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창조과학 |
이은일 |
V.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비교
1. 기독교
여러 종교 중에서 기독교는 그 배타적인 성격으로 인해 비판을 받는 종교중의 하나이다.기독교의 독특성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강조인데, 많은 종교가 사람들의 믿음체계로부터 성장했다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성경을 근거로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인격적인 존재이며, 창조주라고 주장된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중심이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명은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신뢰의 상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함으로써 (존중의 상실),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이해의 부족) 결국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어찌하든 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셨다.
관계의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일으키셔서 그 민족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다시 보여주셨다.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면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진 사람들을 심판하는 거룩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셨다. 또한 성경이 기록되게 하고 읽혀지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들을 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이해'와 '존경 (경외)'의 요소가 중심인 것이다.
관계 회복의 결정적인 것은 용서다. 용서란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죄인과 그 죄인을 용서하는 피해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창조한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하나님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사람을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의 회복이 이뤄진다.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과정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신의 죄를 의식하는 것이고, 둘째는 용서를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죄인 입장에서는 용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죄책감이 남아있는 것이 문제이고, 하나님 입장에서는 용서를 하더라도 죄를 지어 거룩하지 못한 사람을 다시 거룩하게 해야 거룩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데 거룩하지 못한 상태를 거룩한 상태로 회복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셔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는 형벌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셨다.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당했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에 대한 모든 결과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죄가 없어지고, 죄에 대한 죄책감도 없어지고, 다시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사람은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창조물로 회복되고, 거룩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흘리신 피로만 거룩한 인간으로 회복되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회복을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영원한 삶을 하나님과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면 세계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닮은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 안에서의 영원한 삶은 산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산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육체적인 부분이 죽지 않는 영원한 존재로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런 육체적인 변화가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때 이뤄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영적인 관계 회복 뿐 아니라 육체적인 부분까지도 포함한 온전한 관계회복을 위해 오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가 회복한 사람들은 육체적인 부분도 회복될 것이지만,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다시는 없는 것이다.
2. 카톨릭교
카톨릭교와 기독교와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카톨릭교는 착한 행위(선행)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관계라는 측면에서 이것을 해석하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용서함을 받는 것과 선행 모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선행은 그 결과이지, 관계 회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체적인 카톨릭과 기독교의 교리상의 큰 차이는 '교회'과 '제사장'에 대한 개념이다. 카톨릭은 교회(로마 카톨릭)의 권위가 신적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교황도 오류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변화가 있긴 하지만). 기독교는 성경만이 신적인 권위가 있고, 눈에 보이는 교회가 성경위에 세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오류가 없는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사장'이란 하나님과 죄지은 사람 사이에서 끊어진 관계를 '제사'라는 제도를 통해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카톨릭은 이런 역할이 사제(신부)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기독교는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인 제사장 개념).
카톨릭이나 기독교는 모두 성경을 근거로 하고 있음에도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종교적 전통의 영향 때문이다.
3. 이슬람교
마호멧교는 잘못 부르는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을 무슬림(Muslim) 또는 모슬렘(Moslem)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복종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슬람교는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중시한다. 예언자 마호멧의 가르침을 절대시하고 그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한다. 이슬람교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슬람교의 천국의 개념은 기독교처럼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강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의 천국은 술이 흐르는 강, 언제나 섹스의 대상이 되는 여인들로 가득 찬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슬람교는 매우 남성 중심적인 종교이며, 외적인 순종을 강조한다.
이슬람교는 유일신 알라를 숭배의 대상으로 하며, 성경을 비롯한 여러 개의 경전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예수를 단지 선지자 중의 하나로 생각하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여러 경전이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 있지만, 마호멧의 코란이 가장 우월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슬람 신앙의 다섯가지 지주는 다음과 같다. 1) 신앙진술: '알라외엔 다른 신이 없으며 알라신의 예언자는 마호멧'을 사람들 앞에서 반복한다. 2) 기도: 매일 다섯번 성지메카를 향해 이 의식을 지켜야한다. 3) 자선행위: 총수입의 40분의 1을 자선에 바침(과부,고아, 불쌍한 사람들에게). 4) 라마단(음력9월):한달동안 금식, 해가 지면 잔치를 한다. 5) 메카순례: 생에 최소한 한번은 메카를 순례(하지).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있다. 기타 지하드(성전)등이 있다.
