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Joyfule 2024. 2. 29. 17:13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8:1)



 인간들은 자존적인 자신을 좋아하는 휴머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종교를 갖고 자신의 유익을 찾는 신앙을 선호합니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성경 속에 있는 자신을 찾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하나님은 당신이나 만나고 우리는 당신이

말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므로 모세와 같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이게 바로 아담 안에서 죄를 가진 인간의 성향이기 때문에

중세에는 아예 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하여 천국 문을 막아섰고

지금은 성경은 오픈이 되었으나 진리의 성령을 가리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천국이 이루어진 사실을 가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알게(요5:39) 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시기에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거나 진리의 성령이 임한 사실을 모르게 하는 거나

천국 문을 막는 것은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어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아 자신의 유익을 꾀하다가 죽고 나서 천국에 가겠다는 사람들의 기호를

맞추다가 진정한 성경적인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구원이 시작도 안 된 수많은 신자들이 교회당을 들락거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Q. 우리의 소속을 파악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A.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진리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온

상태이며 곧 구원을 위한 조건이 성립된 상태입니다.

로마서 8장 안에서는 죄 사함이라던가 구원을 얻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건 이미 5장, 6장을 거쳐 왔기 때문입니다.

4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 받습니다.

그게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5장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아담에서 그리스도에게로 넘어 왔습니다.

6장에선 그리스도와 나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 어떻게 연결되느냐? 설명합니다.

7장에선 인간이 왜 율법을 순종하지 못하느냐 의의 병기가 왜 안 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탄식이 나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는

승리의 노래가 뒤따라 나옵니다(롬7:25)  

 

고전15:57절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오니.”

죄가 주는 월급이 사망입니다. 사망이 죄 있는 사람에게 어두운 기운,

어두운 감정, 어두운 마음과 생각을 줍니다. 이김은 사망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살아나고 그 빛에 의해 밝음이 됩니다. 

이를 두고 이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하는 말씀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영적인 상태에 들어온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롬8장 안에는 어디에도 정죄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정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죄와 사망의 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죄는 죄를 집행한다는 뜻인데 그리스도 안에는 죄가 없으므로 집행도 없습니다.

롬8장에서는 확실히 안과 밖이 갈라집니다. 성 안과 성 밖이라는 의미입니다.

성 안에는 빛이고, 성 밖은 어둠, 성 안에는 자유이며 밖에는 정죄가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아주 단호하게

‘이제부터는’하고 단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빛 가운데 있으면 자신이 있고 당당하지만,

어둠에 있을 때는 아담과 하와처럼 숨을 곳을 찾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입장에서 그 자녀들을 우월하게 

인정하는 쪽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바울이나 이 사람들이 육체적으로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관점에서 굉장한 우월감을 주는 쪽으로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봐야만 그 안에 자신의

영광과 존귀가 나타나는 겁니다. 성경만이 나의 우월함과 나의 가치를 인정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이제부터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강력하게 못을 박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매우 큰 우월감을 주기 위함입니다.

진리의 성령은 그리스도에게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참 놀라운 구원의 길이며 어마어마한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가 이룩하신 대속 사역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생명의 공급하심, 

우린 이 양쪽을 다 믿고 수용해야 합니다. 예수가 하신 일에도 우리가 동참이 되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셔서 일하심에도 동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설명합니다(행2:36) 

그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 안에 계십니다. 진리는 항상 현재 상태입니다.

현재 상태에서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합니다. 이를 두고 영생이라 합니다(요17:3)

시대마다 구원의 메시지는 각각 달랐습니다.

율법 시대는 율법을 보고 은혜와 진리의 때가 오는 것을 믿고 바라보면 구원이었습니다.

은혜 때는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면 구원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내게 받아들여 적용하면 구원입니다.

공관복음은 예수가 하신 일이고,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다’ 하는 복음이 전파됩니다.

로마서는 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서신은 그의 몸 된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가 어떻게 적용되어 충만해져 가는가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말은 그리스도와 한 집안 식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여전히 정죄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이고 믿지 않는 자는 그 자체가 이미 심판입니다(요3:16,18)

심판을 받았다는 증거는 그 말씀을 받을 때 나도 모르게 정죄감을 받습니다. 

말씀에 대한 정죄감이 바로 심판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와 그리스도는 같은 분이지만 차원이 서로 다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다로부터 탄생하셨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 안에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이 계시는데 그가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그가 부활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롬1:4)

다윗의 혈통으로 나신 예수가 죽으시고, 죽음에서 다시 사신 부활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고, 그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우리가 받았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 5장 16절에서 바울은 예수를 내가 육체대로 알지 않노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내가 육체대로 알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 이 세 분으로 마태복음 1장은 끝납니다.  

그 다음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혈통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는데 스테판 역을 보면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쫓아 행하여 사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누구냐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본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쫓아 행하는 자들이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어떻게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신앙은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체적 사실을 믿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