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만약 레베나의 모자익 작품이나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나 혹은 만년의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에게 그 같은 체험이 종교적인 것인지 문화적인 것인지를 묻는다면 그는 대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 같은 체험은 형식에 있어서는 문화적이고 내용에 있어서는 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대답일 것이다. 그것은 특수한 의례적 행위에 딸린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는 문화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것과 인간 실존의 유한성을 다룬다는 이유에서는 종교적이다.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음악이나 시, 철학, 과학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러한 직관과 이해에서 진실이 되어 있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법률과 관습을 만들어내는 실제적인 일이나 도덕과 교육, 공동체와 국가에 있어서도 진실이 되어 있다. 인간실존이 궁극적인 물음 아래에 종속되어 있고 그리하여 초월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문화는 종교적이다. 그리고 조건적인 의미만을 가진 일들 속에 무조건적인 의미가 보여지는 곳이라면 거기서도 또한 문화는 종교적이다. 문화가 본질적으로 종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가운데에 나는 종교와 문화의 경계선에로 나아갔고 그리고 결코 그 곳을 떠난 적이 없었다. 나의 종교철학은 주로 이 경계선의 이론적 측면에 관계되어 있다.
종교와 문화 사이의 관계는 그 경계선의 양 쪽 측면으로부터 규정되어야만 한다. 종교는 절대적인 것을 포기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신의 개념 속에 표현된 보편적 주장을 버릴 수 없다. 종교는 문화 속의 한 특수한 분야가 되어서는 안 되며 또 문화의 옆자리를 차지해서도 안 된다. 자유주의는 종교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자 해 왔다. 어떤 식으로 하든 종교는 불필요하고 사라져야만 한다. 문화체계가 종교 없이도 완전하고 자기충족적(自己充足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종교에 대하여 문화의 자율성, 곧 문화 그 자체를 포기하지 않고는 굴복할 수 없다는 항변권을 갖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문화는 절대적인 내용을 포함한 모든 내용들이 스스로를 나타낼 형식을 결정하여야 한다. 문화는 진리가 정의와 종교적 절대라는 구실 아래에서 희생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다. 종교가 문화의 본질이듯이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 오직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종교의 뜻하는 바는 본질로서 그것은 무조건적인 원천이자 의미의 심연이며 문화 형식이 그 본질의 상징으로써 봉사한다. 문화가 뜻하는 바는 형식으로서 그것은 조건부 의미를 뜻한다. 무조건적 의미를 뜻하는 본질은 문화가 승인해 준 자율적 형식의 매체를 간접적으로 통해서만 간파될 수 있다. 문화는 인간 실존이 완전하고도 자율적인 형식의 틀 안에서 그 유한성과 영원에 대한 갈구에 있어서 이해될 때 그 최고의 표현을 얻는다. 반대로 종교가 그 최고의 표현을 얻자면 그 자신 안에 자율적 형식, 곧 로고스 - 초대 교회가 그렇게 불렀듯이 - 를 품고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종교와 문화에 대한 나의 철학의 기본 원리를 구성했으며 종교적 관점에서 문화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왜 나의 책 "종교적 상황(The Religious Situation)"에는 좁은 의미의 종교적 문제가 적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가까운 지난날의 지적 사회적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고려되고 있는가 하는 이유이다. 나는 그 같이 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실상의 종교적 상황에 맞먹는 일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정치적 사회적 관심은 무수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에게는 종교적 이상과 정치적 이상이 합치한다는 정도로까지 종교의 힘을 흡수해버렸다. 국가의 신화와 사회정의의 신화는 그리스도교의 원칙과 널리 바꿔치기되고 있으며 그것들이 문화적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으로 여겨질 수 있을 만한 효력을 갖게 되었다. 내가 "문화 신학의 이념에 관하여(Uber die Idee einer Theologie der Kultur)"라는 강의에서 전개했던 문화에 관한 신학적 분석의 개요는 최근 역사의 흐름을 고찰하고 있다.
그 중 세속주의에 대한 프로테스탄티즘의 관계를 다룬 한 항목에서 나는 이러한 고찰의 신학적 결론을 그려 보였다. 거기에서 나는 만약 프로테스탄티즘이 그 어떤 지배 열망을 갖는다면 그것은 세속적인 것에로 향해서 존재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생각은 카톨릭이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갈라놓는 것을 근본적으로 배척한다. 무조건적인 것(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용어로 하면 신의 주권)의 출현 앞에서는 어떠한 우선권 있는 영역도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스스로 거룩한 어떠한 인물도, 경전도, 공동체도, 제도도, 행위도 있을 수 없으며 스스로 세속적인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세속적인 것은 거룩함의 질을 고백할 수 있고 거룩한 것은 세속적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사제는 평신도이며 평신도는 언제라도 사제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신학적 원칙일 뿐만 아니라 전문인으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지켜온 입장이기도 하다. 성직자로서 또 신학자로서 나는 나의 신학적 고투를 숨길 의향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도리어 나는 그런 고투가 쉽사리 감추어질 수 있는 영역, 예를 들면 철학교수로서의 나의 활동 등에서 그런 고투를 자랑해 왔다. 그러나 나는 나를 세속적 삶으로부터 떼어놓으면서 나로 하여금 "종교적"이란 꼬리표를 달게 할지도 모르는 신학적 체질에 젖지 않기를 바랐다. 종교는 세속적인 것을 분열시키고 변형시키면서 그것으로부터 뛰쳐나올 때 그 무조건적 성격이 훨씬 더 드러나 보이는 듯이 여겨진다. 또한 나는 어떤 제도나 인격이 스스로 종교적인 듯이 여겨질 때야말로 종교적인 것의 역동적 차원은 배신당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성직자를 직업상의 필요로 신앙을 갖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가깝다.
독일 교회의 의식(儀式)을 개혁하려는 노력들에 대한 나의 응답은 이 확신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는 빌헬름 슈태린(Wilhelm Stahlin)과 칼 리터(Karl Ritter)가 이끄는 이른바 베르노이헨(Berneuchen) 운동에 가담했다. 이들은 다른 어떤 개혁집단들보다 더 종교적인 개혁들을 추구했으며 또 의식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먼저 개혁을 위해 선명하게 정의된 신학적 기반을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보람있는 신학적 협력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의식적 행사나 형식이나 태도들은 그것들이 만약 원래대로 즉 우리의 전체 실존을 지탱시키고 있는 종교적 본질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특유의 방법인 상징적 형식으로 이해되기만 한다면 "세속적인 것에 대한 열망"과 모순되지 않는다. 의식이나 예전적 행사의 의미는 스스로 거룩한 그런 행사는 아니며 오직 홀로 거룩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없기도 한 무조건적인 것의 상징이다.
베르노이헨회(會)의 위원회에서 행한 "자연과 성례전(Natur und Sakrament)"이란 강의에서 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인본주의의 비예전적이고 지적인 사고방식과 중세 말기에 사라진 예전적 사고방식의 전래적 의미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하고자 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틀 속에서는 이것은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다. 어떠한 교회도 거룩한 것의 성례전적 표현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를 베르노이헨회에 관여케 한 것은 이런 확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 사이의 경계선에 대한 우리들 공동의 관심을 멀리 떠나 예배 형식(때로는 고대 예배 형식)에 대한 배타적 선입견에까지 흘러가게 되자 나는 그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시 나는 경계선에 서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 영성을 위한 ━━ >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0) | 2022.10.24 |
---|---|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0) | 2022.10.22 |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0) | 2022.10.20 |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1) | 2022.10.19 |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0) | 2022.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