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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기억이 최고 경의

Joyfule 2012. 6. 23. 21:41

 

 

 

6. 25, 기억이 최고 경의 
[광화문에서/조성하]기억, 그 최고의 경의

기사입력 2012-06-22 03:00:00 기사수정 2012-06-22 03:00:00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지난주 부산 유엔군묘지를 81세의 캐나다인 참전용사가 찾았다.

그의 이름은 에릭 우들(몬트리올 거주). 1950년 열아홉 나이에 해군에 자원입대한 노병이다.

그런 그가 귀국해 한 어린이에게 들려준 말(본보 14일자 A31면)에 가슴이 찡하다.

그는 ‘다시 한국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또다시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에도 여기와 똑같이 웃고 뛰노는 아이들이 있고, 그들이 있는 한 다시 갈 것이다”라고.

이 대목에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열아홉 살 내게도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그렇듯 확고한 신념이 있었는지다.

아무리 둘러대려 해도 답은 ‘아니’ 그리고 ‘없다’다. 왜 그랬을까.

아니, 반대로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런 자괴감은 호국보훈의 달이라, 가슴을 울린 우들의 말 때문에 비로소 든 건 결코 아니다.

세계 도처의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비와 조우할 때마다 제기된 되물음과 소회가 그 진원이다.

2주 전 캐나다 유콘 준주의 화이트호스에서다.

주도라고는 해도 주민 2만3000명에 불과하고 도심이라야 5층 이상 건물을 보기 힘든 북위 60도(미국 알래스카 주와 이웃)의 옛 골드러시 타운이다.

우리와 관련 있을 듯싶지 않은, 마치 다른 행성처럼 낯설기만 한 이 오지.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일순 형제처럼 따뜻하게 다가왔다.

시청 앞에서 마주친 추모비 덕분이다. 거기엔 6·25전쟁이 보어전쟁, 제1·2차 세계대전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화이트호스의 시민 누군가가 한국전에 자원 참전해 숨지거나 부상당했음을 전하는 글귀다. 

추모기도를 올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1950년대 초 척박한 이곳에서 어렵사리 지냈을 앳된 스무 살 청년이, 태어나 본 적 없을 바다(태평양)까지 건너 한국에서 벌어진 ‘남의’ 전쟁에 자원해 이름 모를 곳에서 외롭게 스러져갔을 참담한 상황에, 아울러 그 슬픔을 마주했을 그의 가족이 생각나서다.

이전 ‘캐나다 아이스하키의 고향’ 킹스에지힐 스쿨(노바스코샤 주 윈저) 교정의 동창 추모비 앞에서도, 해

발 3300m의 ‘하늘 아래 첫 마을’ 레드빌(미국 콜로라도 주)의 메모리얼 로드를 차로 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젊음을, 목숨을 바친다는 것. 그건 그 대상이 그보다 더 큰 가치를 지녔을 때에야 가능한데 그들에겐 우리, 한국민의 자유가 자기 젊음과 목숨보다 더 귀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죽음은 고귀했고 헌신은 위대했다.

그게 절대 잊혀질 수 없는 이유이자 조국이 이들을 공개 추모하는 배경이다.

미국을 보자. 동네마다 ‘메모리얼 파크(추모공원)’를 두고 ‘메모리얼 로드’라는 이름의 길을 둔다.

호주 퍼스(서호주 주)의 킹스 파크는 감동적이다.

숲을 관통하는 공원 진입로의 나무 아래에 사상자 명패가 꽂혀 있다.

그게 무려 1100개다.

 

내 목숨을 바쳐 지킬 위대한 가치는 이렇듯 일상에서 접하는 고귀한 죽음과 위대한 헌신을 통해 대대로 전수되고 신념으로 내면화된다. 

우리는 어떤가.

혹시 현충원에만 가둬두고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제안한다.

한일 월드컵 중 발발해 제대로 현양 받지 못한 제2연평해전(2002년)의 산화 6용사부터

시민이 즐겨 찾는 북한산국립공원이나 남산에서 공개추모하는 것이 어떨지.

이들에 대한 최고의 경의는 국립현충원 안장이 아니다.

잊지 않고 늘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걸 영웅이라 한다면 이들이 바로 그것이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