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56) 희망을 노래하며 사십시오
요한계시록 3장 19-22절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없이 책망만 많이 받은 교회였는데,
어떤 책망을 받았습니까?
1) 미지근한 신앙에 대해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2) 스스로 부요하다고 하는 교만함에 대해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겸손한 심령이 되라!"고 권고하십니다(17-18절).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이 무서운 이유는 교만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마음에 무엇보다 교만을 심었습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장이었는데 교만해서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하다는 것은 사실상 마귀가 그를 통제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으로 6가지,
즉 욕심, 혈기, 비판, 당 짓기, 정죄, 그리고 고집을 듭니다.
이 6가지 말은 그 뿌리가 교만에 있습니다.
프랭클린은 사람의 성품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교만이라고 말했습니다.
교만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적어도 겸손할 때만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 축복하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신 권면이 본문 19절 말씀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우리는 이 두 번째 권면에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여전히 라오디게아 교회를 아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가 책망만 받은 두 교회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중 하나였고,
그 두 교회 중에서도 더욱 심하게 책망 받은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정말 미워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는 무서운 표현이 나옵니다.
"너의 미지근한 신앙이 내 속을 터지게 했으니
너를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표현 같습니다.
게다가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한 모습까지 있으니
정말 라오디게아 교회는 희망이 없는 교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9절 말씀을 보면 전혀 분위기가 다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은 바로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도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희
망이 없는 교회인 줄 알았는데 주님은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다 없다 하는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아무리 잘되어도 희망이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리 못되는 것 같아도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의 근거는 '나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항상 사랑의 하나님을 붙들고 희망을 노래하며 사시지 않겠습니까?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