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율법에 대한 대접은 어쩌란 말인가?

Joyfule 2024. 3. 2. 21:33


   율법에 대한 대접은 어쩌란 말인가?(롬8:3-4)



로마서적인 구원이 왜 필요한가는 롬8장이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롬8장 안에 발견이 되고 그 안에서 발전이 없다면

당연히 율법 아래에 낑낑대고 있는 죄인의 자리에 있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예수 영접을 다시 해야 한다거나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진리의 성령이 그리스와 하나가 된 것을

알게 하시고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므로 예수 영접이니

성령세례를 다시 받아 방언을 해야 하느니 하는 육신에 속한 어린아이의

말은 하지도 듣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온전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떤 신학교의 학장의 설교내용대로 우리는 의롭게 된 죄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고 죄와 사망의 법이 주장하는 죄인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옛 사람은 장사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죄인이라는 말은 천부당만부당합니다.

문제는 십자가 앞 죄인의 자리에서 예수를 믿고 회개를 한다고 하는 거듭나지도

또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영생을 알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Q. 율법의 요구를 어떻게 이루어가나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서 육신에 죄를 정하사"

 

A.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신령한 율법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가 없음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죄 없다 하는 자들의 입을 막고 죄 가운데로 끌고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몽학선생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으심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갈3:13)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가 없지만 우리 대신 주께서 죽으시므로 그 율법의 저주를

갚고 우리를 그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놓아주시고 지금은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우리를 율법의 저주인 사망에서 십자가로 건져내어 놓아주시고 붙드십니다(히2:15-16)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히2:3) 구원이 시작도 안 됩니다.  

 

Q.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조건이 뭔가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A.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좇아 행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를 받지 않음도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함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율법에서 해방시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적용이 되는 자리로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고 세례(침례)를 받고 따라 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작동이 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생명의 에너지라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롬8:11)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 능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한다고 믿으세요.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수가 없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회개와 세례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서 영을 좇아 행하면

율법의 요구인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율법 아래 죄인이 된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죄와

사망의 법과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에너지에

의해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살므로 율법의 요구(의)인 사랑을 이루어 갑니다.

그로 인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행하려는 그들의 의와는 차원이

다른(excellent) 의를 이루어가는 천국백성이 되게 하십니다(마5:20)

하나님은 율법 아래에 죄인으로 있을 때에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일차적으로 이루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살 때에 거룩함과 영광이 나타나서 드디어 사랑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의 기도를 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겁니다(요17장)

따라서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요일4:18) 하심은 사랑을 정죄할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