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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11 - 알퐁스 도데

Joyfule 2012. 5. 10. 09:28
 
 
꼬마 철학자11 - 알퐁스 도데  
 
   빨간수첩3
   아름다운 어린시절을 보낸 랑그도끄가 있는 비엔느에 도착하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육장을 찾아 보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교육장은 야위긴 했지만 
훤칠한 키에 얼굴도 훤해서 첫눈에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민첩하게 행동했지만 학자의 분위기는 전혀 풍기지 않았다. 
그는 나를 친구의 아들로서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나 내가 교육장실에 들어섰을 때 그 친절한 교육장은 무척 놀라는 것 같았다.
  "아! 이걸 어쩐다지! 이렇게 작을 줄은 미처 몰랐는데!"
  사실이지 난 작은 체구인 데다가 어른스럽게 듬직한 인상이기는커녕 
허약하기 그지없는 인상을 풍겼던 것이다.
면전에다 대놓고 내뱉는 교육장의 한탄소리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두려워졌다.
'이분은 내가 이토록 작은 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야. 
안 된다고 하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더니 두려움으로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교육장은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챈 듯 말을 이었다.
"이리 와 보렴, 얘야!... 그래서 우린 말이야, 너한테 자습감독 교사 일을 맡기려고 하는데... 
이렇게 작고, 허약한 인상으로는 자습감독 교사를 한다는 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어렵고 힘들 게다 
하지만 지금 너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만 할 형편이니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널 돕겠다 
그러나 처음부터 널 큰 학교에 보낼 수는 없지...
여기서 수십 리 떨어진 산으로 둘러싸인 싸르랑드란 마을에 공립중학교가 하나 있다. 
우선은 너를 거기에 보내야겠구나. 그
곳에 근무하면서 교사로서의 수련도 쌓고 교사라는 직업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 보아라.
 그러다 보면 키도 크고, 수염도 자라 남자다운 풍모를 갖추게 되겠지. 
큰 학교에 가는 문제는 그때 가서 얘기해 보자꾸나."
교육장의 말을 듣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말을 끝내고 난 교육장은 싸르랑드 중학교 교장선생님에게 보낼
나에 대한 소개장을 써서 내게 건네주면서 그날로 싸르랑드로 떠나라고 말했다. 
교육장은 다시금 몇 마디 충고의 말을 하고 
내 뺨을 다정스럽게 어루만지더니 어서 가보라며 일어나서 문을 열어 주었다.
교육장실을 나오면서 안심도 되고 희망에 벅찬 나는 
오래되어 무척 낡은 계단을 나는 듯이 단숨에 뛰어내려와서는 
싸르랑드로 가는 합승마차를 예약하려고 서둘러 달려갔다.
오후에 출발하는 합승마차를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는데 
출발하기까지는 아직도 네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랑그도끄 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우쭐한 기분으로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꼭 만나 보아야 할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으로 오게 된 첫번째 목적을 완수한 나는 허기를 느끼며 
우선 배를 채우기 위해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는 광장 한쪽에 있는 비교적 깨끗한 음식점을 찾아냈다. 
그 음식점에는 '프랑스를 여행하는 친구를 위한 집'이라는 간판이 산뜻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곳이 내 형편에 가장 적당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밀치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허연 석회가 깨끗하게 칠해져 있었고 홀에는 참나무 식탁이 몇 개 놓여 있었을 뿐 
음식점 안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는 장식용으로 세워 놓은 듯 
구리 손잡이에 알록달록한 리본을 매단 긴 지팡이가 눈길을 끌었다. 
카운터에는 주인인 듯한 디룩디룩 살이 찐 뚱뚱한 남자가 
신문지 위에다 코를 박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아 대며 자고 있었다.
  "이봐요! 주인 양반!"
나는 선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달들처럼 주먹으로 식탁을 탕탕 두드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뚱보 양반은 여전히 코를 골며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뒷방에 있던 여주인이 놀라서 급히 달려나왔다. 
행운의 천사가 자기 식당으로 인도한 손님을 보자 그녀는 얼떨결에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 맙소사! 넌, 다니엘 아니냐!"
  "아... 안누 할머니!"
아! 하나님! 뜻밖에도 안누 할머니였다! 
우리 집안 일을 도맡아 하던 성실한 안누 할머니가 
카운터에서 세상 모르고 골아떨어진 뚱보장 뻬롤씨와 결혼하여 
이제는 음식점의 어엿한 여주인이 되어 있었다.
항상 다정하기만 한 안누 할머니는 자기네 식당에서 나를 만났다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뜻밖이어서 얼마나 나를 힘껏 껴안았는지 나는 하마터면 숨이 막힐뻔했다.
그때 잠꾸러기 장 뻬롤씨가 부시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마누라인 안누 할머니가 웬 낯선 젊은이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을 보고는 무척 놀란 듯했다. 
안누 할머니가 늘 얘기하던 다니엘이라고 나를 소개하자 
그는 얘기로만 듣던 나를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된 것이 기뻤는지 
아주 귀한 손님을 대하듯 갖은 친절을 다 베풀었다.
  "다니엘 군, 점심식사는 어떻게 했나?"
  "아직 하지 못했읍니다. 뻬롤 씨... 실은 점심식사를 하려고 음식점을 찾던 중에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어 이 식당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안누 할머니의...."
  "맙소사! 다니엘, 여지껏 식사를 안했다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니."
