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 - 정원 목사
당신은 사랑하는 쪽이 편안합니까, 미워하는 쪽이 편합니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쉽습니까? 서운함을 고백하는 것이 쉽습니까?
용서하는 쪽이 쉽습니까, 분노를 간직하는 쪽이 쉽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천국에 가까운지 지옥에 가까운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이 어색하고 사랑의 표현이 어색하다면 당신은 천국과 멀리 있습니다.
남의 잘못이 보기 싫고 판단이 되며 쏘아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면 당신은 지옥과 가까이 있습니다.
천국에 익숙해지십시오. 천국의 삶을 훈련하십시오.
지옥이 불편하고 어색해지게 하십시오. 미워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어지게 훈련하십시오.
우리는 영원히 천국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을 병들게 하는 꾸짖음과 화냄과 잔소리와 비난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파괴하고 깨뜨립니다. 그것은 말하는 자나 듣는 자를 같이 파괴합니다.
그러한 모든 현상이 사랑의 결핍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는 특히 부모들은 얼마나 많이, 자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야할까요..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미안하다고, 아이가 잘한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별 일이 없을 때는 사랑한다고 자주 안아주면서 고백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양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밥을 먹듯이 자주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고백은 듣는 사람의 안에 스며들어가 그들을 조금씩 온전하게 만듭니다.
그들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게 됩니다.
기쁨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고 삶에 대해서 희망과 용기와 활력이 일어나게 되죠.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수도 없이 이용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버릇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간절하게 주님의 사랑의 품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부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오.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아름답게, 행복하게 천국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시편은 [내 영혼아, 깨어나라]고 자주 언급합니다.
에스겔 47장은 성전에서 흐르는 강물에 사로잡힐 것을 이야기합니다.
영혼의 깨어남은 실제적인 현상입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은혜의 강물에 빠지는 것도 실제적인 것입니다.
육이 죽고 영이 일어날수록 그는 주님의 임재에 대하여 선명해지며
말씀이 더 이상 문자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감동의 생명으로 누리게 됩니다.
영혼이 깨어날수록 그는 천국의 향취에 대하여,
그 영광의 세계를 맛보고 누리게 되며 자아와 세상의 사악함과 완악함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영혼의 깨어남을 구하십시오.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자에게 주님은 임하시며 그는 은총의 세계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름다와질 수 있으며 순결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아주 많은 것들을, 은총과 풍성함들을 누리고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언어로 주를 기쁘시게 하며 행동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며 생각과 상상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어떤 말이 내주하시는 주의 기름부음을 증가시키며 어떤 생각이, 어떤 고백이 내부의 기름부으심을 증가시키는지 알게 됩니다.
내면의 그리스도가 증가되고 자기를 지배하게 될수록 그는 바깥의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당신의 가슴을 찢으십시오. 우아함을 버리고 창자가 쏟아지듯이 주님께 당신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주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에게 나타나시며 능력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하여 소극적이더라도, 주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 적극적이 되십시오.
목숨을 던져 주를 구하십시오. 주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십시오.
갈망이 있는 곳에 주님은 오시며 당신은 그분을 가까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온 세상을 천번 얻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될 것입니다.
주님.. 올해가 주님께 완전히 미치는 해가 되게하옵소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은 미칠 것 같은 강렬한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절규하는 주님의 부르짖음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을 고백하는 고통의 고백입니다.
그 가슴을 찢는 주의 눈물 앞에서 우리가 같은 사랑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모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먹다남은 찌꺼기 음식을 주님께 던져 놓고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적은 시간과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중심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알기 원한다면, 당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내가 사는 삶은 사망이며 주님에 의해서 사는 삶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합니다. 살리는 것은 오직 주의 성령의 역사이며 나는 철저하게 무익하고 무능합니다.
오, 주님.. 오직 우리의 삶이 주님의 지배와 통제 속에 들어가게 하소서. 철저하게 묶여지게 하옵소서..
나의 계획과 의식이 모두 잠잠해지고 오직 주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만 기다리게 하옵소서..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며 천국의 영광을 미리 맛보며 천국의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주님.. 할렐루야..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얼마나 많이 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느냐, 주님이 나를 통해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을 받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발목에 차 있는 물에 잠겨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릎까지 물에 잠겨서 움직이는 것이 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영광의 주님이 바로 곁에 계신데,
그들은 주님의 그 찬란한 얼굴을 응시하지 않고 여러 의문들과 고통들과 문제들을 응시합니다.
그리고 슬퍼하고 괴로워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바로 곁에 계신 주님을 누리지 않고 스스로 어둠을 향하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요..
누구나 빛을 의식하면 점점 더 빛에 가까와지고 어둠을 의식하면 점점 더 어둠에 속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영광의 주님, 그 찬란한 빛을 바라보십시오.
그 영광의 빛 앞에서 세상 근심은 사라집니다. 자아의 초라함도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슬픔많은 세상에서도 충만한 기쁨의 빛 가운데 천국과 같이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을 깨우고, 영을 일으키고 영으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단순하고 어린아이같으면 되요.
항상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면 점점 더 영의 감각이 일어나게 되어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죠.
영은 아주 실제적인 존재에요.
영을 깨우는 많은 원리가 있지만 가장 단순한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거에요..
환경을 의식하면 육이 발전하고 사람을 의식하면 혼이 발전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면 영이 일어나게 되요.
그런데 오늘날 기도에서 대표기도만 보더라도 하나님을 의식하기 어렵잖아요..
자꾸 사람을 의식하죠.. 그래서는 혼만 발달하고 혼의 열매만 맺지 영이 일어날 수 없어요..
그래서 항상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의식해야 해요.
자든지 깨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해야해요. 그것이 신자의 삶이에요.
마음 속으로 [주님..] 하고 불러보세요.. 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일어나요.. 그것이 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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