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소속이 바뀌면 법도 바뀐다

Joyfule 2024. 3. 1. 13:06


   소속이 바뀌면 법도 바뀐다(롬8:2)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와서 한국시민권을 얻으면

대한민국 법에 의해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선교지에 머문 경험에서도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새 언약의 말씀이 교회에서 제대로 전파되지 않으니 계시록이

새 언약이라고 떠들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고 내 버려두고 있습니다.

단호하게 말하지만 계시록이 새 언약이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허긴 예수를 믿고 예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사람들이 새 언약을 알까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있는 주의 계명이

진리의 성령에 의해 이루어져 그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나타나시는(요14:21) 체험을 할 수 있을까요?

만일 새 언약을 모르면 주의 계명을 지켜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요15:10) 것도 모릅니다.

빼앗긴 들에는 봄이 오지 않는 법이듯 아담 안에서 죄를 가진 인간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봐도 죄와 사망의 법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사랑을 이루어 사랑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Q.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A. 나라가 바뀌고 소속이 바뀌고 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13장의 천국의 비유가운데 좋은 땅이 타고난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평생 백배 육십 배 삼십 배 타령만 하고 정작 수확은 백년하청이 되고 말 겁니다.

그 좋은 땅은 거듭난 땅이며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의 심령입니다.

천국이 되었으니 주님이 천국의 비유라고 말씀하시지 주님께서 윤리나

도덕을 놓고 천국 비유라고 우리들을 데리고 퀴즈게임을 하시겠습니까?

좋은 땅은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이 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법이 바뀌었습니다. 영적 원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예’ 아니면 ‘아니요’ 하라고 하셨습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언제나 원칙이 중요하고 기본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원리 곧 법은 인간의 유 불리의 실용주의가 아닙니다.

신앙은 의냐? 불의냐? 하는 싸움이지 나의 유 무익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아래 있다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건너 왔다는 이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이 생명의 성령의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잊거나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반복적인 자백(요일1:5-9)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의 도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일입니다.

또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마5:5)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온유는 자신과 그리스도를 맞바꾸는 exchange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의 곧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간절히 구할 수 있는 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으니 그 법인 의를 구할 수가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육신을 좇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신음하다가 주께서

이룩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르는 영적 원리를 따라 

제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을 보고 함부로 죄인이라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있는 사람의 회개는 선악간의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아는 사람의 회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길을 따라 가는 회개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의는 나타나고 성령의 내주 역사하심을 항상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롬14:17)

지금 성경이 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성향이며 원리를 말하는 겁니다.

그 결과가 잘못되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단수)와 그 결과인 죄들(복수)은 서로 다릅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항상 결과를 감추는 외식에 빠지고 맙니다.

그만 죄가 안으로 파고들어 숨고 맙니다.

가식도 연기를 10년만 하면 습관이 되어 그게 본성인 줄 착각합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람과 어린 신자가 다른 것은 어린 신자를 보는 대로

말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르는 영적인 원리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을 발견하면 가만히 지켜보는 겁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을 아는 사람도 육체를 따라

조급과 충동을 받아 열을 받기도 하고 악하고 독한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나 이틀을 가만히 기다리면 말씀과 기도로 제자리로 돌아와

완전히 딴 사람처럼 언행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이란

돌부처처럼 표정이 밋밋하고 묵묵히 맡은 일을 무던하게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의 사람은 빛과 어둠, 생명과 사망의 간극을 알고 얼른 내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영적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의 행동을 보고 비방하고 정죄합니다.

하나님은 이 원리를 생각하시고, 우리는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판단 기준을 갖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관점 사고방식 그것이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뭐래도 아무리 험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 믿고 세례(침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 옮겨 앉았으면

죄와 사망의 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구가 두 쪽이 난다 할지라도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다만 선악과의

독성에 의한 죄성과 악성에 찌든 육신의 생각이 이를 확신하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