4. 힌두교
흰두교는 인도의 여러 종교적 형태를 총칭하고 있는 것이며, 실제적인 그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전체적인 개념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보고 살고 있는 세상은 마야 (임시적이며 아무 뜻이 없음)이고 계속적인 환생을 통해 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간의 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흰두교의 신들은 인간과 같이 희노애락이 있고, 인간은 신이 되는 것이 목표이고, 인간은 안개와 같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인간의 죄, 관계의 파괴 등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오직 관심은 죽은 후에 어떻게 환생할 것이냐 이다. 흰두교의 가르침은 현실을 무시되고 죽은 후의 환생을 위해 명상, 요가, 선행 등이 강조된다.
흰두교는 기원전 2000년경 크게 번성했던 아리안 족들이 인더스강 유역을 정복했을때 두각을 나타내었다. 베다(Veda) 계시받은 지혜라고 믿고 성스럽게 생각(여러 신들이 가득 기록)한다. 기원전 500년 베다에 기록이 추가되어 계급제도를 확립되었다.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무사), 바이샤(농부), 수드라(노예)의 네 개의 계급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마지막 계급인 노예는 베다를 들을 수도 없고 베다를 이용해 구원을 얻을 권한이 없다.
기원후 1,000년 경 대중적 흰두교가 등장하여 라마야나와 마하바라와 같은 새로운 문서가 나타났다. 바가바드 기타(신들의 노래) 크리슈나 신을 숭배하여 구원에 이르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인도에는 3억 3천만의 신이 있는 셈이고(힌두교인 한명당 한명의 신이 있는 셈), 이중 비슈나신(2억명정도가 숭배, 최소 10회나 인간들에게 출현했다고 주장함 거대한 거북이, 석가 등), 시바(생식의 신, 수백만)등이 숭배자가 많다.
5. 불교
불교는 힌두교로부터 나온 것으로 대중적 흰두교가 등장한후 인도에서는 사라졌다. 불교는 도타마 시다르타(기원전 560년경 인도국경 네팔의 룸비니 출생)가 창시하였다. 힌두교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한 나무밑에서 40일 주야로 묵상한 후 자신의 생의 뜻과 구원에 대하여 설법을 시작하였다. 그를 부처(Buddha)로 부르게 되고, 승가를 창립하여 45년후 부처가 사망할 때까지 수천명이 그 종교를 받아들였다.
불교는 8정도를 행하면 누구나 열반에 이른다고 가르친다. 즉, 구원은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데,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고 가르친다. 흰두교와의 차이점은 흰두교는 세상에서 생은 아무 뜻이 없다고 하지만 불교는 이 세상에서의 생이 매우 현실적인 것이며 고통은 실재하므로 세상에서 벗어나 해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고통을 통해 죄를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이고, 불교는 깨달음을 통해 고통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불경은 석존의 제자인 마하가섭이 중심이 되어 아난다와 우바이가 기억하고 있던 석존의 가르침을 선포한 것이다. 석존의 제자들은 각기 달리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서로 질문하고 확인해서 정리하였다. 회중들에게 큰 소리로 암송하여 그 교법을 심었는데, 이러한 모임을 결집이라고 한다. 석존이 세상에 떠난 후 2백년동안 결집이 세번 또는 네번있었다. 이 최초의 경전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인도와 중국에서 수정과 개정, 증보의 과정을 거치고, 대승불교도들에 의해 창작되기도 하였다.
