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루터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칼빈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옮아가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며 특히 칼빈주의의 좀 더 세속화된 형태에 있어서 그러하다. 루터주의의 노선에서는 사회주의로 가기란 매우 어렵다. 나는 출생으로 보나 교육, 종교적 체험 기타 신학적 생각으로 보나 루터주의자다. 나는 한 번도 루터주의와 칼빈주의의 경계선에 섰던 적은 없으며 그것은 내가 루터주의의 사회윤리가 비참한 결과에 이르는 것을 경험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서 칼빈주의의 신의 나라라는 이념이 갖는 한량없는 가치를 깨달은 뒤에도 여전히 그러했다. 나의 종교적 바탕은 루터주의이고 지금도 그렇다. 루터주의는 실존의 파탄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으며 각종의 사회 이상향(진보주의의 형이상학을 포함한)의 거부, 실존의 비합리적 악마적 성격에 대한 깨달음, 종교에 있어서의 신비적 요소에 대한 인식, 사적 공적 삶에 있어서의 청교도적 율법주의에 대한 거부 등을 갖고 있다. 나의 철학적 사고 또한 이 특유한 내용을 표현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일 신비주의의 철학적 대변인인 야콥 뵈메(Jacob Boehme)만이 유일하게 루터주의에 대한 특별히 철학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뵈메를 통하여 루터주의의 신비주의는 쉘링과 독일 관념론에 영향을 끼쳤고 쉘링을 통하여 루터주의는 이번에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나타난 비합리주의 및 생기론(生氣論:vitalism)의 철학에 영향을 끼쳤다. 많은 반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비합리주의와 생기론에 기반을 두게 될 만큼 루터주의는 사회주의를 점검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뿐만 아니라 철학을 통해 간접적으로 일해 왔다.
전후 독일 신학의 과정은 종교에서 사회주의에로 옮아가는 것이 루터주의자로 교육된 사람에게는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매우 뚜렷이 보여준다. 루터주의에 속하는 두 신학적 운동이 종교적 사회주의에 대립되었다. 그 하나는 "젊은 루터파" 신학으로 자칭한 종교적 국가주의였다. 그 주된 제창자는 엠마뉴엘 히르쉬(Emmanuel Hirsch)였는데 그는 한 때 나의 동료학생이자 친구였으나 후에는 신학적 정치적 대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변증법적 신학"으로 불리는 바르트주의 신학이었다. 비록 바르트의 신학은 칼빈주의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신의 나라에 대한 그의 강한 초월적 이념은 분명히 루터적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바르트 신학의 무관심과 국가주의에 대한 히르쉬의 신성화는 독일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전통과 너무나도 일치되어 있어서 종교사회주의로서는 그들을 반대한다는 것이 아무 성과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독일적 풍토에서 종교사회주의가 가망이 없다는 사실은 종교사회주의가 신학적으로 틀렸다거나 정치적으로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종교와 사회주의를 묶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앞으로 언젠가는 독일 역사에 있어서의 비극적 요소로 깨달아질 것이다.
루터주의와 종교사회주의 사이의 경계선에 서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유토피아주의의 문제와 비판적으로 마주설 것을 요구한다. 인간에 대한 루터주의적 원칙은 생기론 속에서 취한 자연주의적 형태에 있어서조차 모든 유토피아주의를 부정한다. 죄, 탐욕, 힘에의 의지, 무의식적 충동 혹은 인간의 상황을 그리기 위해 사용된 용어라면 그 어떤 것들도 인간과 자연의 실존과(물론 그것들의 본질이나 타고난 천성과가 아니라) 너무나도 연관되어 있어서 변질된 현실의 영역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왕국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결코 이룩될 수 없다. 모든 유토피아주의는 형이상학적 실망에로 운명지어져 있다. 아무리 인간의 본성이 바뀔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인 도덕적 시정에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환경에 있어서의 개선은 인간의 일반적 윤리수준을 높이고 그 야성의 거칠음을 도야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개선은 인간이 어디까지나 인간인 한 자유에 영향을 미쳐 선과 악을 행하게 하지는 않는다. 인류는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선악은 단지 더 높은 국면으로 끌어올려질 뿐이다.
