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승만 정권과 기독교 여성
이승만은 물론 35년간의 긴 망명생활 동안 도중에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항일의 자세를 견지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35년간의 명망생활에서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특징은 한미족의 지도자로서 앞으로 문제를 야기시킬 소지를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승만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작당을 일삼아 자기의 조그마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정력을 소비하는 문제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자기가 한인 운동단체의 장이 안되면 못참는 인물이었으며 또 누구의 충고나 여론 같은 것에 상관없이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는 지나치게 독선적 인물로 알려졌으며 또한 그때부터 이미 반공산주의자로서 두드러졌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자기와 적대관계에 있는 한인을 용공분자로 몰아붙이는 사람으로 그때부터 알려져 있었다.3)
이러한 이승만이 미국의 좌익세력 견제를 위해서 지목되었고 우익 한민당 세력과 손을 잡았다. 그런데 이 한민당 세력도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이 한민당 세력에 대해서 그 당시 하지 장군의 국무성 정치고문인 메릴 베닝호프(H.Merrell Benninghoff)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위 민주적 혹은 보수적인 집단이 있다... 그 구성원 중에는 미국이나 한국의 미션계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전문적이고 식견있는 지도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고 4)
또한 이 한민당 세력에는 친일에 앞장선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 중장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즉 이승만은 "한국에 돌아온 후 얼마 안있어 일부 재산많은 부유층의 영향을 받는 몸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일제 밑에서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5)라고 증언하였다. 즉 이승만은 이들 보수적인 친일파들과 결합하였고 한민당은 애국자로서의 정통성을 얻기 위해서 그를 필요로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상당수의 기독교 지도자, 성직자들이 정계에 진출하였다.
예를들어 이윤영,정일형,함태영 등 거물들이 강단을 떠나 정계에 발을 들어놓았다.6)
오로지 교육사업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다는 김활란씨도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입후보했다. 그 당시의 사정은 김활란 씨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입후보자 등록 마감일을 며칠 앞두고 여성단체인 대한부인회의 대표들이 나를 찾아왔다. 입후보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열은 대단했다.. 그러나 나와 이념을 정치와는 다른 각도에서 뚜렷했고 정치적인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나의 일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굽히지 않았다... '이번 기회야말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겨루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이 기회를 놓치고 나면 여성들의 권리를 찾을 날은 좀더 뒤로 미루어 지고 말 겁니다'라고 나혼자 편할 것을 바라고 여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이 기회에 여성계발과 함께 권리를 확보할 필요를 느꼈다.."7)
또한 임영신도 여자 국민당 소속으로 3대 부통령선거(1952.8.5)와 5대(1960.3.15)의 직접선거에 두번 출마하였다. 또한 임영신,김활란,박현숙 등은 모두 정부수립 초기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초대 상공부장관,3대 공보부처장,4대 무임소장관에 임명되었다.8)
주로 믹구의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파받았고 미션계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복음 자체와 복음의 전달자들과 그들의 문화를 분리시켜서 생각하지 못했던 미성숙한 상황 속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강력한 반공주의자 기독교인인 이승만,또 그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한민당을 너무나 쉽게 기독교와 일치시켰고,이승만 정권을 기독교 정권인 것처럼 착각하였다. 즉 기독교인들은 미국과 미국이 지원한 정권이 바로 기독교적인 국가요 정권이라고 생각하였고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이승만 정권과 공동운명을 가진 것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가 된 것은 이승만을 둘러싼 세력 안에는 사실상 민족반역자,친일분자 등이 제거되지 않은 채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날 것을 가르치는 기독교를 신앙한다고 표방함녀서도 이들 기독교인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아무런 반성과 회개없이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하였다. 그들의 친일행각으로 많은 민중을 고난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죄를 묻지 않는,그러면서도 기독교를 믿는다고 자처하는 이승만 정권하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어 일치 단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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