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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인가? 단식인가? 참 된 금식의 의미는?

Joyfule 2021. 10. 7. 07:38


 

 

 

   금식인가? 단식인가? 참 된 금식의 의미는? 

 

 금식에 대한 질문(슥 7: 1-3절)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한 계시:

 

다리오 왕 사 년 구 월 곧 기슬래월 사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바벨론 다리오 왕 4년 구월(기슬래월="키쓸레우"<히>) 4일은 유대력 9월에 해당하는 바벨론 월력이다. 즉 우리 달력으로 주전 518년 12월 7일 경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였다.

 

금식의 날:

바벨론 때부터 유대 백성들에게는 금식의 날이 있었다. 특별히 5월 금식의 날에는 울며 금식하였다.

 

금식을 계속할 것인가

벧엘 사람들(바벨론에서 귀국한 벧엘과 아이 사람 223명<에스라 2:28>)은 성전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 지를 질문하였다.

참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임하다(슥 7:4-14절)

 

스가랴에게 임한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

70년 동안의 5월, 7월 금식은 진정 누구를 위한 금식이었는지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수사학적 질문을 한다.

 

이스라엘은 언제, 어떻게 금식하였을까?

이스라엘 금식의 특징은 하나님이 아닌 모두 사람이 스스로 제정한 금식일이었다!

첫째 4월 금식은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략 당함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금식의 날이었다(왕하 25:8).

둘째 5월 금식은 성전이 불탄 것을 목격하고 인간적 슬픔을 표현한 금식이었다(왕하 25:8-10).

세째 7월 금식은 예루살렘 멸망 후 예루살렘 임시 총독으로 있던 그달리야가 이스마엘에게 암살당함을 애도하여 금식하였다(렘 40:7).

넷째 10월 금식은 느부갓네살에게 예루살렘 성이 포위당한 것을 애도한 금식이었다.

 

동기가 잘못된 금식에 대한 책망:

 

하나님은 그들의 금식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책망한다. 우리들의 금식도 주로 직장, 취직, 결혼, 돈 문제, 병 치료 등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금식은 순종을 위해, 충성을 위해, 직분 감당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와 충성의 의미가 강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정식 금식일이 있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금식일이 있었다. 그것은 오직 대 속죄일 단 하루가 있었다(레위기 16:29).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1)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

(2)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공정하게 재판할 것

(3)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할 것

(하나님이 보시는 약자 4 부류= 과부, 고아, 나그네, 궁핍한 자) 등이 있다.

 

불순종하면 금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슥 7: 11-1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금식을 안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돌같이 굳어져서 청종하기를 싫어하고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불순종으로 인한 재앙이 있음을 기억하라! 12절 "금강석"은 “솨미르”(히)로 원뜻은 “단단한 물건”(완악하고 강퍅하여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음을 말함)으로 금강석 같이 고집스럽게 불순종하는 마음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삼을 의미한다. 14절 "회리 바람과 황무"는 불순종하면 아무 것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음을 말해주는 단어이다.

스가랴서 금식의 신앙적 적용과 가르침

 

1) 자기 유익을 위한 제멋대로의 금식과 믿음에 대한 경고

유대 백성들은 자기들 멋대로 자기 유익을 위해 금식일을 정하여 지켜오고 있었다. 한국교회의 자기 식 믿음과 많이 닮은 모습이다.

 

2) 금식보다 더욱 중요한 것

금식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1)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과 (2) 공정한 재판과 (3) 약자에 대한 배려(사 58: 3-7)이다.

 

은혜 시대의 금식에 대해!-예수님이 보신 금식

 

(1) 예수님도 금식을 인정하심:

영적 성장과 심신의 치유와 신앙 성장을 위해 금식이 필요하기는 하다. 예수님도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기 위한 금식은 정당한 수단으로 인정하셨다(마 9:14-15).

 

(2) 금식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

예수님은 구약 선지자들의 금식에 대해 공감하셨음에도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금식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반대하셨다(마 6:16-18).

 

(3) 금식은 단순한 단식이 아니다(금식에 대한 스가랴서 내용을 은혜 시대에 적용)

금식은 단순한 단식이 아니다. 믿음 없는 금식은 단순한 단식일 뿐이다. 스가랴의 본문은 금식의 궁극적인 동기가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금식이냐 단식이냐의 차이는 금식의 근본 동기가 하나님 영광이냐 아니면 "나 잘 되라"는 기복적인 것이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T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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