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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당신의 아이를 칭찬하는 방법 - 제3장 산뜻하게 칭찬하는 방법

Joyfule 2020. 7. 15. 03:58

52. 당신의 아이를 칭찬하는 방법
지은이: 세키네 마사아키  
제3장 산뜻하게 칭찬하는 방법  
2편 잘 살핀다는 것은 무엇인가  
8. 자신을 되돌아본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직접적인 방법은, 자신의 모습을 실제로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다. 
자신의 복장, 머리모양, 얼굴표정과 같은 외양을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 
어떻게  보이고 어떤 느낌을 주는 지를 살피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말을 풀어나가는 방법, 말투, 목소리  등에 대해서는 자신의 말을 녹음해서 들으면 좋다. 
녹음된 자신의 말을 듣는 것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보는 것과 같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기는 것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방법 중의 하나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며 고치는 작업 역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쓰기를 싫어 한다. 
협의회나 연구회 따위의 공식모임에서 정식으로 발언을 하거나 
어떤  정리된 생각을 발표하는 것도 가능하면 피하려고 한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이얘기 저얘기 수다를 떨다가도 조금만 색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긴장을 한다. 
전화통을 붙잡고 되는 얘기 안되는 얘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 사람도 
편지를 쓰라고 하면 꽁무늬를 뺀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글을 쓰면 자신이 쓴 글이 남고, 그것을 스스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쓴 글을 읽는 것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거나 
자신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자기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점잔빼는 사람이 쓴 글은 점잖은 척하는 모습이, 
자기변명을 일삼는 사람이 쓴 글은 자기 변명투성이의 모습이 글 속에 확연히 드러난다. 
어리석은 사람, 속좁은 사람의 글도 그 사람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다른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없다. 
사람들은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쉽다고  의식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고역이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말하는 것이 쓰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상대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설명하면 알아듣겠거니 생각한다. 
말솜씨에도 차등이 있어서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의식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말하기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쉽게 생각한다.
한 번 쓴 글은 다시 보고 고칠 수 있다. 
필요 없는 말은 지우고, 추가하고 싶은 말은 더 넣으면서 퇴고할 수 있다. 
시간을 갖고 충분히 검토해서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여길 때까지는 발표를 늦출 수 있다. 
그러나 말은 그렇지 않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어담을 수 없다. 
'지금 한 말은 나의 실수입니다. 취소하겠습니다'라고 말해서 
상대의 용서를 구한다 해도 두 사람 사이에는 석연치 않은 응어리가 남는다.
말하는 방법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자기훈련을 하고자 하는 교사는 의외로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학생들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든가 
학생들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수업을 녹음한 내용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뭔가 정리된  이야기를 할 때는 소형녹음기에 녹음을 해두자. 
그리고 나중에 혼자서 그 녹음내용을 들으면 
자신이 한 말을 들을 수 있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결과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담긴 녹음내용을 듣고 
창피하다는 생각에 쥐귀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 중에는, 뭐하러 힘들게 녹음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의사전달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보면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저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재미있어'. 
'저 선생님의 말씀은 참 유익해'. 
'저 선생님이 수업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라'하고 평가받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그  선생님 시간이다, 아이구 지겨워라', 
'저 선생님은 뭐라고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하고 
학생들이 진저리를 치는 교사도 있다. 
보다 나은 강의를 하고자 자기훈련을 하는 교사, 
할 말을 준비하고 말솜씨를 갈고닦는 교사가 있는 반면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느끼는 대로 즉흥적으로 떠들면서 시간을 때우는 교사도 있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수업의 차이만을 낳지 않는다. 
교사로서 삶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 학생과 학부형의 신뢰를 받는가 받지 못하는가 하는 차이, 
인간의 덕성을 쌓는가 쌓지 못하는가의 차이로 연결된다.
'저 선생님의 구수한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저 선생님의 수업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학생들이 고대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성실성이 필요하다.
수업의 기본은 말솜씨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하면서 
말솜씨의 매력을 소홀히 여기는 교사는 교사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알아보기  쉬운 문장이 있듯이 알아듣기 쉬운 말이 있다.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말솜씨도 있다.
반대로, 어딘지 듣기 싫은 느낌을 주는 말솜씨가 있는가 하면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주위에서 빙빙돌기만 하는 말도 있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말솜씨도 연구하고 훈련해야 한다.
 일단 연구하고 훈련해야겠다는 자세를 갖추면 배울 수 있는 실마리는 얼마든지 있다. 
동료의 말솜씨로부터 배울 수도 있고, 
좋은 강연을 듣고 자신의 말솜씨를 키울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거울삼아 나 자신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다른 교사의 교무일지를 읽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하나의 방법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화술에 관한 테이프를 사서 공부하며 
자신의 말투를 생각하는 것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방법의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자발적으로 자기연마를 하는 것이다. 
시간과 돈을 아까워하지 말고 배우고 또 배우자. 
이것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인생관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