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관념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나는 독일 관념론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으며 거기서 배운 것을 과연 잊을 수 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무엇보다도 나는 칸트의 지식 비판의 은덕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나에게 경험적 지식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대상의 영역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경험에 대한 온갖 분석과 실재에 대한 온갖 체계적 설명은 주관과 객관이 만나는 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관념론적 자동률(自同律:principle of identity)을 이해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다. 그것은 형이상학적 고찰의 한 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식의 근본 성격을 분석하는 원리다. 오늘날까지 관념론에 대한 비판이 없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그 과정이 옳지 않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이 원리를 나의 결별의 입장으로 삼음으로써 나는 형이상학적이거나 자연주의적인 실증주의의 모든 형태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만약 관념론이 사고와 존재의 합일(identity)을 진리의 원리로서 주장하는 것을 뜻한다면 나는 인식론상으로는 관념론자다. 나아가 자유의 요소는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경험에 가장 잘 부합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관념적으로 개념화하는 가운데에서 그 표현을 얻는 것처럼 내게는 여겨진다. 사람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 사고와 행동에서 절대적 요구(범주적 명령)를 깨닫는 것, (현대 형태심리학 이론에서처럼) 자연과 예술, 사회에서 뜻있는 형식을 인식하는 것 - 이 모든 것들을 인간의 원리가 자유의 철학이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주었다. 나는 의미의 개념 속에서 아마 가장 적절하게 표현되었다싶은 인간 정신과 현실과의 사이에 어떤 공명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점이 헤겔로 하여금 절대정신 안에서의 객관정신과 주관정신의 합일을 말하게 하였다. 관념론이 실재의 다양한 영역들에 의미를 주는 범주들을 고안해 낼 때 관념론은 철학을 합리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한 그 임무를 완수코자 노력했다.
좀 색다른 문제점이 나를 관념론의 문 앞에로 이끌었다. 관념론자들은 그들의 범주체계가 실재와의 명백하고도 실존적으로 제한된 만남의 표현이라고 하기보다는 전체로서의 실재를 그대로 그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쉘링만이 그의 철학 발전의 제2기에서 관념론적이거나 본질론적인 체계의 한계를 깨닫고 있었다. 그는 실재란 순수한 본질의 표출일 뿐 아니라 그 모순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인간 실존 그 자체가 그 같은 본질 모순의 한 표현임을 깨달았다. 쉘링은 사고 또한 실존에 매여 있으며 그 본질 모순(반드시 그 자체가 흠 있는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쉘링은 이 경이로운 생각을 펼치지는 못했다. 헤겔처럼 쉘링도 그 자신과 그의 철학은 실존 속의 모순이 극복되고 절대적 관점이 얻어진 역사 발전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고 믿었다. 쉘링의 관념론은 실존적 생각을 향한 그의 내적 노력을 압도했다. 관념론적 본질 철학의 닫힌 체계를 처음으로 깨어 부순 사람은 키에르케고르였다. 삶의 불안과 절망에 대한 그의 불꽃튀기는 해석은 실로 실존주의라고 불릴만한 철학을 창도했다. 전후 독일 신학과 독일 철학에 미친 그의 저작의 중요성은 결코 과대평가가 될 수 없다. 학창시절의 마지막 무렵(1905-1906)에 벌써 나는 그의 파고드는 듯한 변증법의 영향 아래에 들어갔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존재에 대한 관념론적 철학에 대한 반동이 또 다른 방향에서 불붙기 시작했다. 헤겔의 불같은 추종자들이면서도 그 선생에 대항해서 나왔으며 "관념론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자들이 관념론의 범주 내에서 이론적 실제적 유물론을 소리높이 외쳤다. 이 부류의 한 사람이었던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그보다도 한 발 더 앞섰다. 그는 관념론의 범주들이나 그것을 유물론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배척했으며(그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반론"을 보라) 그런 철학에 맞서서 한 입장을 주창했다. 이 새로운 입장은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철학 - 그는 철학을 본질의 철학과 똑같이 여겼다 - 은 실재 속의 모순을 은폐하려 할 뿐 아니라 인간 존재, 곧 세계에서의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적 모순에 실제로 중요한 것들을 추상화하고자 한다. 이 모순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사회계급간의 투쟁은 관념론이 이데올로기라는 것, 곧 현실의 양의성(ambiguities)을 은폐하는 기능을 가진 개념체계임을 보여준다. (비슷하게 키에르케고르는 본질의 철학이 개인적 실존 속에 있는 양의성을 감추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먼저 나는 마르크스의 덕분에 관념론은 물론 종교적, 세속적인 모든 사고체계들이 가진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통찰할 수 있었는데 그 성격이란 힘의 체계(power structure)를 가지게 되면서 오히려 그 때문에 실재의 보다 올바른 조직화가 (무의식적일지라도) 가로막히게 되는 성격을 말한다. 루터가 "제 스스로 만들어낸 신(self-made God)"에 대해 경고했던 것은 철학에 있어서 이데올로기가 갖는 의미에 상응한다.
