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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세의 여성 앵커 쿠릭, 미국의 저녁을 뜨겁게 달군다

Joyfule 2006. 12. 9. 01:40

48세의 여성 앵커 쿠릭, 미국의 저녁을 뜨겁게 달군다


만년 3위 CBS 시청률을 1위로 끌어올려…지난 봄 연봉 1500만달러 받고 NBC서 옮겨와 푸근하고 친근한 인간적인 면이 크게 어필…‘세계를 변화시킨 인사 100인’에 뽑혀

 


요즘 뉴욕에서 가장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뉴요커는 한 여성 앵커다. 케이티 쿠릭(Katie Couric). 48세의 이 여성 앵커가 미국 사상 처음으로 첫 저녁뉴스 여성 단독 앵커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TV 저녁뉴스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3대 공중파 방송은 NBC·ABC·CBS. 이 가운데 맨해튼 49가 록펠러센터에 위치한 채널 4의 NBC는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당당한 1위 방송이다. 참신한 프로그램과 세련된 구성이 1위의 비결이다. 중산층을 겨냥한 NBC의 전략은 적중해 다른 방송사들과 시청률 격차를 보이고 있다.

▲ 케이티 쿠릭
케이티 쿠릭은 바로 이 NBC의 대표적 아침 토크쇼인 ‘투데이’의 진행자 출신이다. 그녀는 아침마다 밝고 세련된 디자인의 응접실 세트에서 남성 파트너 맷 라우어와 함께 다양한 뉴스와 저자 인터뷰, 조리법, 날씨 등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쿠릭은 버지니아 대학을 나와 1979년 ABC뉴스 워싱턴 지국에서 취재보조원으로 방송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84년에 미국 마이애미 지역의 방송 리포터와 CNN을 거쳐 1989년부터 NBC 뉴스에서 일해왔다.

‘투데이’의 진행을 맡은 것은 1991년. 이후 15년 동안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투데이’를 미국의 대표적인 아침 토크쇼로 키워놓았다.

쿠릭의 성공 비결은 시청자에게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화장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외모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먹혀 들고 있다. 맨해튼 주민인 톰 타이터스는 “쿠릭은 옆집 이웃 같은 친절하고 푸근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미국인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쿠릭의 개인적인 비극도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요소다. 그녀는 남편 제이 모너헌을 대장암으로 잃었다. 그래서 대장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내시경 검사를 받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뉴스가 나오면 가끔 눈물을 훔쳐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고, 결혼식에서 도망간 신부를 집중적으로 인터뷰하는 색다른 시도도 했다. 미국인들은 두 딸의 어머니로서 가정적인 그녀의 모습을 ‘미국의 건설 과정에서 꿋꿋이 일하면서도 가정을 지켜온 전형적인 미국 어머니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박한 쿠릭’이 지난 봄 NBC와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CBS 저녁뉴스의 단독 앵커로 옮기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저녁뉴스 방송은 매일 2500만명이 시청하고 4억달러의 광고수입이 발생하는 큰 시장이다. 그래서 NBC·ABC·CBS 등 방송사들은 간판앵커를 내세워 시청률 경쟁을 벌여왔다.

지난 8월까지만 하더라도 NBC의 브라이언 윌리엄스가 하루 평균 880만명의 시청자를 확보, ABC(800만명)와 CBS(730만명)를 따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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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저녁뉴스는 1962년부터 지금까지 전설적 앵커였던 월터 크롱카이트와 댄 래더가 진행하면서 CBS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으나 지난 10여년 동안은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3위의 설움을 받아왔다.

주요 시청자층에 노인이 많아 ‘노인방송’으로까지 불리게 되자 거액을 들여 쿠릭을 영입하면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쿠릭이 받는 연봉은 1500만달러. ABC의 피터 제닝스(1000만달러), NBC의 브라이언 윌리엄스(400만달러)보다도 훨씬 많다. 그녀는 NBC 측에서 연봉 2000만달러와 함께 ‘투데이’에 잔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CBS로 옮겼다. 미국 방송 사상 첫 여성 앵커가 되겠다는 야심 때문이다.

CBS가 쿠릭을 영입한 것은 더 밝아진 분위기와 현대적인 세트, 정교한 그래픽 등으로 젊은층과 여성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젊은층은 브랜드 이름이나 새로운 광고에 관심이 많고, 여성은 구매 결정권을 갖기 때문에 광고주의 주요 공략 대상이다. 따라서 ‘투데이’에서 산뜻하고 명랑하며 다정한 이미지를 구축한 쿠릭이 이러한 젊은층과 여성층의 시청자를 끌어와 광고단가를 높일 것이라고 CBS는 계산하고 있다.

CBS는 쿠릭의 영입에 이어 1000만달러가 넘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대대적인 홍보작전을 벌였다. 뉴욕 시내를 운행하는 모든 버스에 쿠릭의 얼굴이 들어간 홍보물을 부착하고,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자체 연구센터에서 NBC와 ABC에 맞설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 창출 작업을 했다. 미국 방송사상 처음으로 저녁뉴스를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그녀의 포스터 사진이 ‘포토샵’으로 9㎏ 이상 빠진 날씬한 모습으로 재포장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작논란이 일기도 했다.

미국 방송계에서 여성 앵커의 수가 적은 것은 아니다. 미국 라디오·TV 뉴스 제작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TV뉴스 앵커의 57%가 여성이다.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학생의 3분의 2도 여성이어서 여성의 앵커 비율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또 남녀 공동진행의 관행을 깨기 위해 여성 2명을 메인뉴스 앵커로 내세우는 등의 새로운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과거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에 맞춰 바버라 월터스(ABC)와 코니 정(CBS), 엘리자베스 바거스(ABC)와 같은 여성 앵커들이 명성을 얻었지만 이들은 모두 남성 앵커와 공동으로 진행했었다.

따라서 케이티 쿠릭이 저녁뉴스의 단독 앵커로 나선 것은 미국 TV사상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으로 방송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단독 앵커에 선정되고 나서 쿠릭은 두바이 경제를 이끌고 있는 셰이크 모하메드 막툼 왕자, 시각장애인 중국 인권운동가 천광청 등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5월 선정한 ‘세계를 변화시킨 정계·재계·종교계·학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 100명’에 뽑혔으며, 포브스지가 지난 8월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중 54위를 차지했다.

쿠릭의 데뷔는 일단 성공적이다. 9월 5일 첫 방송에서 그녀는 CBS의 전설적 앵커인 월터 크롱카이트의 소개를 받은 뒤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며 아프가니스탄 특파원의 탈레반 인터뷰를 첫 소식으로 전했다. 또 최근 ‘배니티 페어’의 표지로 등장한 영화배우 톰 크루즈의 갓난 딸 수리의 사진에 대해 언급하며 관심을 끌었다.

이날 CBS 방송의 저녁뉴스는 1360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여, NBC(78 0만명)와 ABC 월드뉴스(760만명)를 압도했다. 만년 3위가 쿠릭의 활약으로 1998년 2월 16일 이후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면서 시청률 1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저녁뉴스 광고주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25~54세 시청자들이 3대 방송 진행자 가운데 쿠릭에게 가장 큰 호감을 나타냈다는 여론조사도 CBS를 고무시키고 있다.

케이티 쿠릭의 등장으로 NBC의 톰 브로코, ABC의 피터 제닝스, CBS의 댄 래더가 1980년대부터 20년 이상 지배해 온 저녁뉴스는 브라이언 윌리엄스, 찰스 깁슨, 케이트 쿠릭의 3파전으로 세대교체됐다. 미국 방송계의 관심은 케이티 쿠릭이 돌풍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