀이 누설되어 실패한 사실이 있다고 정부 당국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 보도와 기타 자료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인민군 6군단은 청진에 사령부를 두고 함경북도 전체를 관할하고 있었다. 6군단은 3개 보병사단, 4개 방사포 여단, 1개 포병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쿠데타 모의자들에 6군단 정치위원(소장에서 중장 계급) 전원과 예하 부대 대대급 지휘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함경북도 도당 책임비서, 행정일꾼, 국가안전보위부,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부부장 이상 간부급이 대거 가담했다. 그러니까 당시 함경북도 군, 당, 행정 책임자 대부분이 이 쿠데타 모의에 가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군단장 김영춘(94년 3월부임)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으로 구성된 6군단 정치위원들은 김일성과 친인척 관계에 있었던 김영춘을 왕따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김영춘은 부하들의 쿠데타 음모를 저지하는데 공을 세워 나중에 인민군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자리까지 올라가지만 결국은 김정은에 의해 거세된다.)

이 쿠데타 시도는 한 변절자의 밀고로 탄로가 나 좌절되었다고도 하고, 쿠데타 모의자들이 거사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꼬리를 잡혔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반란음모는 실패로 끝나고 약 350명 정도의 가담자들이 총살되고, 그 가족들은 3대에 걸쳐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쫐겨났다고 한다.


10월 초순 평양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부터 그의 인천방문 계획을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황병서는 북한 정권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문들을 잠재우기 위해 자기가 직접 인천에 간다고 말했었다. 리영길 장군과 현영철 장군은 공식 회의 장소에서 서로 자주 만났으나 중국대사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인민무력부 주차장으로 각자의 운전사 딸린 차를 타러 걸어가다가 대화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 토요일 우리집에서 우리 바둑이나 한판 둘까요?" 리영길이 말하자 현영철은 좋다고대답했다.

토요일 밤 10시쯤 리장군은 사복을 입고 현장군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평양의 "특급주택단지"에 살고 있다. 이 단지의 단독주택들은 군 장성들과 차관급 이상 고위층들에게 국가가 무료로 빌려주는 북한 수준으로는 고급주택이다.

그들은 현장군 집 서재에서 단 둘이 만났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국가보위부의 도청을 우려해 그들은 TV를 켜놓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고급주택에는 건설 당시에 도청기가 장치되지만 그 도청기가 어디 있는지 입주자는 모른다.

“수많은 인민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우리는 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만 계속 만들고 있는 겁니까? 우리한테는 핵무기 필요 없습니다. 핵무기는 김씨 세습정권의 연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우리 2500만 인민에게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오. 베트남을 보오. 미국한테 싸워 이긴 유일한 나라요. 그래도 미국이 보복합디까? 베트남에 핵무기 없다고 베트남을 미국이 칩디까? 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은 베트남과 국교 트고 경제원조도 해줘서 지금 베트남 상품이 미국 시장에 범람하고 있다지 않소! 이게 다 베트남 정부의 도이모이(개방)정책 때문이오.

그런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는 소위 조국해방전쟁 이후 60여년 동안 무얼 했소? 쓸데없이 핵무기나 만들어 자기들의 절대권력을 대대로 이어갈 생각만 하고 인민들은 굶겨 죽이고 있지 않소! 우리 인민군은 이제 인민을 위해 떨쳐일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김정은 일당을 몰아내고 진정한 인민공화국을 만들고 핵무기를 없애면 온 세계가 우리를 환영하고 우리를 도와줄 것이요! 그리고 우리 민족의 통일도 앞당겨질 것이오!”


