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ret Garden
Frances Hodgson Burnett
제2장 : 까칠한 나 메리 양 2
나는 남의 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게 되고 유모도 곁에 없자 점점 쓸쓸해졌고,
이제까지 해 보지 않은 기이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때도
어째서 누구의 품 안에 있었던 것 같지 않았는지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부모님의 품 안에 있는 듯했지만
나는 한번도 정말로 누군가의 어린 딸로서 지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하인이 있었고 음식도 옷도 충분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다.
나는 자기가 정이 가지 않는 아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물론 그땐 자기가 정이 가지 않는 아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종종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자기 자신은 그런 줄은 몰랐다.
나는 메들록 부인이야말로 아제껏 본 중에 가장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하고 상기된 얼굴과 평범하고 고급스러운 보닛, 다음 날 둘이 요크셔로 떠날 때,
나는 역 안을 지나 객차로 걸어가면서 고개를 꼿꼿이 들었고
부인과 일행인 양 보이고 싶지 않아서 될수 있는 한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메들록 부인의 딸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메들록 보인은 메리가 어떻든 무슨 생각을 하든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부인은 어린애들이 지껄이는 헛소리를 봐주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적어도 누가 물어보면 저렇게 대답을 할 것이었다.
부인은 여동생 마리아의 딸이 결혼하는 시기에 공교롭게도 런던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슬스웨이트 장원의 가정부로서 편안하고
보수도 두둑한 직책을 맡고 있었으므로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아치볼드 크레이븐 씨가 하라는 대로 즉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감히 이의를 제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레녹스 대위와 그 부인은 콜레라로 죽었소."
크레이븐 씨는 평소대로 짧고 냉담하게 말했다.
"레녹스 대위는 내 아내의 오빠였고, 나는 그들 딸의 후견이오.
아이를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 부인이 가서 직접 데려와요."
그래서 부인은 작은 트렁크에 짐을 싸서 길을 떠났다.
나는 객차 구석에 앉아 못난 얼굴로 짜증을 냈다.
읽을 거리도 볼거리도 없었으며 검은 장갑을 낀 깡마른 두 손을 포개 무릎 위에 놓았다.
검은 옷 때문에 피부색이 더 누르끼하게 보였으며
힘 없이 늘어진 옅은 머리가 까만 크레이프 모자 아래로 삐져나와 헝클어졌다.
'평생 살면서 저렇게 버릇없고 뿌루퉁한 아이는 처음보네.'
메들록 부인은 생각했다.
부인은 그렇게도 꼼짝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나를 보고 있다가 진력이 난 부인은 마침내 무뚝뚝하고도
엄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가씨가 가게 될 곳에 대해서 말을 좀 해주는게 좋겠군요."
부인은 말했다.
"아가씨 고모부님에 대해 아는게 있나요?"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아버님이나 어머님께서 저희 주인님 이야기 하시는 것 들은 적 없나요?"
"없어요."
나는 얼굴을찡그리며 말했다.
찡그린 이유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딱히 무엇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해 준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무슨 얘기도 한 적이 없었다.
"흠."
메들록 부인은 괴상하고 별 반응이 없는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부인은 몇 분 동안 아무 말 않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리 말을 들어 놓는게 좋겠죠.
대비 차원에서, 아가씨는 기이한 곳에 가게 될 테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메들록 부인은 내가 보이는 무관심한 태도에 다소 당황했지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음울할 정도로 장대한 저택이고 크레이븐 씨는
그 집을 자랑스러워하시지만, 어쨌든 음울하긴 음울한 곳이지요.
저택은 6백 년이나 되었고 황야 가장자리에 있어요.
또 저택에는 백 개에 가까운 방이 있는데 대부분은 자물쇠로 잠겨 있죠.
그림과 오래된 고급 가구, 몇 세대를 거친 물건들도 있구요.
저택 주변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고 정원들, 가지를 땅까지 드리운 나무들도 있지요.
몇 그루는 그렇다는 거에요."
부인은 잠시 틈을 두었다가 다시 한 번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갑작스럽게 끝을 맺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인도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고 새로운 건 약간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관심이 있는 티를 내고 싶진 않았다.
그런 점이 바로 안타깝게도 나에게 정이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음."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요?"
"아무 생각도 안 해요."
나는 대답했다.
"그런 곳들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이 말에 메들록 부인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
부인은 말했다.
