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마음 속의 교묘한 죄.
제리 브리지스(Jerry Bridges) 지음 오현미 옮김
자제력 부족 - 욕구에 지배당하는 죄
자제력이란 자신의 욕구와 갈망, 충동과 감정, 열정을 제어하는 것, 혹은 신중하게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안 돼"라고 해야 할 때 행동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정당한 욕구와 정당한 행동일지라도 절제하고, 명백히 죄악된 일은 절대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자제력 부족은 심각한 죄를 부른다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성벽이 무너져내린 성과 같다"(잠 25:28).성경 시대에는 성벽이 도성을 방어하는 주요 수단이었다.성벽이 뚫리면 침략군이 도성 안으로 쏟아져들어와 성은 곧 정복당하고 만다.여리고성이 무너진 성경 기사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의 성벽이 무너지게 하시자 이스라엘 군대가 쉽게 성 안으로 들어가 성을 접수할 수 있었다(수6:1-5, 20).
성벽 없는 성이 침략군에게 취약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온갖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잠언 25장 28절 말씀을 기록한 장본인인 솔로몬이 이 사실에 대한 서글프고도 생생한 본보기다. 성경은 솔로몬에게 칠백 명의 아내와 삼백 명의 첩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건만 그는 이방 나라 여기저기에서 아내와 첩을 맞아들였다(왕상 11:1-3). 솔로몬은 이리저리 열정에 휘둘려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 시대에 가장 부유한 군주였던 솔로몬은 자기가 바라는 것은 뭐든지 다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자제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자기 입에서 나온 지혜의 말들을 다 무시하고 열정의 지배를 받았다. 솔로몬은 자제력이 부족했던 것에 대해 엄중한 대가를 치렀다. 이방인 아내들로 인해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돌아섰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왕국을 둘로 분열시키셨다. 그때부터 다윗 왕조는 힘을 잃고 말았다.
잠언이나 신약성경에서 많이 보아왔듯이, 성경은 자제력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고 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자제력이라고 했으며(갈 5:22-23), 자제력이 부족한 것을 말세의 악한 징표 중 하나로 여겼다(딤후 3:3).그는 크레타에서의 사역과 관련하여 디도에게 교훈하면서 자제력에 관해 몇 가지 권면을 하며(딛2:2, 5-6),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은혜가 자제력 있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훈련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딛2:11-12).베드로 또한 두 서신에서 정신을 차리라,혹은 절제하라고 몇 차례나 반복해서 말한다(벧전1:13, 4:7, 5:8,벧후1:5).
자제력에 관한 성경의 많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자제력이라는 덕목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크리스천 문화에는 명백한 죄를 짓는 것을 제한하는 일정한 경계가 있지만, 그 경계 안에서 우리는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간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에 대해 좀처럼 '안 돼'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자제력 부족은 비교적 '점잖은' 죄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제력이 부족한 것을 묵인하다보면 우리는 다른 '용인할 만한' 죄에 더욱 취약해진다.예를 들어 말의 자제력이 부족하면,남을 비꼬고 헐뜯고 비방하고 조롱하는 등의 온갖 더러운 말을 향해 문을 열어주는 셈이 된다.
자제력이란 무엇인가? 이는 자신의 욕구와 갈망, 충동과 감정, 열정을 제어하는 것, 혹은 신중하게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자제력이란 "안 돼"라고 해야 할 때 행동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정당한 욕구와 정당한 행동일지라도 절제하고, 명백히 죄악된 일은 절대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시청을 절제하는 것, 인터넷으로 음란물 보는 것을 절대 제한하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제력은 사람이 본디 타고난 의지력이 아니다. 불신자들 중에도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특정 영역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영역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서는 절제력이 거의 없이 살아간다. 운동 선수는 체중 조절을 위해 음식물 섭취를 철저히 제한하는 것은 잘하지만, 성격 면에서는 자제력이 아주 부족한 경우도 많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제력은 삶의 모든 영역을 다 포괄하며, 우리 영혼을 대적해 싸우는 육체의 정욕과 쉼없이 갈등을 벌일 것을 요구한다(벧전 2:11). 이 자제력은 성령의 영향력과 우리에게 힘 주시는 그 능력에 의존한다. 자제력을 발휘하려면 우리의 생각이 쉼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해야 하며, 자제력을 발휘하려는 욕구와 능력을 주시도록 성령충만을 구하는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자제력은 자기 의지력을 통해 혼자 힘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통제하는 것이다.