안누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갔고, 
뻬롤 씨도 벌떡 일어나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지하실로 무엇인가를 가지러 내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식탁 위에는 멋진 식사가 차려졌는데 먹음직스럽고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이것저것 풍성하여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많은 음식을 보자 순간 더욱더 허기를 느끼며 식탁에 앉았다. 
안누 할머니는 왼쪽에 앉아 크림이 많이 들어 저절로 구미가 당기는 
계란 반숙을 먹기 좋도록 잘라 주었고, 
뻬롤 씨도 오른쪽에 앉아서 잔에다 홍옥 빛깔의 포도주를 따라 주는 등 그렇게 극진할 수가 없었다. 
낮은 소리로 그동안의 얘기를 하면서 난 수도사처럼 단정하고 얌전하게 식사를 했다. 
내가 방금 교육구청을 다녀왔으며, 이제는 자습감독 교사 일을 해서 
생활비도 직접 벌게 되었다고 얘기하자 안누 할머니는 
내가 무척 대견스러운 듯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도 뻬롤 씨는 덜 놀라는 눈치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다니엘보다 더 어린 
너댓 살 되던 때부터 이 험난한 세상에 발을 들여 놓고 온갖 풍상을 겪어 
고생쯤은 이미 몸에 배어 있는 노련한 사람이어서, 
다니엘이 직접 생활비를 벌겠다는 것이 별로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의젓한  뚱뚱보 뻬롤 씨는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할 뿐 결코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찌 감히 뻬롤 씨가 자신을 에세뜨 집안의 아들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뻬롤 씨가 그런 기미라도 보였다면 안누 할머니는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보! 다니엘과 함께 우리 모두 건배합시다."
뻬롤 씨는 잔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그리고 모두들 축배를 들었다. 
우선 에세뜨 부인을 위해서 그리고 에세뜨를, 자끄를, 다니엘을, 안누를, 장 뻬롤을, 
교육장을 위해서 건배! 그리고 또... 위해서....
우리는 옛날의 슬펐던 기억들과 장미빛 아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옛날의 추억이 어린 공장과 리용, 랑떼른느 거리, 가난하고 우울에 찌든 생활들, 
불쌍한 큰형의 죽음 등을 얘기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다. 
그렇게 웃고 건배하며 떠들다 보니 벌써 두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벌써 가려고?"
안누 할머니가 섭섭하다는 듯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싸르랑드로 떠나기 전에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는데 아주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부득이 일어서야만 하겠다고 얘기하며 나는 안누 할머니와 뻬롤 씨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직도 나눌 얘기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헤어져야만 했다. 
결국 안누 할머니와 뻬롤 씨는 그렇게 중대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더이상 나를 붙잡지 않았고 우리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여행 잘 해라. 다니엘!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하나님께서 항상 보살펴 주시고 인도하시며, 
네게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자나 깨나 빌고 있겠다. 건강에도 유의하고...."
안누 할머니와 뻬롤 씨를 뒤에 남겨 둔 채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그들과 헤어진다는 아픔도 있었지만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만난다는 희망에 벅차 발걸음은 경쾌하고 가벼웠다. 
그렇다, 나는 곡 만나봐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시절의 즐거움으로 가득 찬 들이며 작업장이며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우람한 플라타너스와 협죽도, 
그리고 석류나무와 돌멩이 하나하나까지도 만나서 반가운 재회의 인사를 나누어야만 했다.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나간 로빈슨 크루소도 훗날 자기가 살던 무인도를 찾아 보기 위해 
수천리가 넘는 바닷길을 항해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한때 향유했던 즐거움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어 하는 본능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공장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머리에 깃털 장식을 달고 흥미로운 듯 담 너머로 멀리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키다리 플라타너스들이 정겨운 옛 친구가 재빠른 걸음걸이로 
자기들을 향해 오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 반가운 듯 
깃털 장식을 흔들어 대며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러고 나서 서로 몸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저기 다니엘 에세뜨가 온다! 다니엘 에세뜨가 돌아오고 있어!'
 나는 더욱 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공장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나는 전율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고는 석고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협죽도도, 삐죽 솟은 석류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도 없어져 버렸고, 작업장도, 예배당도 사라져 버렸다. 
대문 위쪽으로 라틴어가 몇 마디 쓰인 커다란 십자가만이 보일 뿐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공장은 이제 더 이상 공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남자들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까르멜 수녀원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