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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의 추억

Joyfule 2009. 4. 15. 06:39
히로시마의 추억

 

지난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일본 히로시마를 다녀 왔습니다. 온누리교회가 주최한 ‘러브 소나타’ 전도 집회에 친구 하용조 목사님이 23일 대 수술을 받으시는 관계로 주강사 대타로 다녀 온 셈입니다. 적지 않게 일본에 집회로 다녀왔지만 히로시마는 처음이었습니다. 원폭의 도시로 알려진 곳이어서 은근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인구 130만의 구릉 도시 히로시마는 원폭의 상처와 경험을 가진 도시이기에는 너무 평화롭고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였습니다. 원폭의 청소 때문이었나하는 역설적 감회가 야릇한 감상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감상은 23일 오전 소위 원폭을 기억하기 위한 평화 기념 전시관을 방문하고는 착잡한 혼란감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원폭의 잔해가 남긴 그 처참한 현장이 나의 인간됨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만드는 현장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다시는 이 지구상에 원폭의 참상만은 반복되지 말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누구든지 이 곳을 한번 다녀가면 반핵 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1945년 당시 인구 34만의 군사도시로 육군 보급창과 군용 항구가 있는 곳, 그리고 낮은 구릉대로 둘러쌓여 고공에서 조준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점과 지금까지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지 않은 등의 상황으로 이 도시가 폭격 목표지로 선정된 것이었습니다.

8월 6일 새벽 편대장인 폴 티비츠의 어머니의 이름을 따 에놀라 게이(Enola Gay)로 명명된 B29기가 서 태평양 티니언 섬을 떠나 오전 8시 15분 정각 히로시마 도심지 상공 580m지점에서 ‘리틀 보이’로 불리운 원폭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투하된 것입니다. 즉각적으로 8만명이 죽었고 지금까지 그 후유증으로 15만명 이상이 죽어갔습니다.

 

평화 기념관에 수거되어 비치된 그 날의 잔존 시계들은 모두 8시 15분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운명의 시각이었습니다. 그 어느 날 인류의 마지막 시간도 그렇게 오지 않을까 하는 오싹한 전율과 함께 그 후로 시계를 들여다 볼 때 마다 8시 15분이 유령처럼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이 작은 지구촌과 인류를 위해 내가 남기고 갈 것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기념관을 방문한 후 오후 내내 설교문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처음 설교문에는 이 원폭의 상처가 있던 이 도시에 이제는 ‘사랑의 원자탄’, ‘복음의 원자탄’이 떨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원고가 준비되었는데, ‘원폭이 떨어진다’는 표현만으로도 이 도시인들이 놀라야할 두려움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 평화의 중보자가 되어야 한다고, 벽을 쌓는 자가 아닌 평화의 다리를 놓는 이들이 되자는 결론으로 바꾸었고 우중에도 후생회관 강당을 메운 2천여의 관중들(불신자들이 절반이상)은 진지하게 평화의 주인이신 예수를 영접하겠다고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마 5분의 1~7분의 1정도의 사람들이 가시적으로 예수를 영접하겠다는 반응을 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러브 소나타 측에서도 일본 도시 집회 사상 가장 열린 반응을 보여 주었다고 기뻐했습니다. 나이든 일본 목사님 한분은 오래 제 손을 잡고 ‘아리 가도’를 연발하며 눈물을 떨구셨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마음에 남는 진한 감상은 소위 원폭 기념 평화 전시관 어디에서도 일본인을 피해자로만 그리고 있을 뿐,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국가로서의 반성이 결여된 모습은 끝내 제 마음 한 구석에 일본의 진정한 영적 부흥은 이런 자신들의 죄에 대한 각성을 가져 올 복음의 사역만이 일본의 미래라는 생각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화 기념관 바깥 한 구석에 세워진 한국인 위령탑에서 우리는 원폭 당시 희생된 사람들 중 징용된 한국인들이 무려 10분의 1에 해당한다는 설명을 접하면서 그러면서도 아직 제대로 이들에 대한 보상과 치유는 적절하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야누스적 일본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또한 억누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면서 이 히로시마 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름다운 미야지마 섬 이츠쿠시마 신사에 몰려드는 참배객들을 바라보며 일본의 진정한 미래는 아직도 복음의 다이내믹한 능력을 경험하고 있는 핍박받은 한국 교회와 한국 성도들이 책임질 수밖에 없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잠들지 못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다. 히로시마와 일본의 미래는 오직 예수 사마뿐이야!” 외치다가 새벽 잠이 깨었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어느 날 그 분을 좀 더 깊이 이 도시에 전하기 위해 이 곳을 다시 찾겠다는 기도 제목을 새기며 히로시마의 추억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