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어페어8 - 무라카미 하루키.
그 다음 우리는 비행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안데스 산중의 비행기 조난 사건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을 뿐이라서 그 이야기를 했다.
"사람 고기를 먹을 때에는 비행기의 듀랄루민 파편 위에다 고기를 올려 좋고,
태양 볕에 익혀서 먹는대."하고 나는 말했다.
"아니 식사 중에 어떻게 그따위 얘기를 할 수 있죠?
그런 악취미가 어디 있어요?
다른 여자아이를 꼬일 때도 식사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나요?"하고
여동생이 손을 멈추고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형님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으십니까?"
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마치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손님을 초대한 꼴과 같았다.
"기회가 없어서."하고 나는 프라이드 포테이토를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어린 여동생 시중도 들어주어야 했고, 오랜 전쟁도 있었고."
"전쟁, 어떤 전쟁이죠?"하고 와타나베 노보루는 깜짝 놀란 듯이 물었다.
"쓸데없는 농담이에요."하고 여동생은 드레싱을 뿌리면서 말했다.
"그래, 쓸데없는 농담이야. 하지만 기회가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라구.
나는 성격이 편협한데다 양말도 제대로 빨아 신지 않았으니
함께 살아도 좋다는 생각을 해주는 멋진 여자아이를 만날 수가 없었다네.
자네하고 달라서 말이지."하고 나는 말했다.
"양말이 어떻다구요?"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물었다.
"그것도 농담이죠. 양말정도는 내가 매일 빨아 준다구요."
하고 여동생이 지친 목소리로 설명했다.
와타나베 노보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1초 반동안 웃었다.
이 다음에는 3초쯤 웃겨 주자고 나는 결심했다.
"하지만 동생과는 줄창 함께 사셨지 않습니까?"하고 그는 여동생 쪽을 가리켰다.
"그거야 여동생이니까."하고 나는 말했다.
"그건 오빠가 멋대로 놀아도 내가 일절 간섭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죠.
하지만 진짜 생활이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진짜 어른들의 생활이란 말이지,
진짜 생활이란 사람과 사람이 좀 더 정직하게 대하는 것이죠.
하긴 오빠와 함께 지낸 5년간의 생활은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어요.
자유롭고, 속 편하고. 하지만 최근에 와서 이런 것은 진짜 생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 말하자면 생활을 실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오빠는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고 있고, 진지하게 말하려 해도 이죽거릴 뿐이고."
"소극적일 뿐이야."하고 나는 말했다.
"오만한 거예요."하고 여동생이 말했다.
"소극적이고 오만하고. 소극적인 것과 오만의 되돌리기 운전을 하고 있는 셈이지."
하며 나는 포도주를 따르면서 와타나베 노보루를 향해 설명했다.
"알 것 같습니다."하고 와타나베 노보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혼자 있게 되면-말하자면 동생과 제가 결혼하면 그 말인데-
역시 형님도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친구 중에 착한 아이가 있는데,
소개해 줄까요?"하고 여동생이 물었다.
"그때가 되면, 지금은 아직 위험 천만이야."하고 나는 말했다.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자리를 거실 쪽으로 옮겨 커피를 마셨다.
여동생은 이번엔 윌리 넬슨의 레코드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훌리오 이글레시어스보다는 조금 괜찮았다.
"저도 사실은 형님처럼 서른 가까이 까지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여동생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와타나베 노보루는 나에게 털어놓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자 왠지 결혼하고 싶어졌습니다."
"괜찮은 애지. 다소 고집이 있고 변비 증세가 있지만, 선택은 잘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결혼한다는 거 어쩐지 두려워지는군요."
"좋은 면만 보고 좋은 일만 생각하면 뭐 두려울 게 있겠나.
나쁜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면 그만이지."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나서 나는 여동생 곁으로 다가가 잠시 근처를 산책하고 오겠다고 했다.
"10시 지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테니 둘이서 실컷 즐기라구, 시트도 갈았겠다."
"이상한 쪽에만 정신을 파는군요."
여동생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내가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와타나베 노보루 곁에 가서,
이웃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겠는데 좀 늦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무척 즐거웠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자주 놀러 오십시오."하고 와타나베 노보루가 말했다.
"고맙네."하고 나는 상상력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말했다.
"차는 가지고 가지 말아요. 오늘은 많이 마셨으니까."
나가는데 여동생이 말했다.
"걸어갈게."하고 나는 말했다.
