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오면 예배라는 말처럼 자주 듣는 말도 없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행위를 두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주일성수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신실한 교인들이라면 교회에서 시행하는 모든 예배의식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며, 이 땅에서도 평안하고 형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공적인 예배의식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누리고 계신가? 열심히 예배에 참석해도 삶이 고단하고 팍팍하다면, 그동안 당신이 드린 예배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성경에서 사용하는 예배라는 헬라어는,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와 ‘라트레이아’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예배하다’라는 뜻이다. ‘예배하다’라는 단어는 ‘절하다’ ‘존경을 나타내다’라는 의미이다. 물론 예배의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또 다른 예배를 번역한 ‘라트레이아’는 ‘제사’라는 단어를 번역한 말이다. 구악시대에는 소나 양을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면, 제물을 죽여서 불에 태어 번제로 드리는 것인 구약의 율법에서 정한 제사법이었다. 이 율법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조목조목 말씀하신 내용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법이 필요 없어졌다. 그래서 사도들과 제자들은 새로운 예배의식을 제정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그게 오랜 세월 관행으로 내려와서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드리고 있는 예배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행하는 예배의식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행으로 만든 의식(service)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배의식이 진정한 예배가 되려면, 예배자의 마음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하는 마음이 실려져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동안 교회에서 드려왔던 예배의식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게 아니고 사람들이 만든 관행이라면, 그 예배는 예배자의 마음이나 태도에 따라 하나님이 받아들이실 수도 있고 관심조차 두지 않으실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수많은 교회에서는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를 끝나는 자신들의 예배의식을 하나님이 죄다 받아들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성경으로 기록하여서, 이런 형식의 예배의식을 드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배자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태도를 지니고 예배의식에 참석해야, 비로소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주시는 예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말하자면, 예배행위는 순서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배자의 마음을 받아주신다면,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식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다양한 예배행위를 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사람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의식이 아니라, 영적 예배자들의 마음과 태도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꼭 교회에서 시행하는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한다고, 예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장 중요한 예배는 과연 어떤 것인가? 그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이다. 날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고, 그분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감사와 회개를 끊이지 않는다면 최상의 예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와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그분을 찾고 경배하며 찬양한다면 이보다 더 온전한 예배행위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영혼을 다해 기도드리는 예배는 별 관심이 없이,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예배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바꾸려고 무던히 애쓰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인간들이 자신의 거룩한 성품을 닮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을 생각이 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유하게 사는 것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거나 직분이 무거운 사람들도, 예전의 부족한 성품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다. 부족한 성품을 거룩한 성품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이 바로 예배이다. 이를 하나님이 무척이나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교회에서 와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로는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일상의 삶에서 사랑을 실천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나 사랑의 실천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된다.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매일 기도할 때마다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아주 쪼금 나아졌다. ㅎㅎ
마지막으로, 최고의 예배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영혼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시며 무척이나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옥으로 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사역이나 전도행위만큼 사랑을 전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성령을 앞세워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면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전도하기 전에 능력 있는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교회에서 시행하는 형식적인 예배의식만을 예배라고 여기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면, 이보다 크고 거룩한 예배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는 기도이고, 부족한 성품을 거룩한 성품으로 바꾸며, 사랑을 실천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는 모두 예배이며, 그런 삶을 살다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 최고의 예배자인 셈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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