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ret Garden
Frances Hodgson Burnett
제6장 : 누군가의 울음 소리가 들려와 1
이튿날 아침, 다시 장대비가 쏟아졌고 나는 창문밖을 내다봤다.
황야의 모습은 회색안개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오늘은 도무지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할것 같았다.
"이렇게 비가 오면 너네 오두막에선 뭘 해?"
나는 마사에게 물었다.
"다들 서로 거치적거리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죠"
마사가 대답했다.
"허! 그런데도 애들이 겁나게 많거든요.
엄니는 참 자상한 분이지만 고생이 너무 많으셔요.
큰 애들은 밖으로 나가서 외양간에서 놀아요.
디컨은 좀 젖는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어요.
햇빛이 쨍쨍할 때나 똑같이 나가서 놀지라.
걔 말로는 비 오는 날에는 화창한 날에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다나.
한번은 물이 가득한 구멍에 빠져 반쯤 죽을 뻔한 작은 여우 새끼를 찾아 가지고는
뜨뜻하게 셔츠속에 품어서 집에 가지고 왔지 뭐여요.
그 어미는 근처에서 죽어 있고,
구멍에 물이 넘치는 바람에 나머지 새끼들도 죽었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여우 새끼를 집에서 키워요.
걘 또 전번에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까마귀도 찾아서
집으로 데려와 길들였답니다.
이름을 '검댕이'라고 지었는데 아주 새까만 까마귀거든요.
이젠 디컨 주위를 깡총깡총 뛰면서 날아다녀요."
이쯤 되자 나는 마사가 주절대는 소리에 익숙해져서
그 수다가 싫었던 게 언제인가 싶었다.
이젠 심지어 그 얘기가 재미있었고 마사가 말을 하다말거나
다른데로 가버리면 아쉽기까지 했다.
인도에 살때 보모가 해주었던 이야기는 마사가
해주는 황야 오두막 이야기와는 사뭇 달랐다.
열네 명의 식구가 조그만한 방 네 개에 옹기종기 살면서 끼닛거리도 제대로 없다니,
아이들은 천연 그대로의 온순한 콜리 강아지떼처럼
한데 뒹굴뒹굴 구르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나는 그중에서도 어머니와 디컨 이야기에 가장 끌렸다.
마사가 '엄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다거나
어떤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할때면 언제나 참 편안하게 들렸다.
"나도 같이 놀 갈까마귀나 꼬마 여우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어."
마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아씨, 뜨개질하셔요?"
"아니."
"그럼 바느질은 하시나?"
"아니."
"글자는 읽을 줄 아시고?"
"응"
"그럼 뭔가 읽거나 쓰는 걸 배우시면 어때요?
아가씨는 이제 책을 가지고 공부할 만큼 충분히 컷잖어요."
"책이 하나도 없는데. 있었던 건 다 인도에 놔두고 왔어."
"거 참 짠하네요.
메들록 부인이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게 허락을 해주면 거긴 책아 수천 권이 있던데."
나는 도서관이 어디냐고 묻지는 않았다.
별안간 새로운 생각이 번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직접 가서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메들록 부인이 뭐라 하든 신경 쓰이지 않았다.
메들록 부인은 늘 아래층의 편안한 가정부 응접실에만 있는 듯 보였다.
이 기묘한 집에서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사실 하인 말고는 볼 사람도 없긴 했다.
주인님이 안 계신 동안, 하인들은 아래층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냈다.
거기에는 반짝이는 놋쇠와 백랍 식기들이 걸린 커다란 부엌이 있고
하인들이 매일 네다섯 끼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메들록 부인이 야단만 하지 않으면 시끌벅적하게 놀수 있는 거대한 식당이 있었다.
내 식사는 때맞춰 나왔고,
마사가 시중을 들었지만 아무도 내 사정을 요만큼도 신경쓰지 않았다.
