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처럼 바쁘게 사는 민족도 드물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일터에 나가 밤늦게 집에 돌아와 파김치가 되어 쓰러져 자기 바쁘다. 바쁘게 살지 않는다면 게으른 사람처럼 여겨져 불안해한다. 그래서 직업이 있는 사람도 퇴근 후에는 투잡을 뛰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바쁜 날이 바로 주일이다. 교회직분이 무거운 사람들은 새벽처럼 교회에 가서 두 번의 예배와 각종 교회봉사를 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렇게 해야 온전한 믿음을 유지하는 거란다? 그래서 월요일이 되면 무척 피곤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허다하다.
이처럼 우리네 국민들은 열심히 사는 것이 곧 바쁘게 사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오랜 유교문화에 뿌리를 박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이 끝나고 피폐해진 산업과 폐허더미에서 다시 일어나 가족을 굶기지 않고 자녀를 가르치려면, 뼈를 깎는 혹독한 노동력만이 우리네 부모가 가진 전 재산이었던 가슴 아픈 유산의 산물이기도하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난하게 살 거라는 두려움과 더불어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며, 바쁘게 일하는 세상문화가 우리네 교회에 들어와 신앙의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세상 풍조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바쁘게 일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수입으로는 겨우 먹고 살기에 자녀의 해외 유학은 물론 노후대책은 꿈도 못 꾼다고 볼멘소리로 말한다. 지금처럼 바쁘게 살아도 먹고 살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 많은 수입을 주는 직장이 있으면 일 하는 시간이 더 많더라도, 기꺼이 이직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을 것이다. 즉 바쁘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우리네 부모들은 우리보다 더 열심히, 더 바쁘게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네 부모들이 행복하게 살았는가? 물론 우리네 부모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바쁘게 살지 않았다면 가족이 굶는 일이 허다했을 터이며, 자녀들을 대학문턱에나 보냈을 줄 아냐고? 물론 그랬을 지도 모른다. 희생적인 부모덕분에 우리가 굶지 않고 살았으며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도 부모가 되어 자녀교육에 전 재산을 털어 넣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가?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자녀들이 잘 되는 게 자신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방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 그런 삶의 방식은 당신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더라도, 우리네 부모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고백하지 못한 것처럼, 당신도 행복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자녀의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은퇴 후에 안락한 노후대책을 세우기 위해, 럭셔리한 아파트에서 살기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바쁘게 사는 것은 세상의 지혜와 지식을 따라가는 삶의 방식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인생의 모든 것을 맡기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믿음이 없기에 오직 자신의 노동력과 돈 버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무던히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우리네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불행하게 사는 전철을 밟는 것이다. 우리네 부모들이 그렇게 바쁘게 일을 해서, 자녀들을 굶지 않고 학교에 보냈다고 항변하는 것은 맞는 말처럼 들려도 이는 잘못된 말이다. 부모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자녀를 기르는 하나님의 일을 가로챘다고 말하는 가증한 모습이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다. 당신은 단지 관리자일 뿐이다. 물론 성실하게 양육하고 학교 교육을 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당신이 성실하게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돈을 벌 능력을 주셔서, 당신과 당신 가족의 생계를 보살펴 주실 것이다. 일을 하는 것은 이 땅에 태어난 인간들의 의무이지, 뻐기면서 내세울만한 자랑거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노동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도록 맞추어 놓으셨다. 그러나 동식물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해놓았다. 그러므로 하늘의 새와 들의 백합은 일을 하지 않아도 번성하지만, 인간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바쁘게 살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땀을 흘리는 노동을 명령하기는 했어도 몸을 혹사하며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만약 그랬다면 안식일을 제정하셨을 리가 없다. 하루 동안 일을 절대로 하지 말고 쉬라는 게 십계명에 들어 있는 게 희한한 일이지 않은가? 바쁘게 일한다는 것은 성실하게 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게으르지 않게 일하는 것이지, 몸을 혹사하면서 하루에 열 시간을 넘게 일하는 모습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일해야 생활을 유지 할 수 있다고 항변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타고 앉아 변명하는 말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종이 맞는다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계를 책임져주시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게으르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지만, 몸을 혹사하며 일하는 것은 주인의 명령을 배반하는 믿음이 없는 행위이다.
당신이 원하는 생활비는, 하나님이 말하시는 일용할 양식인 최소한의 생계비가 아니라 당신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액수이다. 하나님은 탐욕이 바로 우상숭배라고 하셨다. 우상을 숭배하는 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겠는가? 그래서 당신이 이 땅에서 바쁘고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주일이면 각종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교회봉사를 하느라고 정신없이 바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주일성수라는 말은 안식일 성수에서 따온 말이지만 성경에 없는 말이다. 주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려 재림하시는 날이라는 뜻이다. 성수(聖守)는 거룩하게 지킨다는 한자어에서 따왔다면, 주일을 최소한의 예배의식이나 친교를 제외하고는 푹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주일날 몸을 더 혹사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겠는가? 그것은 당신네 교회의 담임목사가 교회의 외형을 불리고 거대한 조직을 유지하려는 탐욕을 채우는 데 일조하는 행위일 뿐이다. 하나님은 주일에 파김치처럼 바쁘게 일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게 희생적인 신앙행위라 할지라도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당신이 많은 돈을 벌고 여러 신앙행위를 하느라고 바쁘기 때문에, 고요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을 만날 시간도 없고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만족을 채우고 종교행위로 당신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일 뿐이다. 최소한의 생계비에 만족하지 못하는 당신은 탐욕의 노예일 뿐이며,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드러내고 싶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가증한 종교인일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의 태도를 확 바꾸지 않는다면, 천국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탐욕을 채우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허비하고 몸을 혹사시킨 악한 종이 치러야하는 대가는 지옥의 불에 던져지는 것뿐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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