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목회칼럼 147 전도는 주님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수년전 아리조나의 호피부족을 방문했을 때 참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전에 아리조나 인디언하면 떠올렸던 생각을 가지고 찾아간
인디언 보호구역의 모습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황량한 벌판... 미국땅에 위치한 곳이면서도
전혀 미국이라고 생각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과 모습을 가진 곳...
그러기에 호피 인디언을 대하면서 도저히 문화적으로, 관습적으로,
또한 제가 살아온 삶의 방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와는 완전히 별개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처럼 생각되어 접근하기가 무척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주간 그곳에 머물며 전도의 의미와 개념을 깊이 느낄수 있었습니다.
전도는 주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위대한 사역임을 말입니다.
저는 그 고독의 땅에서 주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존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영혼'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향하여 주님이 가지셨던 비젼(one-man vision)은
주님 자신을 십자가 앞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보이신 통곡의 기도는
바로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기도였습니다.
고요하고 적막한 황야의 한 복판에서 분명하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은
"내가 온 천하보다도 귀한 한 영혼을 위하여 내몸을 깨뜨렸노라"는 소리였습니다.
전도는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였기에 행하여야 하는 무조건적 순종의 행위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생각납니다.
담임 선생님이 원하시는 것- 그것이 단순한 심부름이건,
아니면 중요한 일이건-무엇이든 기쁨으로 자원하였던 바로 그 시절 말입니다.
항상 저에게 제일 기쁜 시간은 담임 선생님의 칭찬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관심, 그리고 그분으로부터의 칭찬을 기대하였기에
선생님의 마음을 사려고 무진장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전도를 생각해 보면 무지 중요한 일인듯 하면서도, 그리 긴급한 일은 아닌 듯 느껴집니다.
지금 당장 헌신해야할 그런류의 일처럼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나 교역자들의 고유 영역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전도를 해야할까요?
우리에겐 그리 와닿지 않는 일일지 모르지만,
우리 주님께는 생명과 맞바꾸는 관심있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중요하시다 여기시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중요하다 여기시기에 중요한 것 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깊이 있는 관심을 두시기에 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전도대상자를 작정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고 그들을 나의 마음에 품는 날입니다.
할 수 있기에, 시간이 있기에, 능력이 있기에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이 바로 거기에 있기에 영혼을 마음에 품으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고 천국에 갈 유일한 길이 예수님 밖에 없기에 기꺼이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안에서의 행복을 나누는 일을 기쁨과 사명으로 감닫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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