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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어페어9 - 무라카미 하루키.

Joyfule 2011. 1. 15. 08:31
 패밀리 어페어9 - 무라카미 하루키. 

"많이 늦었네요."하고 어둑한 속에서 여동생이 말을 걸었다. 
그녀는 거실 소파에 앉아 혼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술 마시고 있었어?"
"오빤 너무 과해요."
"알고 있어."
나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어 손에 들고, 여동생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우리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이따금 맥주만 들이키고 있었다. 
바람이 베란다 화분의 잎을 흔들고, 그 저편에는 멍청하게 반달이 보였다.
"말해 두지만 하지 않았어요."하고 여동생이 말했다.
"뭘?"
"뭐든지, 마음에 걸려서 할 수 없었다구요."
"헤에."
나는 반달이 떠 있는 밤에는 어쩐지 말이 없어진다.
"뭐가 걸렸느냐고 묻지 않아요?"하고 여동생이 말했다.
"뭐가 걸렸는데?"하고 나는 물었다.
"이 방이. 이 방이 마음에 걸려서 여기서는 할 수 없어요, 나는."
"흐응."
"아니, 어쩐 일이에요? 몸이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피곤해, 나라고 피곤하지 않을까?"
여동생은 잠자코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남은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등받이에다 목을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오빠, 우리 때문에 피곤해요?"하고 여동생이 물었다.
"아니야."하고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말하기에 지쳤다, 그거에요?"하고 여동생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동생 쪽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저어, 오늘 내가 오빠한테 좀 심한 말을 했잖아요? 
이를테면 오빠 자신에 대해서라든가, 오빠와의 생활에 대해서라든가..."
"아니야."
"정말?"
"너는 요즘 줄곧 옳은 말만 했지. 그러니 신경 쓸 거 없다구.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지?"
"그가 돌아가고 나서 줄고 여기 앉아서 오빠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좀 지나친 말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나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 두 개를 꺼내고, 오디오의 스위치를 넣어 
작은 소리로 리치 바이라크 트리오의 레코드를 걸었다. 
한밤중에 취해서 돌아왔을 때 늘 듣는 레코드였다.
"좀 혼란스러워. 생활의 변화 따위에 대해서 말이야. 
기압의 변화와 마찬가지야. 
나도 내 나름대로 얼마만큼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거야."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빠한테 대들어서요?"
"다들 누군가에게 대들고 있어. 
하지만 만약 네가 그 중에서 나를 뽑아 대들고 있다면, 
그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신경 쓸 거 없다구."
"때때로 어쩐지 굉장히 무서워요. 앞날의 일들이."
"좋은 면만 보고 좋은 일만을 생각하도록 해. 그럼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하면 돼."
하고 나는, 와타나베 노보루에게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될지 모르겠네요." 
"잘 안되면 그때 가서 또 생각하면 돼."
여동생은 깔깔 웃었다.
"오빠는 옛날이나 다름없이 묘한 사람이야."하고 동생이 말했다.
"이봐,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하고 나는 맥주의 풀링을 따면서 말했다.
"좋아요."
"그말고 앞에 몇 남자하고 잤지?"
동생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손가락을 두 개 내보이며 말했다.
"두 사람."
"한 사람은 동갑이었고, 또 한 사람은 연상의 남자였지?"
"그걸 어떻게 알죠?"
"상식이지."
하고 말하며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나라고 무작정 놀고 있는 건 아니라구, 그 정도는 알아.
"표준이라는 건가요?"
"건전하다, 그거지."
"오빠는 몇 여자하고 잤어요?"
"스물여섯 명. 요전에 세어봤지. 생각나는 것만 스물 여섯명. 
생각나지 않는 것이 열 명쯤 있을지 몰라. 일기에 적어 두는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여자하고 자요?"
"몰라, 어디선가 끝을 맺어야 하겠는데, 나 스스로도 계기를 잡지 못하는 거야."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는 그 다음에도 말없이 나름대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멀리서 오토바이의 배기음이 들렸는데, 그것이 와타나베 노보루일 까닭은 없었다. 
이미 새벽 1시였다.
"있잖아요,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하고 여동생이 물었다.
"와타나베 노보루?"
"그래요."
"나쁜 사람은 아니야. 
내 구미에 맞지 않고 복장에 대한 취향도 약간 동떨어진 건 있지만"
하고 조금 생각하고 나서 나는 솔직하게 덧붙였다. 
"하기야 한 집안에 한 사람쯤 그런 사람이 있어도 괜찮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오빠가 좋아요. 
하지만 세상 사람이 다 오빠 같다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 돼버리지 않을까요?"
"그렇겠지."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나머지 맥주를 마시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시트는 새것이라 청결했고 주름 하나 없었다. 
나는 그 위에 몸을 눕히고, 커튼 사이로 달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깊이 생각하기에는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눈을 감자 졸음은 어두운 망처럼 소리 없이 머리 위에서 내려와 나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