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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대한 단상

Joyfule 2015. 3. 7. 07:49

 고난에 대한 단상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고난과 역경은 누구나 싫어한다. 그래서 극심한 고난을 해결해 보려고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온 사람도 적지 않다. 당신도 예수를 잘 믿으면 고난을 해결 받고 부유하고 형통하게 살게 된다는 투의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껏 교회 일에 헌신하며, 예배의식을 무한반복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를 믿은 이후로, 고난과 역경을 작별하고 평안과 행복의 8차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계신가?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그러나 아쉽게도,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성경에 있다. 그 말은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다. 아니, 고난을 피해 교회에 왔는데, 다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그 얘기는 우리 교회의 설교에서 못 듣던 말인데? 그런가? 당신네 담임목사가 설교의 주제로 즐겨 사용하는 말씀은 아닌지 몰라도, 성경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이다.

 

위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고난은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기위해 피할 수 없이 맞닥뜨리는 고난이다. 오홋 그렇다고? 그래서 교회 일에 막대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 부으며 고난을 감당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은 당신의 희생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생각이 결코 없으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진전능한 분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시는 그저 그런 신에 불과할 것이다. 설령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했더라도, 당신의 교만은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수많은 주의 종과 은사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이 목이 꼿꼿하고 교만한 이유이다. 은사자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놀라운 이적과 기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고, 목회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교회가 부흥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겪었던 고난에 대한 보상으로, 교인들의 헌금을 받아서 폼 나게 쓰고 칭찬과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아마 작금의 대형교회를 일군 원로목사를 비롯한 담임목사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라는 말씀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원동력은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 경험이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여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주의 종과 은사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기는 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 없다. 그래서 갖은 고난 끝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교회가 부흥되면서, 사람들의 칭찬과 함께 박수를 쳐주면 어깨를 으쓱해하고 당연해 한다. 그러나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한 사역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대접하고 박수를 쳐줄까봐 은근히 겁을 낸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2:41)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자 마음이 찔려 초대교회에 입교한 사람들의 수효가 하루에 삼천 명이나 더해졌다. 그 당시 초대교회의 교인들의 숫자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수천명이 족히 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베드로가 목이 꼿꼿하고 교만해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왜냐면 교인들이 기독교에 입교한 이유는 사도들의 기적과 이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이 어디에서 공급되었는지를 알았기에, 다만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뿐이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19:12)

 

이번에는 사도바울의 영적 능력을 한번 살펴보자. 위의 말씀은 사도바울에게 부어진 성령의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다. 사람들은 바울의 기도가 아니라, 바울이 지니고 있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어도 병이 낫고 귀신도 쫓겨 나갔다고 전하고 있다. 요즘으로 치자면, 최고의 영적능력자와 은사자인 셈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고 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까봐 전전긍긍할 정도로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었다.(고전9:27) 그 이유는 자신의 영적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4~27)

 

베드로나 바울이나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들이 전도하면서 얼마나 고난이 극심했는지 위의 말씀을 곱씹어보라. 이들은 이런 고난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고통을 자초하다가, 처참하게 순교를 당함으로 이 땅을 떠나갔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구원을 위한 사역에 맞닥뜨리는 고난은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나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영혼구원을 하다가 맞게 되는 고난을 기뻐하지 않는다. 수많은 주의 종이나 평신도 사역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면서 겪은 고난에 대한 보상을 이 땅에서 받아 누리고 싶어 한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싶어 하는 것과 다름이 사악한 일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겪은 고난은 아름다운 것이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들지 모르지만, 그 고난은 이 땅에서가 아니라 천국에서 넉넉하게 보상받게 될 것이다. 수많은 순교자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그렇게 고난을 즐기다가 이 땅을 떠나갔다. 당신이 천국에서 그들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면 그들과 같이 이 땅에서의 보상을 기대하지 말기 바란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