근처에 있는 바에 들어간 것은 8시 조금 전이었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서 IW 하퍼의 온 더 록을 마셨다.
카운터 속의 텔레비전에서는 거인과 야쿠르트의 야구 중계를 방영하고 있었다.
소리는 나지 않고 그 대신 신디 로퍼의 레코드가 걸려 있었다.
피처는 니시모토하고 오바나인데, 득점은 3대2로 야쿠르트가 이기고 있었다.
무음의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걸,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 야구 중계를 바라보면서 온 더 록을 석 잔 마셨다.
9시가 되자 3대3의 동점인 채 7회 후반에서 야구 중계가 끝났다.
그러자 텔레비전도 꺼졌다.
내 자리 하나 건너 옆자리에 가끔씩 여기서 만나는
스무 살 안팎의 여자아이가 앉아서 나와 마찬가지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중계가 끝나자 나는 그녀와 야구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자기는 거인의 팬인데, 어느 팀을 좋아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 팀이면 어떠냐고 나는 대답했다.
단지 시합 자체를 보는 것이 좋다고.
"그런 게 무슨 재미일까?
그런 식으로 야구를 보면 열중할 수 없잖아요?"하고 그녀가 물었다.
"열중 안해도 좋아. 어차피 남들이 하고 있는 일인걸."
10시가 되자 나와 그녀는 그 바를 나와서, 좀 더 편안한 의자가 있는 곳으로 옮겨갔다.
나는 거기서 또 위스키를 마시고, 그녀는 글라스 호퍼를 마셨다.
그녀는 상당히 취해 있었고, 나도 아닌게 아니라 취해 있었다.
11시가 되자 나는 그 여자를 바래다 줄 겸
그녀의 아파트로 가서 당연한 일처럼 섹스를 했다.
방석과 차를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을 꺼요."하고 그녀가 말하기에 나는 불을 껐다.
창으로는 커다란 니콘 광고탑이 보였고,
옆집으로부터는 텔레비전의 프로 야구 중계 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어두운데다 상당히 취해 있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것은 섹스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페니스를 움직여 정액을 방출하는 것뿐이다.
적당히 간략화한 한바탕의 행위가 끝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내 잠이 들어서,
나는 제대로 정액도 닦지 못한 채 옷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
어둠 속에서 여자의 옷과 뒤섞여 있는
나의 폴로셔츠와 바지와 팬티를 찾아내는 것은 적잖은 고생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취기가 한밤중의 화물열차처럼 급격하게 나의 몸 속을 빠져나갔다.
정말이지 지독한 기분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사나이처럼 몸이 삐걱거렸다.
술을 깨려고 자동 판매기의 쥬스를 한 병 마시자마자 나는 위 속의 것을 전부 토해냈다.
스테이크랑 스모크 서본이랑 레터스랑 토마토의 잔해들이었다.
아이구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했다.
술을 마시고 토하다니, 도대체 몇 년 만일까?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더욱 나빠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서 나는 불쑥 와타나베 노보루와 그가 사온 땜질 인두를 생각했다.
"땜질 인두 하나쯤 있으면 편리하니까요."하고 와타나베 노보루는 말했다.
건전한 생각이지, 하고 나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자네 덕분에 드디어 우리 집에도 땜질 인두가 생겼군.
하지만 그 땜질 인두 탓으로 거기는 나의 집이 아닌 양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은 내 성격이 편협한 탓이겠지.
내가 아파트로 돌아온 것은 한밤중이 지나서였다.
물론 현관 옆에 오토바이의 모습을 없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로 4층까지 올라가 자물쇠를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개수대 위에 조그만 형광등이 하나 켜져 있을 뿐 나머지는 캄캄했다.
여동생은 지쳐서 먼저 자버린 모양이다. 그 기분 알 만하다.
나는 유리잔에다 오렌지 쥬스를 따라 단숨에 들이키고,
그리고 나서 샤워실로 들어가 비누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땀을 씻어내고 정성스레 이를 닦았다.
샤워실에서 나와 세면장의 거울을 보자
스스로도 오싹하리만큼 지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끔씩 마지막 전차의 시트에서 볼 수 있는 추한 주정뱅이 중년 남자의 얼굴이었다.
피부는 거치고 눈은 움푹 꺼지고 머리에는 윤기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세면장의 전깃불을 끄고
목욕 타월을 한 장 허리에 두른 모양새로 주방으로 돌아와 수돗물을 마셨다.
내일이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안되면 또 다음날 생각하자.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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