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12 - 알퐁스 도데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1
크고 작은 산봉우리 사이의 좁다란 골짜기에 자리잡은
세벤느 산악지방에 싸르랑드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곳의 날씨는 변덕이 심해 해가 중천으로 높이 떠올라
산골짜기를 내리비칠 때면 푹푹 쪄대는 무더위로 숨통이 막힐 듯했고,
북서풍이 휘몰아치면 매서운 추위가 살을 에이는 듯했다.
계절은 이미 봄으로 접어들었지만 내가 도착한 날 저녁에는
아침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북서풍이 미친 듯이 마을 안을 휘젓고 있었다.
합승마차 윗 좌석에 앉은 나는 싸르랑드로 들어서면서 냉기가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인적이 끊어진 채 거리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썰렁한 광장 한켠에 윤곽만 어스름히 보이는 사무실 앞쪽에서
몇 사람이 추위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는 광장에서 그다지 멀지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정적만이 감도는 거리를 두세 번 꺾어들자 트렁크를 들고 앞서 가던 짐꾼은
오래 전에 내버려진 듯한 황폐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 왔읍니다. 여기에요."
그는 문에 달린 묵직해 보이는 쇠로 된 커다란 문고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육중한 문고리가 밑으로 젖혀지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나는 짐꾼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둠에 잠긴 거물 현관에 서서 짐꾼이 트렁크를 땅바닥에 내려 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어둠 속에서 그가 내민 손바닥에 수고비를 쥐어 주었다.
뒤돌아 선 짐꾼은 깜깜한 어둠 속으로 유령처럼 사라져 갔다.
곧이어 쿵하며 문 닫히는 소리가 무섭게 들려 왔다.
잠시 후 수위 졸린 표정을 지으며 큼직한 램프를 들고 내게로 다가 왔다.
"새로 온 학생인가요?"
"저는 학생이 아니고 자습감독 교사로 여기 온 겁니다. 교장실까지 안내해 주시겠어요?"
수위는 내 말에 놀라는 눈치였다.
잠이 확 달아나는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잠시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금은 교장선생님이 학생들과 15분 동안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저녁예배가 끝나는 대로 교장실로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다.
수위실 안은 방금 막 저녁식사가 끝났는지 음식 냄새가 배어 있었다.
다부진 체격에 덥수룩한 금발 수염을 기른 잘생긴 남자가 브랜디를 마시고 있었다.
그 곁에는 마르멜로 열매처럼 노란색 피부에 비쩍 마른 야윈 여자가
빛바랜 허름한 쇼올을 귀까지 덮어 쓰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누굽니까, 까싸뉴 씨?"
덥수룩한 수염이 난 남자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수위에게 물었다.
"새로 오신 자습감독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 너무 작아서 전 처음에 학생인 줄 알았답니다."
수위가 웃음기어린 낯빛으로 대답했다.
"사실 이 학교에는 선생님보다 키가 크거나 나이가 훨씬 많은 학생들도 더러 있어요.
음, 누구더라? 그렇지 베이옹이라든지...."
수염난 남자가 브랜디 남자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끄루자도 그렇지요."
수위가 덧붙였다.
"수베롤도 있잖아요."
이번에는 잠자코 앉아 있던 야윈 여자가 거들었다.
그렇게 한마디씩하고 난 그들은 브랜디 잔에 코를 박고 나를 곁눈질하며
자기들끼리 낮은 소리로 무어라고 지껄여 댔다.
밖에서는 매서운 북서풍이 몰아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 오고
성당으로부터 목청껏 기도문을 외우는 학생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건너왔다.
갑자기 어둠과 지루함을 깨버리려는 듯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현관 쪽에선 삽시간에 여러 발자국소리가 뒤섞여 시끄럽게 울렸다.
"예배시간이 끝난 모양입니다. 교장실로 올라가시죠."
까싸뉴 씨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는 램프를 집어 들고 앞장서서 수위실 밖으로 나갔다.
학교는 굉장히 넓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복도, 높다란 현관, 정교한 철난간이 달린 널따란 계단...
그 모든 것이 오래되어 검게 그을려 있었다.
1789년까지만 해도 그 건물은 귀족계급 출신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해군학교였으며,
한창때는 8백 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수용했다는 학교 역사를 수위는 낮은 목소리로 들려 주었다.
수위의 얘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우리는 교장실 앞에 다다랐다.
까싸뉴 씨는 묵중한 이중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가더니
또 하나의 안쪽 문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무게 있는 점잖은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수위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교장실은 사방 벽이 온통 초록색 벽지로 도배된 넓직한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커다란 책상 앞에 앉은 교장선생님은
밑으로 늘어진 램프갓 밑으로 비치는 희미한 불빛을 받으며
무언가를 쓰느라고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교장선생님! 셀리에르 씨의 후임 선생님이 도착하셨읍니다."
수위가 내 등을 앞으로 지그시 떠밀면서 말했다.
"아! 그래요?"
교장선생님은 여전히 글쓰는 데 몰두한 채 말했다.
수위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총총걸음으로 교장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모자를 두 손으로 모아 쥐고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교장실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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