"어린 아가씨가 할머니 같네요.
신경이 안쓰여요?"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대답했다.
"내가 신경을 쓰건 안 쓰건."
"그 말은 맞네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상관이 없죠.
어째서 아가씨를 미슬스웨이트에 두기로 했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그게 가장 쉬은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이유 말고는
아가씨 고모부님은 아마 굳이 수고롭게 아가씨 일에 상관하지 않으실 거에요.
주인님은 누구에게든 상관하는 분이 아니시니까."
매들록 부인은 때마침 무엇이 생각났다는 듯 말을 멈췄다.
"주인님은 등이 굽었답니다."
부인은 말했다.
"그 탓에 비뚤어지셨지요.
젊으셨을때 매사에 삐딱하셨고 결혼하실 때까지만 해도
돈이나 대저택은 아무 쓸모도 없다 여기셨어요."
나는 관심을 보이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눈이 부인쪽으로 저절로 돌아갔다.
곱사둥이가 결혼을 할수 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살짝 놀랐다.
메들록 부인은 이를 눈치챘고,
원래 수다스러운 여자였던 터라 한층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은 가기 마련이었다.
"마님은 다정하고 예쁜 분이셨죠.
그래서 주인님은 마님이 원하는 거라면 풀 한 포기까지 가져다주기 위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였어요.
아무도 마님이 주인님과 결혼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두 분은 결혼을 하셨죠.
사람들은 마님이 주인님의 돈을 보고 결혼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마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죠."
매들록 부인은 단언했다.
"마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살짝 움찔했다.
"아, 돌아가셨어요!"
메리는 그럴 작정은 아니었지만 소리를 질렀다.
언젠가 읽었던 프랑스 동화 <고수머리 리케>가 생각났다.
그 동화는 불쌍한 곱사등이와 아름다운 공주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그 덕에 나는 갑자기 아치볼드 크레이븐 씨가 가여워졌다.
"네, 돌아가셨답니다."
부인이 대답했다.
"그래서 주인님은 이전보다 한층 더 괴팍해지셨지요.
어제 아무에게도 괸심을 보이지 않는답니다.
사람들을 만나려 하지 않아요.대개 남들을 멀리하시죠.
미슬스웨이트에 있을 때는 서관에 혼자 틀어박혀서
피처 씨말고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으세요.
피처 씨는 이제 나이가 꽤 들었지만 젊었을 적부터
주인님을 돌봐 왔던 터라 요령을 안답니다."
메들록 부인의 이야기는 책에나 나올 법하게 들렸고 내 기운을 북돋아 주지도 못했다.
방이 백 개나 있는 집이지만 거의 자물쇠로 잠겨 있다니,
황야 가장자리에 있는 집이라니,황야가 뭔지는 몰라도 쓸쓸하게 들렸다.
또 혼자 틀어박힌 등이 굽은 사람이라니!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꽤나 마침맞게도 빗줄기가 쏟아져 회색 빗금을
그리고 유리창 위에 튀며 줄줄 흘러내렸다.
예쁜 아내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면 메리의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
여기저기 드나들고 '레이스투성이인'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다니면서
주위를 명랑하게 만들었겠지.하지만 이제 그 고모님은 그 집에는 없었다.
"주인님을 만나게 되리란 기대는 할 필요 없어요.
십중팔구 만나지 못할 테니까."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또 사람들이 말을 걸 거라는 생각은 안 해도 돼요.
혼자서 놀고 알아서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할 거에요.
어떤 방에는 들어갈 수 있고 어떤 방에는 가면 안 되는지 알려 드릴 거에요.
정원은 충분히 넓으니까 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어슬렁거리면서 헤집고 다니면 안 된답니다.
크레이븐 씨가 못하게 하실 테니."
"헤집고 다니고 싶지도 않아요."
매사에 까칠한 내가 말했다.
아치볼드 크레이븐 씨를 갑작스레 가엾게 여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갑자기 싹 달아났다.
성격이 그렇게 불쾌한 사람이니 그런 일들을 다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후 나는 물이 줄줄 흐르는 객실 차창으로 고개를 돌려
언제까지나 쏟아질 듯한 회색 폭풍우를 내다보았다.
어찌나 오래, 빤히 바라보았는지 회색이 눈앞에서 점점
무거워지고 나는 마침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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