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의 태도
하나님을 감동시킨다는 의미는 기도응답이 내려온다는 뜻이고, 지난한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모든 기도자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순간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기쁨을 맛보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자리에 한산한 까닭이다. 아시다시피, 필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사역자이다. 그래서 어떤 내용의 기도를, 어떤 태도로 기도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모든 해답은 성경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서 비틀어서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하는 거야 자유지만, 응답을 내려주시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지 않은 기도는 무용지물이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무당들의 기복신앙을 들여와서 희생의 강도를 더하는 기도방식을 따라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희생의 강도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을 날카롭게 살펴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목적과 동기, 속내가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기도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1.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천국의 자격을 말하시는 산상수훈의 첫 번째 복은 가난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몫이다. 가난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애걸복걸하며 매달리는 기도뿐이다. 성경에서 자주 반복하는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이 많으시고 긍휼이 여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용서하기를 즐기시는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희생적인 기도행위를 들이밀며 하나님의 응답을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금식의 일수를 늘리고, 새벽마다 돈 봉투를 가지고 기도하러 교회에 나오고 있다. 그게 가난한 마음이고 애통하는 마음인가?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10~14)
위의 두 사람의 기도를 비교해보자. 바리새인은 자기 의에 가득차서 교만한 태도로 기도하였지만, 세리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애통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불쌍히 여겨달라면서 기도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하나님께 아무 것도 얻기를 기대하지 마시라.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기도도, 통곡하고 애통해하면서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면 놓아드릴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고 애통해하면서, 땀방울에 모세혈관의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절박하게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그런 기도의 태도가 없이 기도자리에 나왔다면 시간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2.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기도란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먼지만도 못하고 벌레만도 못한 피조물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마음이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으며, 어둠의 영인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아 고통스럽게 살다가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은혜인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끔찍한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천국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자녀로 삼아주시고 불러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지 않는 사람은 극악무도한 죄인일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 감동하며 감격해마지 않는가? 아니라면 당신은 후안무치와 배은망덕하기 그지없는 싸가지 없는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인간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얼마나 영광된 일이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에 보면 길동이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한 것에 애통해한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만왕의 왕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지 않는다면 기도할 자격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를 잊고 교회마당을 밟다가, 자신의 탐욕을 채우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당신이 지금까지 기도자리에서 열심히 기도한다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시라. 필시 위의 두 가지의 태도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지도 않았으며, 나의 죄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죽음의 자리에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은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악한 죄악을 통회하며 자복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기도는 허공에 흩어지는 의미 없는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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