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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와 쿠치 사이에서

Joyfule 2009. 10. 4. 22:18
구찌와 쿠치 사이에서

 

베트남 호치민에 선교사 대회 강사로 다녀왔다. 여정을 인도하던 선교사님이 준비없이 호치민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구찌 보러 가자면 아주 기뻐하며 따라 나온다”고 말한다. 그런데 교외로 한참을 달리면 “도대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단다. 그래서 “쿠치 터널 보러 가는 길”이라고 하면 다시 “거기가 경치 좋은 곳이냐”고 되 묻는다고 한다. 그때 비로소 쿠치 터널(cu chi tunnel)은 과거 베트콩들이 게릴라 운동을 하던 본거지라고 설명을 한단다.

구찌(Gucci)와 쿠치(Cu chi)의 유사 발음이 묘한 감상을 자극한다. ‘구찌’가 전시되는 곳이 우리의 안목의 정욕을 자극한다면, 아마도 ‘쿠치’에서 우리는 역사를 보는 안목을 자극 받아야 할 것이다. 무시 무시한 부비 트랩들, 살벌하게 날을 세운 쇠창살들, 베트남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현장에서 나는 계속 구찌와 쿠치의 두 단어의 연관을 묵상하고 있었다. 과연 구찌와 쿠치는 무관한가? 무엇이 전쟁의 원인이란 말인가?

성경 야고보서에는 너희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4:1)고 적혀 있다. 전쟁의 원인이 한 나라나 두 나라 혹은 한 두 지도자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우리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보면 구찌에 대한 탐욕이나 쿠치의 참혹한 역사의 배후에 얽힌 권력자들의 정치적 탐욕이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쿠치 관광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는 상술도 다를 것이 없는 욕망의 현장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백년전 태어난 칼빈은 성경을 읽으며 인간의 ‘전적 부패’를 말한 것이다. 이런 인생의 구원의 길은 또한 ‘전적인 은혜’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비로소 쿠치 터널을 어둡게 덮은 베트남의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을 기도할 수 있었다. 과거에 베트남 군인들을 항복시키고자 이 터널속으로 부어 넣었던 폭탄과 가스, 그리고 물 대신 우리가 이제 이 땅에 부어야 할 것은 오직 은혜의 복음뿐일 것이다.

오늘 날 베트남의 권력들은 경제적 실용주의의 정신으로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도 무역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가담한 가학의 죄가 있는 우리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 통상을 시작하였고 심지어 한국 교회 설립을 허락하였고 한국 선교사들을 선교사인줄 알면서도 수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일은 꼭 하나 뿐인 것이다. 구찌(?)를 팔기보다 베트남인들의 마음의 쿠치 터널에 사랑을 붓는 일이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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