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ret Garden
Frances Hodgson Burnett
제3장 : 거치른 황야 바람길을 지나
내가 한참을 자고 깨어났더니 매들록 부인이 어떤 역에서 사 놓은 도시락을 꺼냈다.
두 사람은 닭고기와 쇠고기를 얇게 자른 냉육,
빵과 버터를 먹고 뜨거운 차를 조금 마셨다.
비는 이전보다도 좀 더 세차게 흘러내리는 듯했고
역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방수복을 입고 있었다.
차장이 객실 안에서 등불을 켰고,
차를 마시고 닭고기와 냉육을 먹은 매들록 부인은 한결 기운이 넘쳤다.
부인은 배 터지게 먹은 후에 잠이 들어 버렸고,
나는 앉아서 부인을 쳐다보며 보닛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다 나도 다시 한번 객실 구석에 기대 유리창을
찰싹찰싹 치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졌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 깜깜했다.
기차가 어떤 역에 멈춰 있었고 매들록 부인이 나를 흔들었다.
"잠들어 버렸네요!"
부인이 말했다.
"이제 눈뜰 시간이에요!
스웨이트 역에 도착했지만 앞으로도 마차를 타고 한참 가야한다구요!"
나는 일어서서 매들록 부인이 짐을 챙기는 동안 눈을 뜨려 애썼다.
꼬마 소녀는 부인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원주민 하인들이 항상 짐을 들고 날랐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시중드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었다.
역은 작았고 그들 말고는 아무도 기차에서 내린 것 같지 않았다.
역장은 매들록 부인에게 거칠지만 사람 좋은 태도로 말을 걸었다.
단어들을 아주 이상하게 발음했는데 나중에 내가 알게된 바에 따르면 요크셔 방언이었다.
"돌아오셨구먼."
역장이 말했다.
"게다가 저 꼬맹이를 달고 오셨는갑네."
"아, 예. 바로 쟤여라."
매들록 부인도 요크셔 사투리로 말하며 고갯짓으로 내 쪽을 가리켰다.
"댁 마나님은 어떠셔라?"
"일 없지 뭐. 마차가 댁네들을 바깥에서 기다리는 구먼."
브루엄 마차 한 대가 작은 야외 플랫폼 앞 길 위에 서 있었다.
나는 마차도 근사하고 올라탈 때 도와준 시종도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긴 방수 외투와 방수 모자 덮개는 체구가 우람한 역장이나
다른 모든 것들 처름 비를 맞아 번들거렸다.
시종이 마차 문을 닫고 마부 옆자리에 올라앉자 마차는 출발했다.
나는 편안한 방석이 깔린 마차 구석에 앉아 있었지만,다시 잠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대로 앉아 창문을 내다보며 메들록 부인이 말한 괴상한 저택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궁금히 여겼다.
나는 소심한 아이는 절대 아니었고 굳이 말하면 겁이 나지도 않았는데,
백 개나 되는 방이 자물쇠로 잠겨 있다는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황야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집에서.
"황야가 뭐에요?"
나는 메들록 부인에게 불쑥 물었다.
"10분후 창문을 내다보면 알게 될 거에요."
부인은 대답했다.
"미슬 황야를 8킬로미터는 지나야 장원에 도착할 테니까요.
깜깜한 밤이라 보이는 것이 많지는 않겠지만 뭔가 볼순있겠지요."
나는 더 묻지 않고 어두컴컴한 구석에 앉아 창문을 빤히 쳐다보며 기다렸다.
마차 등불이 바로 앞, 얼마 안 되는 거리에 빛을 던져서
나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언뜻언뜻 볼 수 있었다.
역을 떠난 이후로 작은 마을을 통과했고,
회반죽을 바른 오두막들과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등불들이 보였다.
그런 후에는 교회 하나와 목사관 하나,
장난감과 사탕, 과자 및 잡동사니를 내다 파는 오두막의 작은 진열장을 지나 쳤다.
그다음 큰 길에 올라섰을 때 메리는 산울타리와 나무들을 보았다.
그 이후로는 한참 동안 별다른 것이 없었다.
적어도 나로서는 한참 시간이 흐른 기분이었다.
마침내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는지 말들이 좀 더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이윽고 울타리도 나무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는 양쪽에서 짙은 어둠 이외에 아무것도 볼수 없었다.
내가 앞으로 몸을 내밀고 창문에 얼굴을 꼭 댔을 때
마차가 한번 크게 덜커덕 흔들렸다.
