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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훈련이 안된 사람은 사용하지 않는다.

Joyfule 2020. 1. 17. 11:47



 
    하나님은 훈련이 안된 사람은 사용하지 않는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군 입대를 통보받고 군문에 들어가면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장교로 임관하면 사병과 비교할 수 없는 훈련이 기다리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이유는 훈련이 되지 않은 병사들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오합지졸이다. 그래서 아무리 수효가 많아도 잘 훈련된 병사들과 전투가 붙으면 백전백패이다. 이는 하나님의 종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종들은 입에서 단내가 나는 훈련을 통과했음을 물론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종이 된다고 하면 신학교에 들어가는 걸로 생각한다. 물론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지식을 쌓은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종은 신학지식을 쌓아서 현학적인 설교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훈련방식이 아니다. 목회자를 양산하는 인본적인 교단의 방식일 뿐이다. 성경의 위인들을 보라.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들처럼 많은 학문을 쌓고 박사학위를 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일자무식인 이들이 허다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탁월한 영적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방식을 곱씹어보고 싶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시키신 훈련방식은, 고향과 아버지 집을 떠나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지시하는 땅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죽어서 이 땅을 떠나갔다. 그렇지만 탁월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족시켰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안전하고 안락한 고향과 아버지 집을 떠나게 해서, 각종 삶의 위험에 맞닥뜨리게 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훈련시켰다.

 

야곱의 훈련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야곱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자상하고 따뜻했던 부모의 품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때는 처자를 거느린 가장이 되어서였다. 그 동안 그는 외삼촌의 노동착취에도 제대로 변병하지 못하고 굴욕적으로 살면서 참고 견딤을 배워야 했다. 약삭빠르고 잔머리를 굴리는 야곱이 우직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참고 견딘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통해서였다.

 

야곱의 아들 요셉의 인생은 더 드라마틱하다. 그가 17세에 아버지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신분에서 일약 노예로 전락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또한 노예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사형수로 10여년이 넘은 끔찍한 세월을 지하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물론 풀려나올 기약이 전혀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 오랜 시간동안 그가 감옥에서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날마다 울며불며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을까? 그 고난과 역경의 훈련을 통과해서 감옥 문을 나오자마자, 당시 세계 최강대국 애굽의 국무총리라는 드높은 신분이 되어서였다. 그의 후손 모세는 요셉의 훈련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가 애굽의 왕자의 신분에서 애굽의 병사를 죽이고 광야로 도망친 나이가 40세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시내산 떨기나무를 통해 부르신 나이가 80세였으니, 40년 동안 광야에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가 겪었던 신산한 인생을 당신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죄다 훈련에 통과한 것은 아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인 남자만 60만명(200만명)으로 추산되는 거대한 무리였다. 그들은 일주일이면 넉넉히 건너갈 수 있는 광야를 무려 40년을 떠돌아다니며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 지옥의 불길에 던져졌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훈련시키기에 혹독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그 목적은 단하나,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관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훈련하기보다,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것을 꿈꾸고 교회에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 믿음이 좋다는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종이 되고자 신학교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아 교회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성경지식을 쌓고 교회의 신앙방식에 익숙한지는 몰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인생의 전부로 아는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훈련시킬 때 온갖 고난과 역경을 통해 정금 같은 신앙의 소유자로 만드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종을 원하신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의 모습이다. 제자가 되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종으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당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원하신다면,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식이나 경험, 재산, 가정, 친구, 부모, 직장, 사업, 취미를 포함한 모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드리는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자신의 전부를 기꺼이 하나님 앞에 불사르는 사람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거북이에게서 등껍질을 떼어내는 것과 같다. 거북이 등껍질은 피부의 일부이므로 등껍질을 떼어내면 죽어버린다. 당신이 죽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다. 아직도 당신 안에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여전히 자신이 욕망이 드러나고 있다면, 하나님이 종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달게 마시고 참고 견디며 묵묵히 훈련의 길을 걸어가셔야 한다. 그래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난은 축복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