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목회칼럼 - 사람을 바라보며
어느 훌륭한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그의 인격 또한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조각가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훌륭하게 사람을 조각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아주 상식적이었지만 의미심장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사람의 모습을 닮지 않은 부분만을 쪼아냈습니다.
그랬더니 오직 사람의 모습만 남았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말입니다.
역사가 나은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할 때마다
“돌 속의 사람을 해방시켜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돌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돌을 쪼아내는 작업은 돌을 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해방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의 작업의 대상은 돌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돌덩이에서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의 형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목회가 힘들다면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성을 채워야 하는 과도한 부담감...
그것은 때때로 목회자로 하여금 사람을 기피하게 만드는 목회 증후군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기도원에 올라갔다가 몇 분의 목회자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바쁜 목회 일정 속에서 기도원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모두 사람 때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교우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견디다 못해서 기도원을 찾았다는 한숨 섞인 푸념을 들으면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목회가 도리어 사람 때문에 참 힘든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목양을 감당해 갈수록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요성을 저에게 인식시켜 주십니다.
사람의 강점을 보는 눈을 계발시켜 주셨습니다.
생전 처음 만난 분이라도 몇 분의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의 내면 깊숙이 개발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강점을 대할 때마다 제 심장이 펌프질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막상 당사자는 그런 강점이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말입니다.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제 눈을 열어 주십니다.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모든 교우들 속에 잠재된 무한한 영적 잠재력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교우들을 바라보노라면
온 교우들 내면의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잠재된 그 위대한 가능성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저로 하여금 영적 조각가가 되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교우들 삶 속에 감춰진 무한한 영적 잠재력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를 좌절케 하는 부정적 요소를 깨뜨려내고,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해 주신 영적 능력을 밖으로 돌출 시키는 사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위대한 영적 조각가가 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아름다운 영적 조각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선포하며, 기적을 창출하고픈 것이 저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역사를 이루는 일을 위해 ‘사람’을 세우심을 발견했습니다.
놀랍고 위대한 일이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사람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를 늘 기도합니다.
사울의 실패는 사람의 가치를 볼 줄 아는 능력부재에 그 이유를 둘 수 있습니다.
사울로 하여금 사람의 가치를 깎아 내리기 위해 ‘악신’이 얼마나 역사했습니까?
반면에 다윗은 사람의 가치를 볼 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인간학은 ‘사람에 대한 혐오의식’을 조장합니다.
사람의 무한가능성보다 단점을 부각시킵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하여 경계심을 늦추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사람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도외시 하지 않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며 키우는 ‘사람세우는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십시오.
사랑과 감사로
목회실에서 김지성목사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