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늙으면 서러운가?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13. 10:40





늙으면 서러운가?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기억의 한 구석에 남아있는 일본 소설의 한 장면이다. 정년 퇴직을 하고 서민 아파트에 혼자 사는 남자 노인이 걱정을 하고 있다.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혼자서 죽으면 동남아시아에서 일을 하는 아들이 올 때까지 시신이 부패해서 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장에 가서 대형 비닐봉투를 사고 전자 대리점에 집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 냉장고를 주문했다. 그 노인은 자기가 죽으려고 하는 마지막 순간 사력을 다해 비닐봉투를 뒤집어 쓰고 대형냉장고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의 한 장면이었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은 일본 노인의 정신적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일본 노인의 자살 배경에는 추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가 들어있다는 학회의 보고가 있었다. 반면에 한국 노인의 자살 이면에는 서러워서 죽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어젯밤 유튜브에서 우연히 내가 어린 시절 유명한 가수였던 명국환씨 노년의 삶이 소개되는 걸 봤다. 구십대 노인이 반 지하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주춤거리는 걸음으로 혼자서 밥을 지어 먹고 사는 모습이다. 냉장고 안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반찬들이 곰팡이가 피어있고 온 방이 짐승 우리같이 더럽다. 덮고 있는 이불은 언제 세탁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때가 끼어 변색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방의 한쪽에는 젊은 날 입었던 무대의상들이 잘 정리되어 걸려 있었다. 노 가수는 매일 오전이 되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부천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 걸리는 동대문의 한 싸구려 중국음식점으로 간다. 짜장면 한 그릇에 사천원이라고 하는 가격표가 적혀 있었다. 허름한 가게로 들어오는 나이먹은 사람들 중에 왕년의 스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신이나고 표정이 환해졌다. 거기서 곱빼기 짜장면을 사 먹고 다시 두 시간 버스를 타고 자신의 반지하방으로 돌아가는 게 노 가수의 일과였다. 


그는 황혼의 삶이 서럽지 않을까?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오는 노인들 중에는 상속세로 국가에 돈을 내지 않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에게 미리미리 재산을 넘기는 사람이 많았다. 변칙적인 증여를 하기도 하고 또 외국에서 보험을 들어 수익자를 자식으로 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자식들이 나중에 정말 고마워 할까? 그렇게 재산을 빼돌리듯 다 자식에게 주고서 노인이 되어 자식이 무심하다고 서러워 눈물흘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재산은 자신이 땀 흘려 일구어야 가치가 있다. 물려받은 재산의 가치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보복이라도 하듯 노인이 된 남편을 미워하는 아내들도 많이 봤다. 자신의 불행이 모두 남편 탓이라는 듯 늙은 남편을 증오하기도 했다. 늙으면 서러워지기 마련이다. 우연히 교대역 계단에서 본 풍경이다. 한 노파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자가 뭐라고 얼핏 한마디 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구걸을 하던 노파의 얼굴에 파랗게 독이 오르면서 사람들에게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글세 저년이 나보고 젊을 때 뭐를 했길래 나보고 늙어서 거지 팔자냐고 그래요. 야 이년아 너도 늙어서 나같이 되라.”

노파의 얼굴에는 세상에 대한 서러움이 가득찬 것 같았다.

젊은이들에게 노인 세대가 증오의 대상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한 유명 대학에서 부모가 죽어야 할 적정 연령이 몇세냐를 조사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학생들이 제시한 연령이 육십 삼세라고 했다. 지금의 내 입장에서 보면 그 나이는 노인도 아니다. 건강도 있고 정년퇴직을 했더라도 돈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식들은 죽어도 될 나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랬다. 아버지가 육십 삼세에 돌아가셨다. 당시 삼십대였던 나는 아버지가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젊은 시절 나는 행동이 굼 띤 노인을 보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가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었다. 노인이 되어 서럽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중풍으로 한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와서 재활병원에 있는 대학 동창이 카톡을 보내왔다. 몇 발자국을 걷기 위한 희망으로 하루에 네다섯시간씩 재활운동을 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인생에서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과음을 할 때는 몰랐었다고 알려왔다. 나는 매일 파도치는 해변을 걸으면서 한걸음 한걸음에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다. 건강전도사로 유명한 이시형 박사도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구십 노인이 됐다. 그가 유튜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침에 한 시간 씩이라도 공부를 하십시오. 해마세포가 죽지 않게 하세요.”

늙어서 서럽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려서 귀여운 걸로 효도를 이미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 종일 혼자서도 바쁘게 지낼 수 있는 스케쥴을 만들어 놓았다. 매일 성경을 본다. 죽는 날까지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눈이 아프고 침침해도 단 한 두 장이라도 독서를 하고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게 나의 기도행위이기도 하다. 아직도 신문과 잡지에 컬럼을 쓰면 원고료도 나온다. 내가 정말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법정에 가서 변론도 한다. 서러울 틈이 없도록 인생의 녹이 슬지 않도록 바쁘게 살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