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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어페어7 - 무라카미 하루키.

Joyfule 2011. 1. 13. 09:10

 패밀리 어페어7 - 무라카미 하루키. 

"손재주가 있다면서?"하고 나는 물었다.
"그렇습니다."하고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대답했다.
"옛날부터 프라(플라스틱)모델이랑 라디오 조립을 좋아했습니다, 
온 집안의 망가진 것을 수리하며 돌아다녔지요. 오디오의 어디가 안됩니까?"
"소리가 나오질 않아."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앰프의 스위치를 넣고 레코드를 걸고,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맹수 같은 모양새로 오디오 앞에 앉아서 하나하나 스위치를 점검해 보았다.
"앰프 계통이군요, 그것도 내부가 잘못된 게 아니고."
"어떻게 알지?"
"귀납법입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귀납법',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소형 프리 앰프와 파워 앰프를 끄집어내 놓고 
전선을 전부 뜯어, 하나하나 정성들여 점검했다. 
그 동안에 나는 냉장고에서 버드와이저 캔을 꺼내 혼자서 마셨다.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건 역시 즐거운 일이겠지요."하고 
그는 샤프 펜슬 끝으로 플러그를 건드려 보면서 말했다.
"글쎄, 옛날부터 줄창 마셨으니 잘 모르겠어. 비교할 길이 없거든."
"저도 조금 연습하고 있습니다."
"술 마시는 연습을?"
"예, 그렇습니다. 이상합니까?"
"이상하긴, 우선 백포도주로 시작하는 게 좋겠지. 
커다란 잔에다 백포도주와 얼음을 넣고 거기다 페리에를 타고 
레몬을 짜 넣어 마시는 거지. 난 쥬스대신 마시지만."
"시험해 보겠습니다. 옳지, 역시 이거였군,"
"뭐가?"
"프리와 파워 사이의 코넥팅 코드지요, 
좌우 모두 핀 플러그가 뿌리부터 빠져 버렸군요. 
이 플러그는 구조적으로 상하의 흔들림에 약합니다. 
그런데 엉성하게 만들었네요. 
이 앰프 요즘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았나요?"
"그러고 보니 그 뒤를 청소할 때 움직였어요."하고 여동생이 말했다.
"바로 그거야."하고 그가 말했다.
"그거 오빠 회사 제품이죠? 
그렇게 약한 플러그를 붙여 놓는 자체가 잘못이지."하고 여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만든 건 아니라구, 나는 광고를 만들고 있을 뿐이야."
하고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땜질 인두가 있으면 곧 되겠는데요, 있습니까?"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말했다.
나는 '없다.'고 했다.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럼 제가 한달음에 사오겠습니다. 
땜질 인두는 한 개쯤 있으면 편리하니까요."
"그렇겠지, 그런데 철물점이 어디 있더라?"하고 나는 풀이 죽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아까 그 앞을 지나서 왔으니까요."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말했다.
나는 또 베란다로 얼굴을 내밀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올라앉아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죠?"하고 여동생이 말했다.
"마음이 누그러지는군."하고 나는 말했다.
핀 플러그의 수리가 무사히 끝난 것은 5시 전이었다. 
그가 가벼운 보컬을 듣고 싶다기에 여동생은 훌리오 이글레시어스의 레코드를 걸었다. 
훌리오 이글레시어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맙소사 어떻게 그 따위 두더지 똥 같은 것이 집에 있었지?
"형님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십니까?"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물었다.
"이런 거 좋아한다구."하고 나는 심통스럽게 말했다.
"그밖에는 블루스 스프링스턴이라든가 제프 벡이라든가 도어즈라든가, 그런거지."
"다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역시 이런 느낌의 음악입니까."
"대개 비슷하지."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지금 그가 속해 있는 프로젝트 팀이 개발중인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 이야기를 했다. 
철도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되돌리는 운전을 하기 위한 
다이어그램을 순간적으로 계산하는 시스템인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까, 확실히 편리하긴 하겠지만, 
그 원리는 핀란드어의 동사 변화만큼 잘 알 수 없었다.
그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나는 적당히 받아넘기면서 줄창 여자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휴일에는 어디서 누구와 술을 마시고, 
어디서 식사를 하고, 어느 호텔에 들어갈까, 뭐 그런 것이었다.
나는 필시 나면서부터 그런 것이 구미에 맞았다. 
프라 모델을 만들고 전차의 다이어그램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편에 있듯이 
나는 이런저런 여자와 술을 마시고 그녀들과 자는 것이 좋았다. 
그런 것은 꼭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숙명과도 같은 것일거다.
내가 네 병째 맥주를 거의 다 마셨을 무렵에 저녁 준비가 되었다. 
메뉴는 스모크 서본과 버시 소워즈, 스테이크, 샐러드와 프라이드 포테이토였다. 
평소나 다름없이 여동생이 만든 요리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샤브리를 따서 혼자 마셨다.
"형님은 어떻게 전자 제품 회사에 취직을 하셨는지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전기에 대해 별로 취미도 없는 것 같은데."
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텐덜로인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면서 물었다.
"오빠는 대개 유익하고 사회적인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일자리는 어디라도 관계없는 거죠. 
공교롭게 거기 연줄이 닿아서 들어갔을 뿐이에요."하고 여동생이 말했다.
"맞았어."하고 나는 힘차게 동의했다.
"머리 속엔 노는 일밖에 없어요.
 뭔가 진지하게 탐구한다든가 그런 생각은 제로라고요."
"여름 날의 베짱이."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을 삐딱하게 보고 즐기고 있다구요."
"그건 아닌데. 남의 일과 내 일은 별개의 문제야. 
나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정해진 열량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라구. 
남의 일과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 삐딱하게 보지도 않고, 
확실히 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남을 훼방놓거나 하진 않아."
하고 나는 말했다.
"별 볼일 없다니요."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필시 가정교육이 잘 되어 있다.
"고맙네."하고 말하며 나는 포도주 잔을 치켜 들었다.
"그리고 약혼을 축하하네, 혼자만 마셔서 안됐지만."
"식은 10월에 올릴까 합니다. 다람쥐도 곰도 부르지 못하지만,"
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말했다.
"그거 마음에 두지 말게나."하고 나는 말했다. 
어이쿠, 이 녀석 농담도 하는군.
"그래 신혼 여행은 어디로 가지? 할인 요금으로 갈 수 있을 테지?"
"하와이"하고 여동생이 간결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