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철학자13. - 알퐁스 도데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2.
쓰던 일을 끝마친 듯 교장선생님이 내게로 몸을 돌렸다.
나도 교장선생님을 마주 바라보았다.
교장선생님은 창백해 보이는 얼굴색과 깡마른 체격이었다.
하지만 두 눈은 날카롭고 차가운 광채를 발했다.
교장선생님은 나를 좀더 자세히 보려고 밑으로 처져 있는 램프갓을 위로 끌어 올려
주위를 밝게 한 다음 흘러내린 코안경을 바짝 치켜 올렸다.
"아니, 어린애 아냐!"
교장선생님이 의자 뒤로 몸을 젖히며 소리쳤다.
"어린애를 데리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실망과 불만에 가득 찬 교장선생님의 푸념을 들으니 나는 몹시 두려워졌다.
순간 먹을 것도 없이 길거리로 내몰린 초라한 모습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간신히 두세 마디 더듬거리고 난 나는 교육장이 써 준 소개장을
교장선생님에게 머뭇거리며 건네주었다.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을 지은 채 교장선생님은 편지를 받아 들더니
읽고 다시 읽고 편지를 접었다가는 다시 펴서 또 읽었다.
마침내 그는 교육장의 특별한 추천도 있고 아울러 가족들의 명예도 있고 하니
비록 어리고 작은 게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자습감독 교사로 채용하겠노라고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는 이어 내가 해야 할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의 말이 한마디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더욱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내 가슴은 터질 듯 기뻤고 어떠한 말도 그냥 흘러가 버렸다.
그가 아무리 많은 손을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 손 위에다가 일일이 다 입을 맞췄을 것이다.
너무 기뻐 한동안 얼이 빠져 서 있던 나는
뒤쪽에서 들리는 쨍그렁대는 요란한 쇳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라서 눈을 휘둥그래 뜨고 돌아보니 그곳에는
붉은 구레나룻을 기른 껑충하게 키가 큰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머리가 옆으로 약간 기울어진 그 남자는 검지손가락에
크고 작은 열쇠들을 꿴 열쇠꾸러미를 들고 흔들어 대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 미소를 대하자 방망이질하던 내 마음이 약간 진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신경을 거슬리는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하고 울려 대는
끔찍한 열쇠꾸러미 부딪히는 소리가 나를 두렵게 했다.
"비오 씨, 이분이 셀리에르 씨 후임으로 오신 분입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에 비오 씨는 고개를 숙이면서 내게 예의 그 다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열쇠는
'이 꼬마가 셀리에르 씨 후임이란 말이지? 꺼져라, 꺼져! 웃기지 말고!'
라고 빈정거리듯 더욱 세차게 흔들거렸다.
교장선생님도 열쇠들의 쨍그렁거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아차린 듯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덧붙였다.
"셀리에르 씨가 떠남으로 해서 우리는 여러가지 크나큰 손실을,
아니 회복할 수 없을 만큼의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비오 씨가 새로 오신 선생님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감싸주시면서
자습감독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할 사항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고
준수해야 할 질서와 규율을 가르쳐 주신다면
엄숙한 학교 질서나 규율은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서는군요."
비오 씨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성심껏 조언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열쇠들은 여전히 불친절하게 쨍그렁거렸다.
마치 '난장이 꼬마야, 조심하라구'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에세뜨 씨,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은 불편하시더라도 호텔에 가서 주무십시오.
그리고 내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하셔야 합니다. 그럼...."
교장선생님이 내게 점잖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비오 씨는 조금 전보다 더욱 다정한 미소를 얼굴에 담고서 나를 현관까지 배웅해 주었다.
내가 돌아서려고 하는데 비오 씨가 내 손에 조그만 수첩을 쥐어 주었다.
"학교 규칙이 써 있소. 읽어 보시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가지 잘 생각해 보시오."
내가 문을 열고 나가자 그는 쨍그렁! 쨍그렁! 쨍그렁! 소리가 나도록
열쇠를 일부러 더 힘껏 흔들며 현관문을 닫아 버리곤 유유히 사라져 갔다.
그 사람은 불을 켜 주는 것을 잊어버린 듯했고
나는 그 어두운 복도에 길을 찾기 위해 벽을 더듬거리며 한동안을 헤매야만 했다.
어스름한 달빛이 높은 창문의 창살을 통해 비춰 들어왔기 때문에
그나마 나는 간신히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힘겹게 복도 안을 허우적대며 나오는데
저쪽 켠에서 어슴푸레한 불빛이 흔들거리며 내게로 재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불빛을 향해 몇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갔다.
불빛은 점점 커지더니 내게로 바짝 다가와서는 내 옆을 그대로 지나쳐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환영을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빛이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나는 그 불빛에 언뜻 어떤 환영을 보았다.
두 여자 아니 두 그림자가 바로 그 환영의 실체였다.
쭈글쭈글한 주름투성이의 얼굴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허리가 완전히 구부러진 노파와
날씬한 몸매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젊은 여자가
마치 유령처럼 날렵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걸 분명히 보았다.
노파의 손에는 조그만 구리 램프가 들려 있었고
검은 눈동자의 여자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두 그림자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 재빠르게 발자국소리를 죽이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 한동안 나는 흘린 듯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그 자리에 굳어진 채 우뚝 서 있었다.
놀라움에 가슴이 마구 띠었고, 그 안경잡이 마귀할멈이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에 떨면서도 나는 다시 더듬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어쨌든 그 밤을 지낼 숙소를 찾아야 했고 마음은 조급했다.
낯선 곳에서 더구나 야밤에 잠잘 곳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수위실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고 나서 보니,
덥수룩하게 수염난 남자가 여전히 그곳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뻐끔대고 있었다.
내가 사정 얘기를 천천히 늘어놓자 그는 선뜻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귀족처럼 극진한 대우에 그다지 비싸지 않은
작은 여관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정중히 제의해 왔다.
나는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구레나룻 남자는 아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함께 걸어가면서 그는 자기 이름은 로제이고,
싸르랑드 중학교에서 댄스와 마술, 펜싱 등을 가르치는 펜싱 교사이며,
아프리카 엽기병으로 오랫동안 근무했었다는 것을 내게 들려 주었다.
나는 그가 아프리카 엽기병으로 근무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어린애들은 용감한 군인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로제가 안내해 준 여관 앞에서 우리는 힘차게 악수를 하면서
이제부터 절친한 친구가 되고자 굳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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