“옳습니다. 김씨 세습독재정권이 우리 인민의 적이고 민족통일의 가장 큰 장애물 입니다!김씨 일가는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닙니다. 국가는 인민의 것이지 어느 개인이나 어느 가문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 할애비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철없고 무식하고 잔인한 김정은을 데려다 놓고 할애비를 더 닮게 한다며 살을 퉁통 찌워 미련한 돼지꼴로 만들어 놓고 경애하는 원수님이니, 최고존엄이니 뭐니 하며 떠받쳐 전 세계의 조롱꺼리가 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코메디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허수아비 밑에서 비굴하게 굽신거리다가 벤츠나 꼬냑 선물을 받으면 황송해서 어쩔줄 모르고 더욱 아첨하다가 입 한번 잘못 뻥긋하면 처형되거나 가족과 함께 요덕수용소로 끌려가 죽어가는 우리들의 운명이 너무나 허망하지 않습니까? 리동지, 우리 이번 거사에 반드시 성공하여 2500만 우리 인민들을 독재와 굶주림으로부터 구합시다. 그리고 남쪽의 5200만 동포들과 조속히 조국통일을 이룩하여 7700만 한민족이 평화롭게 잘 사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줍시다!”

“옳습니다, 현동지! 우리

 결행합시다! 우리 인민군이 더 이상 독재자의 들러리가 되지 맙시다! ”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들은 2015년 1월8일 김정은의 31회 생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각자가 동원할 군병력에 대해 논의했다.

 

2015년 1월8일 평양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의 잔인한 처형과 김정은 자신의 신병과 잠적 등으로 어수선했던 2014년도 지나가고 2015년 새해가 밝았다.

1월8일 차가운 겨울 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인“철봉각”에서 북한 군부, 노동당, 정부 실세들이 모

두 다 모였다. 김정은의 31회 생일 축하를 위해서였다. 철봉각은 김일성 광장에서 동북쪽으로 15킬로미터 지점 지하에 2층으로 건설한 땅굴 속 건물로서 방사능을 차단하는 아연으로 벽면이 도장되어있는 곳이다. 철봉각엔 16개의 방이 있는데, 김정은 집무실은 입구에서 오른쪽 4번째 방이다. 넓이는 약 200 제곱미터로, 그 안에서 전 세계 주요국가 TV화면을 볼수 있고, 침대, 식사용 테이블, 욕실, 화장실까지 붙어있다. 이 철봉각은 지하터널을 통해 김정은 거처인 55호 관사, 별장의 하나인 501호 관사 등과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또 위급시에 타고 도주할 비행기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 간이 비행장과도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이 지하요새의 존재는 남으로 망명한 후 서울서 몇 년을 살다가 사망한 황장엽도 확인 해준 바 있다.

 

정장 군복 차림을 한 65세의 늙수구레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프랑스 샴페인 잔을 높이 들고“위대한 령도자, 경애하는 수령, 김정은 동지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외치자 참석자 전원이 똑같이 일어나 복창한다. 기분이 좋아진 31세의 청년 김정은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동지 여러분, 올해 2015년은 김일성 대원수님의 피나는 독립투쟁 덕분에 우리민족이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뜻깊은 해에 우리는 반드시 조국통일을 달성하여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 대원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역설한다.

그러자 참석자 전원은 "조국통일!" "조국통일!"을 외친다. 이어 기쁨조 무용수들과 악단이 북한판 생일축하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 권총을 찬 경호원 한명이 급히 들어오더니 호위사령관 궤에다 대고 뭔가 속삭인다. 그러자 얼굴이 갑자기 굳어진 호위사령관은 김정은에게 다가가 역시 귀엣말로 군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 같다고 보고한다. 꼬냑을 홀짝홀짝 마셔대 얼굴이 붉으레한 김정은은 호위사령관에게,

"반란이요? 그게 누구요?"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곧 알아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우선 수령동지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겠으니 저를 따라 오십시요!”라고 한다. 공포에 지린 김정은 부들부들 떨며 호위사령관을 따라 비밀통로로 들어가느라고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한테 반란군 진압 명령도 내릴 경황이 없었다. 황병서가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과 현영철 인민부력부장에게 "무슨 일인가 알아보오!"라고 명령하자 두 장군은 "네!" 대답하고 같이 그 자리를 떠난다. 그들은 이미 북한군 정예부대인 인민무력부 직속 산악 특수전부대인 제43경보병여단과 인민군 제3군단, 그리고 평양방위사령부 병력을 동윈, 철봉각 지상 출입구 2개를 전부 막고 그 외각을 또 2중으로 둘러싸도록 명령해두었다.