진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본질주의의 닫힌 체계를 거부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진리는 그것을 깨닫는 사람의 상황에, 곧 키에르케고르에 있어서는 개인의 상황에, 그리고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사회의 상황에 달려 있는 것이다. 순수한 본질에 대한 앎은 실존 속에 있는 모순이 깨달아지고 극복되는 정도에 따라서 가능한 것이다. 절망(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모든 인간존재의 조건)의 상황에 있어서나, 계급투쟁(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 본성의 역사적 조건)의 상황에 있어서나 닫힌 채로 조화된 모든 체계는 비진리다. 그러므로 키에르케고르와 마르크스 양자는 구체적인 심리적 혹은 사회적 상황에 진리를 관련시키고자 한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의 진리는 주체성으로서 그것은 자신의 절망을 부인하지 않고 본질 세계로부터 쫓겨났음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 조건 안에서 진리를 뜨겁게 확신한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의 진리의 소재는 계급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운명을 깨닫게 된 계급, 즉 비이데올로기적 계급의 계급적 관심이다. 두 경우를 통하여 우리는 놀랍게도 -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 비이데올로기적 진리를 얻는 최대의 가능성은 가장 깊은 무의미의 영역에서, 가장 깊은 절망을 통하여, 가장 비참한 본성으로부터의 소외 가운데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배운다. "프로테스탄트 원리와 무산계급의 상황(Das Protestantische Prinzip und die proletarische Situation)"이란 제목의 글에서 나는 이러한 생각을 프로테스탄트 원리와 인간의 경계선적 상황을 다루는 그 교의(敎義)에 관계시켜 보았다. 물론 그런 일은 무산계급이란 표현이 유형학적으로 쓰이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때때로 실제의 무산계급보다는 몇몇 유산계급적 집단 - 예를 들면 자신의 계급적 상황을 넘어서서 무산계급들로 하여금 자기의식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경계선적 상황에까지 나아가는 지식인들 - 이 더 무산계급적 유형에 부합되기도 한다. 우리는 무산대중을 마르크스가 사용한 유형학적 개념의 무산계급과 똑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보통 이해되기로는 마르크스주의란 "경제적 물질주의"를 뜻한다. 그러나 고의든 아니든 이 같은 어휘 구성은 물질주의라는 말의 양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만약 물질주의가 오직 "형이상학적 물질주의"만을 뜻할 수 있을 뿐이라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경계선에 설 수 없었을 것이며 또 물질주의와 관념론 둘 다에 대항해 싸웠던 마르크스 자신도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 물질주의가 형이상학이 아니라 역사 분석의 방법임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적"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인간 실존의 모든 측면에 관련된 복합적 요소로서 역사 해석의 유일한 원리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의미한 주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물질주의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사회적, 지적 형태가 결정지어지고 변동이 엮어져나가는 데에 있어서 경제체제와 경제적 동기들이 갖는 근본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경제적 요인과 무관한 채로 사고와 종교의 역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며 그리하여 관념론이 소홀히 하여 다루지 않았던 신학적 성찰, 곧 인간은 하늘 위에 사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산다는 사실(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본질의 영역에 사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가운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마르크스주의는 실재의 감추어진 지평들을 열어 보이는 한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점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는 정신분석학과 비교될 만하다. 열어 젖힌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며 어떤 경우에는 파탄을 초래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이디푸스왕의 전설과 같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이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인간은 자기지신의 실제적 본연이 드러나는 것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막는다. 오이디푸스왕처럼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주고 자기의식을 지탱해 주고 있던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파멸되고 만다. 내가 자주 만나보았던,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격렬한 배척은 그들을 파탄시킬지도 모르는 열어 젖힘을 피하고자 하는 개인 및 집단들의 시도였다. 그러나 이 괴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그리스도교 복음의 궁극적 의미는 인식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신학자는 실존의 양의성(兩義性)을 얼버무리는 관념론이나 퍼트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자주 이들 수단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는 경계선이라는 그의 위치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 - 그는, 나 자신도 애썼던 것처럼, 정신분석학이 부분적으로 녹슨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비판할 수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적이고 교조적 요소를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과학적 타당성이 없는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사적인 이론들을 거들떠보지 않을 수도 있다. 신학자는 형이상학적 물질주의와 윤리적 물질주의에 대해 그것이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든 아니든 간에 저항할 수 있으며 또 저항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이들 두 움직임이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인간실존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어 준 데 있어서 보여준 효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폭로하는(unmasking)" 효과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요구와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것으로서 그것은 역사 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고 또 앞으로도 끼쳐갈 것이다. 관념론이 동일 원리 속에서 이루어진 한 신비적이고도 예전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는 반면 마르크스주의에는 예언자적 정열이 있다. 나의 책 "사회주의적 결단(Die Socialistische Entscheidung)"의 중심적 부분에서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훨씬 원대한 종교적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다 진지하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나는 또 사회주의적 원리에 대해 그것을 유대교-그리스도교적 예언주의의 교리와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이해를 얻고자 노력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나를 관념론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며 관념론자들은 나의 물질주의를 들어 불평을 늘어놓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실로 그 둘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정치적 반대자를 비방하는 표어가 되어왔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인정한 것은 종교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관계에 대한 앞에서 말한 바와 정치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나를 그 어떤 정당에 속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약 어느 두 정당 사이에 서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그런 "사이"는 이 책의 딴 곳에서 쓰여진 것과 다른 뜻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정당에서는 결코 충분히 표명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맘속으로 어떠한 정당에도 속하지 않고 또 결코 속해본 적도 없었다. 나는 어떤 정당에도 매이지 않은 한 협력체 - 비록 그것이 다른 정당보다 어느 한 정당에 더 가까운 것일지라도 - 를 열망하며 또 늘 열망해 왔다. 예언자적 정신 속에서 그리고 카이로스의 요구에 부응해서 세워지는 이 단체는 보다 올바른 사회 질서를 위한 선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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