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천로역정존번연

천로역정 5. - John Bunyan

Joyfule 2008. 1. 10. 00:09


 천로역정 5. -  John Bunyan     
이에 나는(꿈을 꾸는-책 저작자) ‘기독도’를 끌어 낸 사람에게 가서 말하기를
 “여보시오 이곳이 ‘장망성’에서 저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이라면 
왜 이곳을 고쳐서 불쌍한 행인들이 일층 안전히 지나가게 아니합니까?”하니 
저가 말하기를 “이 진흙수렁은 고칠 수 없는 곳이외다. 
왜 그러냐 하면 이 곳은 사람이 죄를 자복할 때에 따라오는 거품 찌끼와 
더러운 것이 항상 흘러내리는 수렁이어서 ‘절망소’라 말하게 된 것이외다. 
다시 말하면 죄인들이 자기의 멸망 상태를 깨달을 때에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두려움과 의심과 낙망, 
이런 것들이 함께 모여서 이 곳에 정체되었으니 이 땅이 악하게 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독도의 마음상태)
이 곳을 이렇게 악한대로 버려 둠은 결코 주의 뜻이 아니니 
그의 사역자들도 주의 감역관이 지시하는 대로 근 2천년 동안이나
이 지경을 위하여 혹시라도 고칠 수 있을까 하고 수고하여 일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 곳을 개량할까 하여 왕의 영토 각처에서 4시 물론하고 
이 곳을 좋은 땅으로 만들려고 가져오는 가장 좋은 재료 곧 수백만 선한 교훈을
 적어도 한 2만 마차나 처넣었지만 이 곳은 그저 ‘절망소’로 있고
 이 후일지라도 무엇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이외다. 
다행히도 주께서 명하사 진흙 속에다가 튼튼한 좋은 징검다리를 놓게 하였으나 
일기가 변작될 때에는(환경이 닥치고 대상만 생기면) 
더러운 물결이 흘러 넘쳐서 징검다리를 보기가 어렵게 되고 
혹 보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현기가 나서 징검다리가 거기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을 헛디디므로 그만 진흙 투성이가 되고 맙니다. 
죄악의 구렁에 빠집니다. 
그러나 저 좁은 문으로 한번 들어간 후에는 땅이 아주 좋습니다.“ 하였다. 
좁은 문을 통과한 성도의 마음 밭은 좋은 밭입니다.
이 때에 ‘연약’은 자기 집에 돌아갔다. 
이웃 사람들이 저를 찾아보러 와서 혹은 그렇게 돌아온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도 하고 
혹은 ‘기독도’와 함께 무모한 일을 한 것이 어리석다고도 하고 
또 혹은 저의 비겁한 것을 비웃어 말하기를
 “나 같은 모험을 시작하였다가 조그만 어려운 일이 있다고 
중도에 폐할 그런 비겁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그리하여 ‘연약’은 모인 좌중에서 부끄러워 머리 둘 것을 몰라하더니
 나중에는 다소의 기운을 얻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돌라 붙어서 거기 없는 ‘기독도’를 무정하게도 비웃고
 ‘연약’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로 말하였다. 
(여기까지 절망소 설명과 뒷이야기)
이 때에 ‘기독도’는 혼자서 길을 가다가 멀리 밭머리로 지나서 
자기를 향하여 오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
 (1차 연단을 마침.)
천로 역정은 연단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기에 신 광야의 축복은 들길을 지나가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마침 저희 길이 서로 가로질리는 곳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세지’(世인간 智슬기)라는 사람으로서 ‘기독도’가 떠나 온 곳에서 가까운
‘육정부’(肉고기情서늘할府마을)라는 대도시에 거생한다. 
그래서 저가 ‘기독도’를 만나 그 인줄 안 것은 ‘기독도’가 ‘장망성’에서 떠난 일이 
저의 사는 성에서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도 이야기 거리가 되었음이요 
또는 ‘세지’가 그의 괴로워하는 모양을 보든지 탄식하며 신음하는 것 등 
여러 가지로 살펴서 그가 ‘기독도’인 줄 짐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세  지-  지금 당신은 이렇게 괴로운 모양으로 어디를 가십니까?
기독도- 나는 진실로 벌써부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으로서 가련한 물건인 줄 압니다. 
            이미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셨으니 말이지만 나는 앞에 있는 좁은 문을 향하여 갑니다.
            나는 그리로 가면 내 무거운 짐을 벗을 도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면 생활에 대한 반성의 시작 단계)
세  지-  당신은 처자가 있습니까?
기독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느니 만큼 
            전과 같이 처자를 낙으로 생각할 수가 없고 세상은 없는 셈입니다.
세  지-  내가 권고할 말이 있다면 당신은 듣겠습니까?
기독도- 나는 좋은 권고를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니만큼 좋은 것이면 듣고 말구요.
세  지- 그러면 내가 권고하는 것은 속히 당신의 짐을 벗어버리는 것이 좋다는 것이외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마음도 진정되지 않을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축복도 누리지 못할 것이외다.
기독도- 나의 일단 소원은 곧 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려는 것이요. 
           그러나 내가 스스로 벗어버릴 수도 없고 내 고향에도 이것을 내 어깨에서 벗겨 줄 사람이 없소이다. 
           그런고로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내 짐을 벗으려고 이 길로 가는 중입니다. 
세  지-  당신의 짐을 벗으려면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누가 말합니까?
기독도- 내가 보기에 매우 높고 점잖은 사람으로서 그의 성함은 ‘전도’(傳道)라고 한 줄로 기억됩니다.
세  지-  그런 말은 참 몹쓸 말이요. 
