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최용우의 햇볕같은 이야기
어두움 속에서도 보여요
딸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갔습니다.
5:10분에 해가 뜬다고 하기에 그걸 보려고
한 밤중인 3:00에 일어나서 천왕봉 정상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마침 가지고 간 후라쉬가 하나밖에 없어서 당연히 딸의 손의 쥐어 졌습니다.
딸은 후라쉬를 비추면서 앞장서 걷습니다.
뒤따라가던 저는 처음에는 딸의 후라쉬 불빛을 의지하려고
딸의 뒤에 바짝 달라붙었습니다.
하지만, 앞을 비추는 그 후라쉬 불빛은 저의 발 밑에까지는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딸의 후라쉬 동냥을 포기하고 어둠 속에서 익숙해지려
눈을 깜빡거렸더니 달빛 아래 희미하게 길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조심만 하면 달빛을 의지해서 충분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라쉬 불빛을 보는 순간 다시 앞은 어두워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후라쉬 불빛을 피하며 어둠 속에서 걸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이 보이더라니까요.
후라쉬 없이는 걸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손에 들려있지 않은 후라쉬는 방해만 되더라니까요.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