한 두세기는 하나의 경전으로 오다가 교단내부에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 나뉘면서 분열되고 어느 시기에는 20개정도의 분파가 서로 대립하여 다른 경전을 가졌다. 이후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나누어지고 대승불교는 여러 파로 나뉘다가 마지막에 출현한 것이 밀교이다.
20세기의 불교형태는 티벳에서는 귀신을 숭배하는 불교, 일본에서는 군사적이고 국수적 창가학회(Soka Gakkai), 몽고등에서는 라마교형태로 되어있지만, 불교의 큰 두가지 형태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이다. 소승불교(작은 수레의 교리, 테라바다 불교 - 연장자의 도)는 운 좋은 소수만이 즉, 부처의 도를 정확히 따르는 사람만이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승려의 생활을 강조하고, 승려들을 위해 토지와 금전을 기증하게 함으로써 승려되는 매우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된다. 스리랑카, 버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성행하고 있다.
대승불교(위대한 수레)는 부처가 45년간 지상에 생존한 것은 그가 인류를 구하기로 결심한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부처(와 그와 같은 사람들)는 인류의 한 구세주로 여긴다. 중국, 티벳, 일본, 베트남,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다.
6. 뉴에이즈 (New Age)
뉴에이즈는 흰두교의 가르침과 유사하다. 환생과 업보를 주장하고, 모든 것이 신이고 인간 존재의 내면에 잠재된 신성을 깨우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적인 초자아와 합쳐지는 것이 참된 자아로 회복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각 사람이 독립된 존재로서 관계를 형성하는 것보다는, 존재 자체가 초월적인 존재로 흡수되는 것을 중시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점성술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마릴린 퍼거슨 '물병좌의 음모'라는 책에서 이 시대를 '물병좌 시대' 즉 새로운 시대라고 일컫는다. 삼백년동안의 서구 물질주의와 세속주의 후에 이 지구상에 널리 퍼질 새로운 영성의 기운이 떠오르고, 의식의 진보를 통해 이 우주선(지구)의 키를 조종한다고 주장한다. 초월의식을 강조하고 지성, 도덕성을 초월하는 의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셜리 맥크레인의 말에 잘 나타나있다. '세상에는 진정으로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류가 깨달을 때까지는 평화가 없을 것이다.'
7. 샤마니즘
샤마니즘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귀신들에 의해 화와 복이 온다는 것이다. 귀신을 화내게 하지 않고 달랜다는 개념을 갖고 있지, 인격적인 관계에 대하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8. 기독교의 이단들
기독교의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부정한다. 기독교의 이단들은 유니테리언(예수님의 신성 부인), 여호와의 증인 (새 교리를 준수), 크리스챤 사이언스 (물질은 환상, 뉴에이즈와 유사), 몰몬교 (인간도 결국 하나님이 됨), 통일교 (다시 온 예수 - 문선명)등이 있다.
참고사항
1. 강사 이은일
- 생년월일: 58년 1월 22일
- 학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박사) 졸업
- 현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부교수
2. 교재: 1) 강의록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음
www.kacr.or.kr -> 창조과학 자료실내 -> 게시판 자료실
'명지대강의록2000 한글파일'
2) 기원과학 (한국창조과학회 편, 도서출판 두란노)
3. 강의계획
1) 강의록 '서문 및 서론'
2) 강의록 '내면 세계와 세계관'
3) 강의록 '과학적 사고와 세계관의 변화'
4) 강의록 '신비주의와 UFO, 외계인'
5) 기원과학 '서론'
6) 기원과학 '생명의 발생설'
7) 기원과학 '열역학적 고찰'
8) 기원과학 '생물학적 고찰'
9) 기원과학 '현대 지질학과 대홍수 I'
10) 기원과학 '현대 지질학과 대홍수 II'
11) 기원과학 '화석학적 고찰'
12) 기원과학 '완벽한 설계'
13) 기원과학 '연대측정의 과학성'
14) 기원과학 '성서적 창조론'
15) 평가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창조론/창조교육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K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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