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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열광서 수감·낙선까지… 네 남자의 활극, 스스로의 덫에 걸리다

Joyfule 2012. 4. 23. 08:17

폭로·열광서 수감·낙선까지… 네 남자의 활극, 스스로의 덫에 걸리다

■  나꼼수 1년

거침없는 가카 패러디… 내곡동 사저 폭로 등 현실정치 파란 일으켜
비키니 성희롱논란에 김용민 막말파문… 순식간에 내리막길로


시작은 미약했다. "들어봤어?" "언론에서 못 듣던 이야기"라는 입소문과 함께 인기를 얻었다. 언론인지 대안인지 정치세력인지 본질이 뒤섞이며 권력이 됐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의 덫에 걸려 깊은 나락에 빠져들었다. '미친 존재감'을 보여 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지난 1년을 돌아본다.

네 남자의 조용한 등장

나꼼수는 '국내 유일의 가카 헌정 방송'이라는 부제를 달고 2011년 4월 28일 탄생했다. 시작할 때부터 차기 정권이 들어설 2013년 2월을 종료일로 못 박았다. 나꼼수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막말논란'으로 낙선한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극동방송PD 재직 시절 조용기 목사에게 쓴 소리를 하다가 사표를 낸 뒤부터 꿈꿔왔던 대안미디어다. '명박허전', '나는 각하다' 등의 제목이 거론됐지만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낸 '나는 꼼수다'가 최종 선정됐다



지금은 '꼼수'가 국민적 유행어가 됐고, 회당 수백만 건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할 정도로 나꼼수를 모르면 간첩으로 취급 받지만, 그 시작은 미약했다. 김어준씨, 정봉주 전 국회의원, 김용민씨, 주진우 시사인 기자(6월 30일 합류) 등 네 남자가 만드는 정치 풍자 프로그램에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거침없는 욕설과 일방적 주장을 참을 수 있는 이들이나 재미로 들어주는 정도였다.

인기 방송에서 정치세력으로

나꼼수가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방송 개시 두 달 뒤 청계재단의 자금 흐름을 다룬 8회 '청계재단의 진실' 편이다. 지난해 7월 나꼼수는 아이튠즈 팟캐스트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횟수로 정치분야 부동의 1위였던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눌렀다.

이후 굵직한 이슈 폭로가 몇 차례 이어졌다. 10월 9일 22회 '도둑적으로 완벽하신 가카'편에서 '이명박 대통령 아들 시형씨가 내곡동 능안마을에 50억이 넘는 부지를 매입했다'는 사실을 최초 공개해 내곡동 사저 논란에 불을 지폈다. 나경원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1억원 피부과 치료 논란과 사학비리 연루 의혹(10월 19일)은 나 후보에게 직간접적으로 상처를 입히며 서울시장 선거판을 흔들었다. 11월 12일 28회 '선관위 그리고 안철수'편에서 제기한 서울시장 선거 당일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사건도 관련자 구속과 최구식 의원의 새누리당 탈당 등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1월 18일에는 언론노조가 선정한 21회 민주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2월 28일 나경원 전 의원 남편인 김재호 판사의 기소 청탁 의혹도 나꼼수를 통해 불거졌다.

이들의 인기는 오프라인으로 옮겨 세를 과시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10월 29~30일 '버라이어티 가카 헌정콘서트'란 이름으로 열린 첫 콘서트를 비롯 10개 도시 순회공연은 매회 전석 매진의 신기록을 세웠고,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나꼼수 FTA 특별공연'에는 5만명(경찰추산 1만6,000명)이 몰렸다. 이러한 지지와 인기가 김용민씨가 4·11 총선에 출마하는 기반이 됐다.

말로 흥하고 말로 망하다

하지만 결국 인기의 견인차였던 입담이 독이 됐다. 나꼼수는 비키니 시위 사건으로 첫 위기를 맞았다. 올해 1월 20일 한 여성이 가슴을 드러낸 비키니 인증샷을 올려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한 것을 두고 1월 21일 '봉주 3회' 방송에서 "성욕감퇴제를 먹고 있으니 수영복 사진을 보내 달라"고 말하고, 이후 "가슴 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는 발언 등이 공개되면서 성희롱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나꼼수는 사과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 전인 지난해 11월부터 나꼼수는 다운로드 횟수가 줄어들고, 12월 22일 정봉주 전 의원이 BBK의혹 제기에 대한 징역 1년형 확정 판결을 받아 수감되는 등 미끄러져 내리는 경사를 향하고 있었다.

일부 청취자들에게는 통쾌함을 안겨 준 '아니면 말고'식 무차별 폭로로 나꼼수는 나경원 전 의원에게 형사 고발을 당하는 등 스스로를 사법처리 대상으로 만들었다. 서울 노원갑에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김용민씨는 과거 인터넷방송에서 했던 막말이 4월 3일 공개되면서 직격탄을 받았다. 민주통합당이 19대 총선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것이 나꼼수 지지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막말 파문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두되면서 나꼼수는 미운오리새끼가 됐다.

한국일보|정승임기자|입력2012.04.21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