인간 실존에 관한 루터적 이해로부터 직접 끌어온 이 같은 고찰을 가지고 나는 사회주의적 사고에 점점 더 중요해져 가는 문제, 그리고 종교사회주의에게는 특별한 관심 영역인 인간 원칙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나는 그릇된 인류학이 종교사회주의로부터 그 설득력을 빼앗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인간에 관한 진리(루터의 표현대로 하자면 "인간 안에 있는 것")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가는 성공할 수 없다. 다른 한편 나는 루터주의적 생각 - 특히 그 자연주의적 변형, 곧 생기론과 파시즘의 경우 - 이 인간에 대한 최종적 결어(結語)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예언자적 메시지는 다른 곳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그런 사고방식을 겨냥하게 될 것이다. 예언자적 메시지는 인간 본성이 모든 본질과 함께 변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기적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인간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면서도 그 본성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는 관점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런 자들은 유토피아주의자를 뜻하며 예언자적 기다림의 역설을 뜻하지는 않는다.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인류학적 의미가 두드러지게 부각되기 훨씬 이전에 유토피아의 문제는 종교사회주의 운동의 중심문제였다. 우리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 바로 후에 종교와 사회주의를 의논하기 위해 만났다. 그 처음 몇몇 모임에서 우리의 근본문제는 몇 가지 사회적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종교의 관계라는 점이 드러났다. 내가 신약성서의 카이로스(Kairos:때가 참, the fullness of time)의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그 때였는데 그것은 종교와 사회주의 사이의 경계선적 개념으로서 그 후 독일 종교사회주의의 품질보증서(hallmark)가 되어 왔다. "때가 찼다"는 개념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한 투쟁이 신의 나라라는 관념으로 표현된 류의 성취를 지향할 수는 없으며 신의 나라의 특수한 측면이 우리를 위한 요구와 소망이 되듯이 특수한 때에 특수한 임무가 요구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신의 나라는 늘 초월적인 채로 남아 있을 것이나 그것은 주어진 사회형태 위에 심판으로 나타나며 다가오는 사회를 위해서는 규범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사회가 신의 나라로부터 영 동떨어진 것일지라도 종교사회주의자가 되겠다는 결단은 신의 나라를 위한 결단이 될 것이다. 내가 편집한 『카이로스』에 나는 제1권 "정신의 상황과 정신의 변화에로(Zur Geisteslage und Geistwendung)" 제2권 "비판과 자기확립으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us als Kritik und Geistaltung)"의 두 권을 기고했는데 거기에서 카이로스의 개념은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전제들과 의미 가운데에서 고찰되고 있다.
"카이로스"라는 생각에 얽힌 매우 중요한 개념은 악마적이라는 개념이다. 나는 그것을 "악마적인 것에 관하여(On the Demonic)"이란 글에서 논하였다. 이 개념은 루터적 신비주의와 철학적 비합리주의가 놓아준 발판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악마적인 것은 개인적, 사회적 삶 속에 깃든 창조적이면서 동시에 파괴적인 어떤 힘이다. 신약 성서 안에는 귀신들린 자가 정상적인 자보다 예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적 분열을 맞는 까닭에 그런 깨달음을 자신에 대한 저주로 생각한다. 초대 교회는 로마제국을 스스로 신과 같이 여긴다 하여 악마적이라고 불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황제를 위해 기도하였고 또 그가 보장해주는 도시의 평화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비슷하게 종교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국가주의가 동시에 파괴적이면서 창조적인 점에서 악마적 세력들임을 보이고자 하며 그들의 가치체계에 신성을 베풀고자 노력한다. 유럽 국가주의와 러시아 공산주의의 과정, 그리고 그들의 거짓 종교적 자기합리화 과정은 이 진단을 넉넉히 확인해 주었다.
종교와 문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타율과 자율 등에 관한 나의 이전의 생각들이 종교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성찰에 합류해 들어가서 이제 그 문제가 나의 모든 생각의 초점이 된 것은 놀랄만한 일이 못 된다. 무엇보다 사회주의는 내가 신율적 역사철학을 이끌어내고자 했을 때 이론적 바탕과 추진력을 마련해 주었다. 물리적 시간이나 생물학적 시간과는 구별되는 "역사적" 시간을 분석함으로써 나는 요구되면서도 기다려지는 새로움에로의 움직임을 구성요소로 하는 역사의 개념을 전개시켰다. 역사로 하여금 그리로 움직여 가게 하는 새로움의 본질은 역사의 의미와 목표가 명백해지는 구체적 사건들 속에 나타난다. 나는 그런 사건을 "역사의 중심"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 중심은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나타나심이다. 역사 속에서 서로 투쟁하는 세력들은 그 보여지는 양상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들을 얻을 수 있다. 악마적-신적-인간적, 예전적-예언자적-세속적, 타율적-신율적-자율적 따위로 각각의 가운데에 놓인 말은 양단의 종합명제를 나타내며 그것을 향하여 역사는 때로는 창조적으로, 때로는 파괴적으로 그러나 결코 완성되는 일은 없이 항상 예상되는 완성의 초월적 힘에 의해 치달리며 스스로를 전개해 나간다. 종교사회주의는 새로운 신율에로 움직여 가는 그러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경제체제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현실의 깊이 있는 이해이며 우리가 가진 현재의 카이로스에 의해 요청되고 기다려지는 신율의 형식이다.
'━━ 영성을 위한 ━━ >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0) | 2022.10.24 |
---|---|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0) | 2022.10.24 |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0) | 2022.10.21 |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0) | 2022.10.20 |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1) | 2022.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