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신앙인물

감동적인 선교사 이야기 - 닥터 홀의 조선회상

Joyfule 2018. 5. 12. 10:00

 

감동적인 선교사 이야기 - 닥터 홀의 조선회상

셔우드 홀 지음

 

은둔 왕국의 백인 소년

내가 열다섯 살이 되자 어머니는 내게 경제적인 자립심을 길러주어야겠다고 느꼈다. 나는 병원 신축 때 실제적인 경험을 얻었으므로 건설업이 내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조선에 파견된 두 선교사 가족들이 살 집이 필요했다. 이들의 집을 짓는다면 선교사들을 돕는 일도 되고 내 사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작업에 들어갔다.

 

1906년 8월, 평양의 선교사들은 원산의 의료 선교사인 닥터 하아디를 초청하여 모임을 갖기로 했다. 닥터 하아디는 아버지가 처음 부산에 도착했을 때 마중을 나왔던 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버지가 세운 평양의 교회에 와서 그는 조선말로 특별 예배를 인도했다. 그의 설교는 웅변적이거나 격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기의 가슴을 열어 듣는 이들의 마음이 그의 마음과 맞닿게 직선적이고 성실하게 설교했다. 나는 그날의 설교에 감동했다. 그 내용은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말씀에 있다. 무서운 지옥의 형벌을 피하고 상을 받아 천국에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산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알아 듣지 못한다. 인간이 자기 힘과 노력으로 잘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에서 구해주시는 그 힘에 있는 것이지, 반드시 내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시대를 통해 가장 놀랍고 귀한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이 말씀을 음미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 죄를 사해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높은 이상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수행하기 어렵다. 기억하라. 이러한 영적인 힘은 계속적인 기도로만 얻어질 수 있다. 우리의 체력이 날마다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유지되는 것같이 우리의 영적인 강건함도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만이 유지될 수 있다. 이때 우리의 목적은 인간의 영광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초점이 바뀌어진다.

 

닥터 하아디의 설교는 어린 내 가슴에 큰 파문이 되어 깊이 새겨졌다. 그 즈음 나는 서양으로 돌아가 사업가가 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내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졌던 그날 예배 후 의료 선교사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와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새해가 되면 언제나 새 설계를 세우곤 했지만 작심삼일로 끝나곤 했다. 내 의지만으로는 조선으로 돌아와 선교 사업을 하겠다는 결심은 이루어지지 못할 게 자명했다. 그러나 닥터 하아디의 설교에서 영적인 힘을 얻어, 마음이 열망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므로 나는 새 결심을 완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찼다. 닥터 하아디는 조선의 방방곡곡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고, 1907년에는 조선에 ‘대부흥’을 일으켰다. 그 시기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왔다. ‘은둔 왕국’의 새 기독교 신자 가운데 한 백인 소년도 있었다. 그가 바로 ‘나’였다.

 

1910년, ‘우리들의 의사’라고 불리워졌던 에스더가 10년간 병원과 성경학교에서 봉사하다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조선에는 폐결핵을 치료할 요양원 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게 있어서 에스더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그녀를 이 세상에서 앗아갔고 그녀가 사랑한 수많은 동족들의 생명을 앗아간 병. 나는 이 병을 퇴치하는 데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나는 반드시 폐결핵 전문 의사가 되어 조선에 돌아올 것과 결핵 요양원을 세우기로 굳게 맹세했다. 이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4년 전 닥터 하아디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준 말을 수없이 되새겼다. “높은 이상과 고상한 동기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실천하기에 미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