음식의 유혹이 있을 때
자제력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발휘되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크리스천들이 특히 취약함을 보이는 세 가지 영역에 대해서만 알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먹고 마시는 영역이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나도 소위 '체중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체중 문제는 자제력 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자제력이 정말 강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줄곧 체중과 씨름해야 했다. 한편, 먹고 싶은 대로 다 먹는데도 살이 안 찌는 사람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오히려 먹고 마시는 문제에서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나는 특정 음식에 대한 욕구에 번번이 무릎을 꿇는 경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주 신실한 크리스천인 내 친구 한 명은 하루에 탄산음료를 열두 캔이나 마신다. 오래 전에는 나도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저녁 식사 때 한 통을 먹고, 잠자리에서 한 통을 또 먹을 정도였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겉보기에 별 문제없어 보이는 이 습관 때문에 좀더 중요한 다른 영역에서 내 자제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것을 깨우쳐주셨다. 그 일을 통해 우리가 삶의 어느 영역에서 자제력을 발휘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자제력을 발휘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욕구를 이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다 치워버리는 것이다.아이스크림을 예로 들자면,나는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사다놓지 말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지금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아이스크림을 산다.그 결정을 한 게 벌써 삼십 년 전의 일이지만,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이스크림에 대해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얼마 전에 소포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는데,공교롭게도 우체국이 아이스크림 가게와 한 건물에 있었다.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강렬한 욕구와 씨름하면서 나는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했다.욕구를 자제하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안 돼!"라고 말해야 하는 때 말이다.
아이스크림이나 탄산음료를 즐기는 사람,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날마다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들을 죄책감으로 옭아매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자제력 부족이란 우리가 욕구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욕구에 굴복해서 욕구가 우리를 지배하게 만드는 걸 뜻한다는 것이다.
화나는 일이 생길 때
크리스천들이 자제력 부족을 보이는 두 번째 영역은 성격의 영역이다. 크리스천들 중에도 성격이 불 같은 사람, 성질이 급한 사람이 있다. 또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은 화를 버럭 냈다가 곧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유순해진다. 또 성질이 급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 자기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격이 불 같은 사람 중에 성질 급한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더러 우리는 "걸핏하면 이성을 잃는다"고 말한다.
분노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살펴볼 것이므로 여기서는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는 행동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자. 대개의 경우 분노는 죄다. 하지만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자제력 부족이라는 죄가 하나 더 추가된다. 우리는 보통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그 사람은 도로에서 내 차 앞에 끼어드는 운전자일 수도 있고, 교인들끼리 발야구 시합을 할 때 부당하게 휘슬을 부는 심판일 수도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사랑하는 가족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자주 있다.
잠언에는 급한 성격을 경고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쉽게 화내는 사람은 어리석게 행동하고"(잠 14:17), "화내는 데 더딘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다(잠 16:32). 신약성경에서는 야고보가 "노하기도 천천히 하십시오"라고 훈계한다(약 1:19). 우리는 주께 죄짓지 않기 위해 주의 말씀을 마음에 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잠 119:11).잠언과 야고보서의 이 말씀을 마음에 품는다면 화가 날 때 자제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크리스천인들이 자제력 부족을 보이는 세 번째 영역은 개인 재정의 영역이다. 최근에 한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평범한 미국인 가정의 신용카드 빚이 평균 7천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긴급 상황에서는 개인이나 가정에 그 정도 빚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균 부채가 7천 달러라는 사실은 미국인들이 분수에 넘치는 소비 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우리는 재정적인 면에서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새 옷, 최신 전자제품이나 디지털 기기, 호화스러운 휴가, 그밖에 우리의 욕구를 자극하는 갖가지 상품 등…. 우리는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에 굴복하고 있다.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이것이 문제라는 사실은 몇몇 기독교 사역 단체가 크리스천들의 재정 운영을 돕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만해 이 단체들은 크리스천들이 자제력 발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 문제에서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단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크리스천을 포함해 여유있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 마음의 욕구에 무릎을 꿇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전도서 기자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나는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은 멀리하지 않았고"(전 2:10), 마음이 무엇을 원하든 그때마다 굴복하는 것은 설령 재정적으로 그럴 만한 여유가 있다 할지라도 성령의 열매인 자제력을 얻는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자제력을 배워야 할 영역은 이밖에도 많다. 컴퓨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사람도 있다. 설령 음란물을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는 것, 충동 구매나 취미 생활에 몰입하는 것, 스포츠 경기를 하거나 관람하는 것 등도 자제력이 발휘되어야 할 영역이다. 남성의 경우, 여성들의 옷차림이 점점 더 대담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만큼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자제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자제력 부족이 드러나는 영역이 비단 이것들 뿐이겠는가. 자기 삶을 한 번 되돌아보라. 내 삶 속에 통제되지 않는 욕구와 갈망, 감정 등이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비교적 '보기 흉하지 않은' 죄, 혹은 '용인할 만한' 죄, 우리가 삶 속에서 묵인하고 있는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크리스천조차도 자제력이라는 미덕을 별로 강조하지 않는 시대에 살면서 어쩌면 삶의 어떤 특정 영역에서 자신이 자제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제 자제력이 부족한 영역을 발견했는가? 그에 대한 자제력을 키우고자 노력할 것인가? 그렇다면 자제력이 성령의 열매라는 것을 늘 기억하라(갈 5:22-23).오로지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써만 우리는 많은 적든 발전을 이룰 수 있다.
<(크리스천이 꼭 이겨야 할) 마음의 죄(Respectable Sins)>(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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