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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기독교 여성 - 3.교회의 분열과 여성 4.

Joyfule 2007. 3. 26. 01:06

3.교회의 분열과 여성

2) 교회여성들의 조직 재정비

사회와 교회가 분열되는 아픔과 혼란 속에서 교회여성들은 개교회나 전국연합회,기타 기독교 단체들의 활동이 부진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1950년대의 교회여성들은 지회,지회연합회를 설치,재정비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전국연합회의 조직을 재정비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이 재정비과정에 잇어서 장로교의 경우는 초대총무 김성무 권사와 신애균 회장이 힘을 써서 지방연합회를 일으켜서 1946년 6월에 제14회 여전도회 대회를 모이게 하였다. 그 이후 제2대 총무인 이영숙 씨(1950년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13지방 연합회이던 것을 26연합회로 크게 증가시켰다.40)

 

또한 1953년 6월 10일 장로교가 분열되자 여전도회도 분열되어,김재준 목사를 지지하는 6연합회 13인이 모여 강정애 씨를 회장으로 선출하여 출발한 기장 여신도회는 그 후 임춘자씨가 순회총무로 채용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그 결과 그 다음해에는 지방연합회는 9연합회,지회는 382회가 되었다.41)

 

이렇게 출범한 기장 여신도회는 1950년대에 교회 내에서의 여성 지위 향상에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예를 들면 교파 신학교인 한국신학대학 이사회에 여전도회측 이사로 한 명을 파송케 하였으며 여장로제를 통과시켜(51회 총회)1957년부터는 여목사제를 청원하였다. 또한 여교역자의 말로를 위한 집으로 베다니집을 건축하였고 1960년대 초에는 평신도 교육을 실시하는 베다니 학원을 세웠다.42)

 

감리교 여선교회의 경우에도 해방 후 10여년 동안은 거의 활동이 침체되어 있었다. 1951년에 적은 수의 임원과 회원이 수정동 교회에 모여 여선교회 재건에 힘썼고 1952년에는 백은석 전도사를 전남 여수로 파송,제주도로 이배세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1955년에는 이배세 선교사의 보고에 따라 제주도 본토민 극빈자들을 위하여 헌금과 의복을 보냈다고 한다.43)

 

그리하여 1963년도에 이르러서야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고 전도,교육,청소년지도,사회사업,농촌,보건을 다루는 부서를 두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35지방회로 되었고 44) 그러한 가운데서도 감리교는 1955년에 전밀라,명화용 두 사람이 여목사가 되는 기쁨을 갖게 되었다. 45)

 

한편 대한 YWCA 연합회나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연합회 같은 기독교 여성단체도 새롭게 조직을 정비하였다. 특히 YWCA 연합회나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연합회 같은 기독교 여성단체도 새롭게 조직을 정비하였다. 특히 YWCA는 해방후 총무였던 최예순,고문총무 박에스터,그리고 교육계를 비롯한 각계 각층의 지도자를 총망라한 지식 여성들로 이사진이 구성되어 YWCA의 이념을 올바로 구현하려 했고 또 한편으로 간사 훈련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YWCA 가 전문적 간사 훈련에 착안하여 인간 투자에 중점을 둔 점은 조직활동체로서의 YWCA의 기초롤 닦아서 이제까지의 개인집 살림같은 주먹구구식의 운영에서 벗어나 포괄적인 면에서 사업을 다루게 해주었다.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