"아! 이제 확실히 황야 위에 올라섰나 보네."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마차는 울퉁불퉁해 보이는 길 위로 노란 불빛을 던졌다.
덤불숲과 애트막하게 자란 식물들이 길 앞을 가로막았고
그조차도 그들 앞과 주위에 광활히 펼쳐진 어둠 속에서 딱 끊긴 듯 했다.
바람이 일어 특이하고 거친 저음으로 밀려왔다.
"이건, 이건 바다는 아니죠?"
나는 동행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아니지요."
메들록 부인이 대답했다.
"들판도 산맥도 아니에요.
그저 히스와 가시금잔화 양골담초밖에 자라지 않고
야생 조랑말과 양 떼밖에는 살지 않는 황야가 몇 킬로미터 씩 뻗어 있을 뿐이에요."
"마치 바다 같은 느낌이 들어요.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내가 말했다.
"지금 막 바닷소리도 났어요."
"덤불숲을 지나는 바람이랍니다."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내가 보기엔 거칠고 황량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요.
특히 히스가 활짝 피는 시기에는."
마차는 쉼없이 어둠을 뚫고 달려갔다.
비는 멈추었지만 바람이 불어와 휘파람을 불면서 으스스한 소리를 냈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여러 번 마차는 물이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다리 위를 지나쳤다.
메리는 이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넓디넓고 황막한 황야는 광활한 검은 대양이고
나는 그 바다 위에 드러난 마른땅 한 줄기 위로 지나는 느낌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나는 혼잣말을 했다.
"마음에 안들어."
그러면서 얄따란 입술을 더욱 꼭 다물었다.
말들이 언덕길을 올랐을 때 메리는 처음으로 빛을 보았다.
메들록 부인도 빛을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이고 반가워라.
반짝이는 작은 불빛이 보이네."
부인은 외쳤다.
"관리인 주택 창문에서 나오는 빛일 거에요.
하여튼 금방 뜨끈한 차 한잔 마실 수 있겠네."
'금방'이라고 말했지만 장원 정문을 지나 3킬로미터는 더 달려야 했다.
머리 위에서 가지들이 서로 맞대고 있는 울창한 나무숲 사이를 지나노라니
길고 어두운 아치 지붕 아래를 달리는 듯했다.
아치문처럼 늘어선 나무 사이를 지나자 너른 공터가 나왔고
마차는 양쪽으로 한없이 길지만 야트막하게 지어진 집 앞에 멈춰 섰다.
저택은 돌 마당 둘레를 빙 두르며 제멋대로 뻗은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에 나는 어느 창문에서도 불빛이 비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마차에서 내리자 구석 위층에서 흘러나오는 어렴풋한 빛이 보였다.
현관문은 둔중하고 기묘한 모양의 참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커다란 강철못들이 박혀있고 큰 강철 비녀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문을 열자 거대한 홀이 나오고 그 안에는 침침히 빛이 비쳐,
나는 벽에 걸린 초상화속 얼굴과 갑옷을 갖춰 입은 조각상들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돌바닥 위에 서 있는 나는 작고 기이한 검은 형체같이 보였고
나는 그 모습만큼이나 자기가 작고 길 잃었으며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정하고 마른 노인이 문을 열어 준 남자 하인 가까이에서 있었다.
"아가씨를 방까지 모셔다 드리게."
늙은 남자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은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군,
아침에 런던에 가신다지."
"알겠습니다. 피처 씨."
메들록 부인이 대답했다.
"저한테 뭘 기대하시는지 아는 이상, 제가 알아서 할수 있어요."
"메들록 부인에게 기대하는 건 말이지."
피처 씨가 말했다.
"주인님이 방해받지 않으시도록 하는 것과
보고 싶지 않으시다는 것은 보시지 않게 해 드리는 거네."
그런 후 나는 넓은 계단 위로 안내를 받아 긴 복도를 지났다.
그리고 짧은 계단을 오른 후 복도를 또 하나, 다시 복도를 또 하나 지난 후
마침내 어떤 문 앞에 이르렀다.
벽에 있는 문이 열리자 나는 어떤 방에 들어섰다.
안에는 불이 지펴 있고 탁자 위에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메들록 부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자, 왔네요!
이 방과 옆방이 아가씨가 살게 될 곳이에요.
그리고 여기에만 있어야 하시구요.
잊으면 안 돼요!"
이렇게 나 메리는 미슬스웨이트 장원에 도착했다.
나는 생전 이처름 심술궂은 기분이 들었던 적은 처음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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