호위사령관은 김정은을 데리고 비밀통로를 통해 간이비행장으로 향한다. 다리가 아직도 불편한 김정은을 호위사령관이 부축하고 속보로 걸었다. 간이 비행장에는 1990년대에 제작된 쏘련제 일류신 소형 여객기를 개조한 김정은 전용기가 매일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일행이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는 815기갑부대 차량이 김정은 전용기를 둘러싸 있고 완전무장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관과 전사들이 권총을 빼들고 김정은을 기다리고 있다. 호위사령관이 비행장으로 올라가는 문을 전자카드 열쇠로 열고 지상으로 먼저 올라가자 쿠데타군과 맞부닥친다. 호위사령관은 본능적으로 그의 권총을 먼저 발사한다. 그 총알이 선두에 서있던 반란군 장교의 팔에 박힌다. 그러자 반란군은 일제히 호위사령관에게 반자동권총을 집중발사, 그를 즉사시킨다. 뒤따라 나오던 김정은은 대세가 기운 것을 알아채고 체념한듯 순순히 수갑을 찬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쿠데타 수뇌부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약 40억불에 달하는 해외은행 예금 관련서류를 가지고 도주하지 못하도록 그의 체포를 결정한바 있다. 설사 그가 국외 탈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혁명정부가 스위스 은행들로부터 비자금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수속이 복잡해지고 또 은행들이 많은 커미션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김정은 본인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쿠데타군은 철봉각에서 술에 취해 우왕좌왕하던 군부 실세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국가보위부, 사회안전부, 조선노동당 청사 등을 차례로 점령한 뒤, 오전 6시, 평양 라디오와 TV방송을 통해 김정은 독재정권이 타도되었음을‘혁명위원회’이름으로 선포한다. 혁명위원회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두 공동위원장 명의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혁명 공약을 발표한다.

1.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군은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 인민공화 국을 만들기 위하여 김씨세습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다.

2. 노동당은 즉시 해산될 것이며 현명위원회가 정부를 인계할 것이므로 모든 공화국 일꾼들 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본업에 전념하라.

3. 정부는 쌀 등 식품과 기타 생활필수품을 중국으로부터 신용대여 받아 빈곤한 인민들에게 무상 배급할 것이므로 누구나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외로 나갈 필요가 없다.

4.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와 남한방송 시청은 조속한 시일 내에 허용될 것이다.

5. 죄질이 나쁜 일반 형사범죄자를 제외한 모든 정치범은 즉시 석방할 것이다.

6. 혁명위원회는 자유선거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남조선 당국과 가능한한 빨리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이 충격적 뉴스는 전 세계로 번개같이 확산된다.

2015년 1월10일 서울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은 생방송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신년 특별 담화문을 발표한다.

1. 우리는 북한의 김씨 세습독재정권의 붕괴를 축하한다.

2. 가능한한 빨리 자유선거를 통해 한반도를 통일하자는 북한 혁명위원회의 제의를 환영한다.

3. 우리는 즉시 쌀 등 식료품과 의료품을 북한에 보낼 것이다.

4. 북한의 교통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자동차와 트럭을 제공할 것이며, 경의선 철도를 기술적으로

가능한한 빠른 시일 내에 연결할 것이다.

대통령의 담화가 끝나자 TV에서는 안익태 작곡, 정명훈 지휘 심포닉 환타지아(환상교향곡)“코리아"가 방송된다.

두 달 후, 남북한 대표단은 서울에서 만난다. 양측 대표단은 남북한을 통합하여 "통일대한민국"(The United Republic of Korea)을 건설하기 위해 새 헌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한다. 또한 신설될 통일대한민국은 영세중립국임을 선언하기로 합의한다. <끝>

 

* 이것은 가상적 이야기다. 그러나 조만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