            그가 당신에게 말한 것만큼 위험하고 곤란한 길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외다. 
            만일 당신이 그의 권고대로 행하게 된다면 실지를 알 것입니다. 
            내가 보건대 당신이 벌써 당한 일이 있는 모양이니 이는
            ‘절망소’의 진흙이 당신에게 묻어 있는 것을 내가 보았습니다. 
            (깨끗한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
            그러나 이것은 이 길로 가는 사람들을 따르는 고난의 시작뿐이겠지요. 
            내가 당신보다 낫살이나 좀 더 먹었으니 내 말을 들으시오.  (이성의 판단과 지식의 판단)
            당신의 마음대로 그 길로만 나간다면 피곤과 고통과 기근과 환난과 적신과 칼과 
            사자와 용과 어두움과 무엇보다도 사망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을 당할 것인즉 
            이는 많은 증거가 있는 일이라 아주 확실한 것입니다. 
            어찌 사람이 그런 경험 없는 자의 말을 듣고 조심 없이 몸을 아끼지 않을 수 있습니까?
기독도- 그렇지만 내 등에 있는 이 짐은 당신이 말한 그 모든 것보다도 내게는 더욱 무서운 것이외다. 
            만일 내가 내 짐만 벗을 수 있다면 길에서 어떠한 일을 만나든지 상관없게 여깁니다.
세  지-  어떻게 처음에 당신의 짐을 알게 되었습니까?
기독도- 내 손에 가진 책을 읽고 알았습니다.
세  지-  그렇겠습니다. 연약한 사람들이 너무 고상한 일을 참견하다가는 
             돌연히 당신과 같이 번민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 번민은 당신에게서 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사람답게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저희로 하여금 저희도 알지 못하는 것을 얻으려고 열광적 모험의 길로 달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육정부라는 세상에서 익혔던 도덕적인 경지에 붙여서 해석을 하려고 하는 마음.)
기독도-  나는 나의 얻으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즉 이 무서운 짐을 벗고 평안함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세  지-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위험이나 따르는 줄을 알면서 어찌하여 평안을 이 길에서 찾으시오? 
             만일 당신이 주의하여 내 말을 들으면 내 능히 당신을 인도하여 
             당신이 이 길에 서 꼭 당하게 될 위험을 받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게 하겠고. 
             아닌게 아니라 구원을 즉시 얻을 것이요. 
             그 외에도 다시 말하자면 모든 위험 대신에 충분한 안전과 친애와 만족을 얻을 것이외다.
기독도-  그렇습니까? 그 비결을 내게 가르쳐 줍시오.
세  지-   저 건너 도덕(道德)이라는 촌에 ‘시법’(侍法)이라는 신사가 사는데 
             매우 지혜 있고 따라서 명성이 높은 사람으로서 
             당신의 지고 있는 것과 같은 짐을 벗겨 줄 재주가 있소이다. 
             과연 내가 아는 만큼 저는 그러한 좋은 일을 많이 하였소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무거운 짐을 인하여 거의 광증이 들린 사람들을(죄를 인식하는 단계가 깊어짐) 
             고쳐주는 재주도 있으니 내 말대로 그에게 가면 즉시 도움을 받을 것이외다.
             그의 집이 여기서 한 3리도 채 못되거니와 만일 그가 집에 없으면 그의 아들 
             ‘예의’(禮儀)라는 얌전한 청년이 있어서 그도 능히 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잘 할 수 있을 것이외다.
             (율법으로 다져지는 신앙의 과정)
              그런즉 당신은 짐을 벗을 수 있을 것이요. 
              또는 당신이 본집으로 돌아가기 싫거든 나도 과연 가는 것을 원치 않거니와 
              당신은 사람을 보내어 처자를 이리로 데려 오시오. 
              여기는 지금 비어 있는 집도 많고 싸게 얻을 셋집도 있으며 
              생활 범절이 싸고 좋으니 한층 복될 것이요. 이웃 사람들도 정직하여 신용 있고 선량하외다.
이 때에 ‘기독도’는 잠시 서 있다가 즉시 생각하기를 
‘만일 참이라면 그 권고대로 행함이 가장 현명한 일일 것이다.’하고 묻기를, 
기독도-  그 정직한 사람의 집으로 가려면 어디를 가야 합니까?
세  지-   저기 저 ‘시내’산이라는 산이 보입니까?
기독도-  네 잘 보입니다.
세  지-   저 산 곁으로 가시오. 가다가 첫째 집이 그의 집이외다.
그래서 ‘기독도’는 길을 돌이켜(진리의 길에서 벗어나는 상태) ‘시법’의 집으로 가서 도움을 구하려 하였다. 
그러나 거친 그 산 곁에 이르러 쳐다본즉 
썩 높고 길 곁에 다다른 산허리가 굽어 내리 덮여서 마치 저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았다.
(2차 연단의 중간 지점) 그리하여 ‘기독도’는 무서워 더 나갈 용기가 없이 
그저 멍하니 서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저의 짐은 전에 길에 있던 때보다 더 무거워진 모양이었다. 
그뿐 아니라 산에서는 불꽃이 나타나서 ‘기독도’로 하여금 태워 죽이지나 아니할까 무섭게 하여
그제야 저는 ‘세지’의 말을 들은 것이 잘못인 줄 알았다. 
마침 그때에 ‘전도’가 자기를 맞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만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게 되었다.
 ‘전도’는 점점 가까이 저에게로 와서 엄숙한 얼굴로 저를 향하여 보며 힐문하였다.(여호와 닛시 체험)

'━━ 보관 자료 ━━ > 천로역정존번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로역정 7 - John Bunyan  (0) 2008.01.12
천로역정 6. - John Bunyan  (0) 2008.01.11
천로역정 4. - John Bunyan  (0) 2008.01.09
천로역정 3. - John Bunyan  (0) 2008.01.08
천로역정 2. - John Bunyan  (0) 2008.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