메들록 부인이 하루나 이틀마다 한 번씩 들러 들여다 보긴 했지만
내가 뭘 하는지 물어보거나 뭘 할지 얘기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 이것이 어쩌면 영국 사람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도에서는 보모가 항상 따라다니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중을 들며 보살폈다.
그땐 종종 사람들과 같이 있어야 하는게 귀찮기도 했다.
이젠 아무도 따라다니지 않았고, 옷도 혼자 입는 법을 배웠다.
물건을 달라거나 옷을 입혀 달라고 했더니
마사가 자기를 멍청하고 어리석게 생각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는 머리가 없어요?"
한번은 내가 가만히 서서 장갑을 끼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마사가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
"우리 수전 앤은 고작 네 살이지만 아가씨보다 곱절은 더 똑똑혀요.
가끔 아가씨는 머리가 아주 말랑말랑 하게 보인다니께요."
나는 그로부터 한 시간 동안 심술궂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것들을 몇 가지 생각해 냈다.
이날 아침, 마사가 마지막으로 난로의 재를 쓸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난 10분 정도 창가에 서 있었다.
도서관 얘기를 들었을 때 마음에 떠올랐던 새로운 생각에 대해 궁리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읽은 책이 몇 권 없기 때문에 도서관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서관 얘기를 들으니
문이 닫혀 있는 백 개의 방이 마음속에 다시 되살아났다.
그 방들이 정말로 다 잠겨 있는지,
그중에 어느 방이라도 들어갈 수 없는지 궁금했다.
정말로 백개가 있을까?
가서 문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밖에 나갈수 없는 오늘 아침에 시간을 때울 만한 일을 듯했다.
난 뭘 하기전에 허락을 얻으라는 가르침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고
권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기때문에 메들록 부인을 보았다 쳐도
집 안을 돌아다녀도 되는지 부인에게 물어봐야 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난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서 헤매기 시작했다.
복도는 길고 다른 복도들로 갈라져 있었다.
그 복도를 따라 올라가면 짧은 계단들이 나왔고, 벽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어떤 것은 침침하고 기괴한 풍경화기도 했지만
보통은 새틴과 벨벳으로 만든 기묘하고 장엄한 의상을 입은 남자와 여자의 초상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보니 이런 초상화들로 벽이 덮여있는 기다란 복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어느 집이든 이렇게 초상화가 많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초상화 속의 얼굴들을 찬찬히 쳐다 보았다.
그 얼굴들도 나를 쳐다보는 듯 했다.
인도에서 온 이 소녀가 자기 집에서 뭐 하나 궁금히 여기는 것 같았다.
간혹 아이들의 초상화도 있었다.
발까지 치렁치렁 내려와 눈에 띄는 두꺼운 새틴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들이나
부풀린 소매와 레이스 칼라가 달린 옷을 입고 머리가 긴,
혹은 목 주변에 커다란 주름 장식을 단 소년들의 초상화였다.
난 이런 아이들의 초상화가 나올 때마다 발길을 멈추고
아이들의 이름이 뭔지, 어디로 갔을지,
어째서 저렇게 이상한 옷을 입었는지 생각했다.
어떤 초상화에는 나처럼 뻣뻣하고 평범하게 생긴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녹색 문직(입체감이 드러난옷감) 드레스를 입고
손가락에 녹색 앵무새를 얹어 놓았다.
눈동자에는 날카롭지만 호기심 가득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넌 지금 어디 사니?"
난 그림속 소녀에게 소리쳐 말했다.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분명히 다른 꼬마 소녀들은 그처럼 이상한 아침을 보낸적이 없었던듯 싶었다.
이 거대하고 사방팔방 뻗어 있는 집 안에는 아무도 없이
오로지 자그만한 나만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좁고 넓은 복도를 헤매는 듯 했고,
이 집에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은 한 번도 걸어 다닌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방이 있으니 분명 그 안에 산 사람이 있을 테지만,
모두들 텅 비어 보여서 난 과연 누가 살았을지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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